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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광활하고 거친 미국 서부 배경 … 기이하고 강렬한 11개 잔혹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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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문학이 있는 주말

브로크백 마운틴
애니 프루 지음
전하림 옮김, 에프

이 넓은 세상에는 할 일만 많은 게 아니라 읽을 만한 책도 많다. 갈수록 달달한 로맨스나 판타지보다는 힘 있는 다큐에 끌린다. 이런 생각, 성향을 품은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소설집이다. 광활하고 거친 미국 서부의 와이오밍, 멀게는 60, 70년 저쪽까지를 시공간 배경으로 한 기이하고 강렬하면서도 실감나는 이야기를 모은 책이어서다. 카우보이들의 동성애, ‘게이 서부극’의 효시쯤으로 여겨지는 2005년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을 재미있게 본 사람도 잠재 독자군이다. 짐작했겠지만 표제작은 영화의 원작이다.

영화 때문에 책을 붙들었다가도 곧 정신 바짝 차리게 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세상에는, 아니 미국에는 잘 쓰는 작가도 참 많다.

맨 앞에 실린 ‘가죽 벗긴 소’부터 이루 말할 수 없이 강렬하다. 노벨상 후보로 꼽히던 작가 존 업다이크(2009년 사망)가 ‘20세기 최고의 미국 단편’ 55편에 포함시켰던 작품이다. 헤밍웨이, 솔 벨로우, 레이먼드 카버 등 전설적인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다. 소설의 핵심 모티프는 참혹할 정도다. 겨울 식량으로 삼기 위해, 기절시켜 피를 빼고 별미인 혀를 잘라낸 다음 껍질까지 절반쯤 벗겨낸 수송아지가 도축자가 한눈파는 사이 살아 도망간다. 매달려 덜렁거리는 무엇이 벗겨낸 앞 껍질이라는 사실을 겨우 식별할 수 있을 만큼 멀리 도망갔는데도 절대적 증오로 가득 찬 소의 두 눈만은 뚜렷하게 보였다는 게 정작 하고 싶었던 얘기다. 작가는 그런 이야기를 독주에 절어 사는 아버지, 그의 야생마 같던 애인, 아버지의 애인을 넘보던 동생 롤로, 이 모든 것에 신물나 하던 형 메로, 하나 같이 비정상적인 가족 관계 안에 풀어낸다.

소설집에는 모두 11개의 단편이 실려 있다. 에피소드의 강렬함 혹은 끔찍함의 크기로 따지면 ‘진흙탕 인생’ ‘외딴 해변’ 같은 작품들도 결코 송아지 얘기에 뒤지지 않는다. 대부분 ‘세상에 이런 일이’ 수준이다. 작가는 괴상한 이야기 수집가인가.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대주제를 ‘지옥에선 모두 한 잔의 물을 구할 뿐’의 몇 문장과 관련 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역시 잔혹 소설인데, 앞머리에 프루는 이렇게 쓴다.

“그 어떤 종류의 살육이나 잔혹한 일이 벌어진데도, 그 어떤 사고나 살인이 일어난대도, 하늘에 떠오르는 여명의 빛을 늦출 수 있는 것은 없다.”

인간은 그리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동물과는 어떻게 다른가.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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