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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람의 미주알고주알] 탕웨이싱 9단이 부채를 뺏긴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 '미주알고주알(바둑알)'은 바둑면에 쓰지 못한 시시콜콜한 취재 뒷이야기를 다루는 코너입니다.


2017 삼성화재배 32강전에 출전한 탕웨이싱 9단. 대국 도중에 부채로 소음을 내면서 그의 대국 매너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2017 삼성화재배 32강전에 출전한 탕웨이싱 9단. 대국 도중에 부채로 소음을 내면서 그의 대국 매너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5일 오후 고양시 삼성화재 글로벌캠퍼스, 2017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32강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날은 32강전 더블 일리미네이션의 첫 번째 날, 선수들이 신중하게 한 수 한 수를 놓아가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딱, 딱' 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소리의 진원지는 서봉수(64) 9단과 대결을 벌이고 있는 중국의 탕웨이싱(唐韦星·24) 9단이었다. 탕웨이싱 9단이 손에 들고 있는 부채를 접었다 펴면서 딱딱거리는 소음이 발생한 거다.

신경이 거슬린 서봉수 9단이 탕웨이싱 9단을 힐끔 쳐다봤다. 하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생각에 잠겨 마이웨이를 걷고 있었다. 서봉수 9단이 다시 마음을 다스리고 수읽기에 집중하려는 찰나, 다시 딱딱거리는 부채 소리가 서봉수 9단의 머리를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서 9단 이마에 절로 십일 자 주름이 생겼다.

참다못한 서봉수 9단이 심판을 맡고 있던 조대현 9단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아, 저 부채 소리 때문에 집중이 안 되는데 이것 좀 어떻게 할 수 없나요."

조대현 9단은 일단 알겠다고 한 다음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조대현 9단은 조금 떨어져서 탕웨이싱 9단의 행동을 주시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탕웨이싱 9단이 또다시 부채를 딱딱거리기 시작했다.

32강전을 두고 있는 탕웨이싱(왼쪽) 9단과 서봉수 9단

32강전을 두고 있는 탕웨이싱(왼쪽) 9단과 서봉수 9단

상황이 파악된 조대현 9단이 통역사를 불렀다. 멀찌감치 있던 통역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조대현 9단이 통역사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지금 상대 선수가 탕웨이싱의 부채 소리 때문에 거슬려서 바둑 두는 데 방해가 많이 된다고 합니다. 대국 규정상 이렇게 하면 경고를 줄 수밖에 없어요. 경고 2번이면 반칙패 처리되니까 부채를 딴 데 놓든가 하라고 이야기 좀 해주세요."

통역사가 탕웨이싱 9단에게 심판의 말을 전달했다. 탕웨이싱 9단이 약간 당황한 듯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는 기록자가 앉아있는 옆 테이블 위에 부채를 올려놓았다.

조대현 9단은 대국장을 둘러보며 다른 대국자들에게도 부채 소리를 내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소리를 내면 경고를 받을 수 있고, 경고 2회면 반칙패란 말도 덧붙였다. 이 바람에 조용히 부채를 만지작거리고 있던 다른 선수들도 슬그머니 부채를 손에서 내려놓았다.

한국기원 경기 규칙에는 부채 등으로 소리를 내면 심판이 선수에게 경고를 줄 수 있다.

한국기원 경기 규칙에는 부채 등으로 소리를 내면 심판이 선수에게 경고를 줄 수 있다.

서봉수 9단은 다시 바둑에 집중했다. 정말 오랜만에 올라온 삼성화재배 본선 무대라 온 정신을 기울여 바둑을 두고 싶었다. 그런데 또다시 서 9단의 머리를 어지럽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딱, 딱"

탕웨이싱 9단이 바둑알을 테이블에 두드리고 있었다. 서봉수 9단은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대국은 탕웨이싱 9단의 승리로 끝났다. 중국의 최강자인 탕웨이싱 9단을 서봉수 9단이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대국이 끝난 뒤 기자를 만난 서봉수 9단은 한참 동안 푸념을 늘어놓았다.

"아니, 바둑을 두는 데 자꾸 딱딱거리니까 짜증나더라고. 신경쓰이잖아. 매너가 너무 안 좋아. 너무 심해.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원래 매너 안 좋기로 유명하다고 하더라고(…)."

이날이 아니더라도, 탕웨이싱 9단의 대국 매너에 대해서는 기자도 여러 차례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탕웨이싱 9단이 세계 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그의 대국 매너로 심기가 불편해지는 피해자가 속출하기 때문이다.

대국 매너는 프로기사가 갖춰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다. 탕웨이싱 9단에게 바둑 실력에 걸맞는 대국 매너를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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