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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 개헌 반대’ 문자 6000여통 받아”…여의도 국회 덮친 ‘문자폭탄’

중앙일보

입력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이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반대’ 문자폭탄에 시달리고 있다”며 지난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박지원 의원 페이스북 캡처]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이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반대’ 문자폭탄에 시달리고 있다”며 지난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박지원 의원 페이스북 캡처]

여야 국회의원들 일부가 보수 기독교계의 ‘문자 폭탄’에 고심하고 있다. 국회 개헌특위 소속의 한 의원은 최근 기독교 단체 회원들로 보이는 이들에게서 문자 메시지 6000여 통을 받았다고 한다. ‘동성애와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개헌에 반대한다’는 취지의 문자들이다.

지방 개헌 토론회에서도 보수 개신교계 ‘동성애 반대’ 항의 #국민의당 의원들도 “하루 수천통씩 ‘김이수 후보자 반대’ 문자” #헌법재판관 재직시 ‘군대 동성애 처벌’에 반대의견 낸 것 문제삼아

발단이 된 헌법 조항은 제36조 제1항이다.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규정돼 있다. 그런데 지난 1월 국회 개헌특위 공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인 정춘숙 의원이 헌법상 ‘양성평등’을 ‘성평등’으로 개정하자는 주장을 내놨다. 정 의원은 여성 단체인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출신이다.

성평등 개헌에 찬성하는 쪽은 생물학적인 남성과 여성, 두 성(sex)의 평등을 의미하는 좁은 개념의 ‘양성평등’ 대신 사회적 성(gender)을 기반으로 다양한 성 정체성을 가진 성 소수자들까지 차별하지 않는 개념의 ‘성평등’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성평등’에 대해 보수 기독교계는 “후천적으로 얻는 사회적 성과 관련된 개념은 결국 동성애 등을 포함하고 나중에는 동성결혼의 합법화 근거가 될 수 있다”며 강경 반대하고 있다. 이런 논리에서 국회 개헌특위 의원들에게 ‘동성혼을 합법화하는 성평등 개헌에 반대한다’는 문자를 보내며 행동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개헌특위 소속 한 의원은 “특위에서 성평등 얘기가 나온 것은 맞지만 동성애나 동성결혼을 염두에 두고 한 논의는 아니었다. 첨예한 문제인 동성애 이슈는 논의된 바 없다”고 부인했다. 그는 “휴대폰에 쏟아진 6000여 통의 문자 메시지는 일일이 다 보지도 못했다”며 “개헌 논의 과정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기록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을 듯해 삭제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보수 기독교 인사들의 실력 행사는 국회 개헌특위가 벌이고 있는 전국 순회 개헌 토론회에서도 여지 없이 등장한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지난 6일 “현재 순회 토론회에는 ‘동성애 반대’, ‘성평등 반대’ 구호가 등장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역 주민들은 권력구조 개편 등 거대 담론 못지 않게 기본권과 지방자치권 강화에 관심이 많은데도 그런 문제가 충분히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부산, 지난 5일 대구에서 열린 개헌 토론회는 ‘동성애 동성혼 개헌 반대 국민연합’ 회원들이 발언권을 달라고 나서거나 동성애 관련으로 항의를 하며 크고 작은 소동이 있었다.

이용호 정책위의장(가운데) 등 국민의당 의원들이 6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군내 동성애 행위 처벌을 규정한 군형법에 대한 지난해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소수의견 표명을 비판하며 더불어민주당의 입장 공개를 촉구하고 있다.   왼쪽부터 국민의당 최명길, 장정숙, 이용호, 최도자, 이동섭 의원. [연합뉴스]

이용호 정책위의장(가운데) 등 국민의당 의원들이 6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군내 동성애 행위 처벌을 규정한 군형법에 대한 지난해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소수의견 표명을 비판하며 더불어민주당의 입장 공개를 촉구하고 있다. 왼쪽부터 국민의당 최명길, 장정숙, 이용호, 최도자, 이동섭 의원. [연합뉴스]

보수 개신교 단체의 ‘문자폭탄’은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준의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 의원들에게도 쏟아지고 있다. 국민의당 이용호 의원 등은 지난 6일 기자회견에서 “요즘 국민의당 의원들은 동성애 합법화에 반대하는 국민들로부터 하루 수천 통씩의 ‘김이수 후보자 반대’ 문자폭탄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군대 내 동성애 처벌과 관련된 민주당의 분명한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군대 동성애 행위를 처벌하도록 한 군형법 92조 6항에 대해 지난해 7월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내릴 당시 김이수 헌법재판관은 위헌 취지의 소수 의견을 냈다. 그런 김 후보자 임명을 지지하는 민주당은 어떤 입장인지 밝히라는 요구였다.

익명을 원한 한 민주당 의원은 “정치적ㆍ종교적인 의사 표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하겠지만 정상적인 토론이나 국회 의정 활동에 차질을 빚을 정도의 실력 행사는 공공의 관점에서 보면 해(害)가 더 크다”고 주장했다.

김형구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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