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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조는지 귀신같이 아는 시각장애 선생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스무살 때 시력을 잃게 될 거라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당시엔 정말 막막했어요.”

대구 예담학교 이우호 영어교사 #20세에 시력 잃었지만 사범대 입학 #임용시험 합격, 박사 학위도 받아 #“시각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많이 해”

현직 영어교사인 이우호(42)씨는 20년 전 양쪽 눈 시력을 완전히 잃어 앞을 보지 못한다. 이씨는 스무살에 군입대를 앞두고 받은 신체검사에서 ‘망막색소변성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스물네살 때 중증시각장애인 1급 판정을 받았다.

최근 기자와 만난 이씨는 “처음에는 실명이란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세월이 약이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씨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기 위해 중증시각장애 1급 등록을 하면서 시각장애를 인정하게 됐다. 또 책을 읽으면서 세상에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시각장애를 딛고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우호 영어교사가 24일 대구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시각장애를 딛고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우호 영어교사가 24일 대구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스물네살 때 장애인학교인 대구광명학교를 찾은 이씨는 수능을 준비해 2년 뒤인 2001년 대구대 영어교육학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12년간의 노력 끝에 2013년 영어교사가 됐다. 임용시험에 네 번 도전해 합격했다. 3년 간 경북여고에 재직했고 지난 3월 대구 예담학교로 발령받아 고3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이씨는 지난 25일 대구대 학위수여식에서 ‘특수교육학과 시각장애아 교육’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논문 제목은 ‘시각장애학교 중등학생의 학습동기, 학습태도, 영어 학업성취도 간의 관계’다. 전국 12개 시각장애학교 중등학생 236명의 기초자료를 수집해 학습동기와 학습태도, 영어 학업성취도의 상관관계를 밝혀냈다.

박사과정에서 ‘특수교육학과 시각장애아 교육’을 선택한 이유는.
“처음엔 특수 교육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장애가 있는데, 장애가 있는 학생을 잘 가르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니까 오히려 장애 당사자가 같은 마음에서 더 잘 장애인을 교육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논문쓰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시각장애인들에게 자료 읽는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린다. 점자책을 보는 게 서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인터넷 파일은 점자로 돼 있지 않다. 학교 동료들이 내가 볼 수 없는 파일들을 읽어주거나 대구대 장애인지원센터에서 파일을 점자로 번역해 줬다. 사진설명도 말로 표현해 주셨다.”
학교 수업은 어떤가.
“학생들이 수업을 잘 따라와줘서 고맙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선생님, 더 왼쪽에 밑줄을 그어야 해요’라고 말했는데 지금은 ‘선생님, 왼쪽으로 10㎝정도 간 다음 바로 밑에 내용이 있어요’라고 더 정교하게 주문한다. 시각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을 많이 하는데, 이게 진짜 교육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함께 생활하면서 점점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학생들이 몰래 자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학생들이 자고 있는지 내가 귀신같이 안다.(웃음) 학생들이 대답하는 목소리가 커졌는지, 줄었는지만 듣고도 알 수 있다. 또 학생들이 저를 보고 있는지 여부도 안다. 땡땡이 치는 것도 안다. 공기의 흐름이 정말 다르다. 지금 앞에 있는 기자분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느껴진다.”

대구=글·사진 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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