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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메르켈 이전 그가 있었다, 통일 독일 혼란 잡은 지도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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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게르하르트 슈뢰더
자서전
김소연·엄현아·
박성원 옮김, 메디치

게르하르트 슈뢰더(73) 전 독일 총리는 ‘걸출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정치인이다. 좌파 사회민주당 소속으로 1998년 10월부터 2005년 11월까지 총리를 지냈다. 통독을 이룬 우파 헬무트 콜을 꺾고 정권을 잡아 통일로 혼란스러운 나라를 ‘흔들리지 않게’ 이끌었다. 재임 중 중장기 사회개혁 프로그램인 ‘아겐다 2010’을 마련했다. 지지율이나 득표에 연연하지 않았으며 이념을 추종하지도, 좌파 세력의 패권을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오로지 국민과 후손의 미래를 위해 연금·노동·교육에 이르는 사회 전반을 ‘아프게’ 개혁했다. 연금을 비롯한 사회보장을 동결하고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하며 세금을 줄이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독일은 ‘좌우의 날개’로 힘차게 날아올랐다. 후임인 우파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세계의 지도자 반열에 오른 건 슈뢰더가 개혁으로 ‘정지 작업’을 한 덕분이라는 평가다.

국가 지도자로서 이렇게 역사에 남을 공을 세웠지만, 개인사는 ‘폭풍의 언덕’이었다. 별명이 아우디맨이다. 네 개의 결혼반지가 겹친 듯한 아우디 로고가 결혼과 이혼을 네 차례 반복한 그의 사생활을 떠오르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결혼생활은 험난한 인생 항로의 일부였을 뿐이다.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독일 국방군 병사인 아버지가 루마니아에서 전사했다. 슈뢰더는 일찌감치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14살 때부터 3년간 소매상 도제를 마치고 판매원으로 일했다. 공부가 하고 싶어지자 잠을 줄여 목표를 향해 달렸다. 야간고교를 마치고 22살 때 아비투어(대학입학 자격시험)에 합격해 괴팅겐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뒤 변호사가 됐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던 19살 때 사회민주당에 입당한 그는 당의 청년기구 의장을 맡으면서 정치의 세계에 들어왔다. 1990~1998년 니더작센주 주지사를 거쳐 1998년 10월 연방총리가 됐다.

2004년 8월1일 바르샤바 봉기 60주년 기념식에 참가해 “힘든 시련에 대한 기억이 우리는 갈라놓는 것이 아니라 묶어주어야 한다”고 말한 순간은 극적이다. 자신에 철저하고, 국민에 헌신하며 독일을 문명국가로 돌려놓은 한 정치인의 진솔한 고백이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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