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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과 창업] SNS보다 발품, 농약보다 퇴비 … 청년 농부들 신뢰를 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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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살충제에 오염된 계란, E형 감염 논란을 빚은 유럽산 소시지 등으로 믿고 먹을만한 식품에 대한 관심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지난 24일 신세계백화점 본점이 ‘청년상인 프레쉬 마켓’을 통해 선보인 식품에 소비자들이 큰 관심을 보인 이유다. 이 행사에 참여한 19명의 청년 농부들의 창업 경험을 통해 농·어업 창업의 성공 가능성을 가늠해봤다.

먹거리포비아 속 주목받는 3인 #친환경 뽕잎차, 연 100일 시음회 #“차 한 잔 대접이 최고의 마케팅” #아로니아 착즙, 고객이 농장 방문 #“농약 대신 벌레 잡는 게 경제적” #옹기천일염, 3년간 깐깐한 공정 #“수익보다 우리 것 지키는 자부심”

친환경 농법과 부지런한 발품 팔기로 먹을거리 창업에 성공한 청년 농부들.수미다정 김대슬 대표(오른쪽)와 어머니 채수미씨.[사진 각사]

친환경 농법과 부지런한 발품 팔기로 먹을거리 창업에 성공한 청년 농부들.수미다정 김대슬 대표(오른쪽)와 어머니 채수미씨.[사진 각사]

청년 농부들이 첫손가락에 꼽은 성공의 요인은 ‘발품 마케팅’이다. 홈페이지나 SNS 등 온라인을 통한 홍보보다는 고객을 직접 만나 제품을 맛보게 하는 방법이 주효했다는 설명이다. 남산 뽕잎 차 등을 선보인 수미다정 김대슬(32) 대표는 “차를 파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 잔의 차를 대접하는 것”이라며 “연중 100일은 시음회를 나간다. 서울·경기 지역의 아파트 앞이 수미다정의 마트”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목포대 재학 시절인 7년 전 창업에 발을 들여놓았다. 첫 아이템은 농업이 아닌 여행업. 전공인 역사학을 살려 전남지역의 역사문화 테마 상품을 팔았다. 당시 부모님은 차 농사를 하고 있었는데, 어머니를 따라 농업교육 강의를 듣던 중 갑자기 전업을 결심했다. 김 대표는 “강의 중 ‘흙이 살아야 사람이 산다’ ‘농업은 생명 산업이다’라는 말이 감명 깊었다”고 말했다.

해남 북일면 땅 1만9800㎡에 뽕나무를 비롯해 콩·고구마 등을 심어 규모를 키웠다. 그러나 곧 시련이 닥쳤다. 뽕나무 열매인 오디가 하얗게 변하는 균핵병에 걸렸다. 1만6500㎡에 심은 3년 된 뽕나무를 모두 뽑아내고 다시 심을 수밖에 없었다. 농사에 뛰어든 3년 동안 수확이 전혀 없었지만 그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정성껏 퇴비를 주며 건강한 뽕나무가 성장하기를 기다렸다. 김 대표는 “뽕나무는 원래 농약을 하지 않는다”며 대신 “친환경 석회와 황토, 유황으로 직접 퇴비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퇴비 중에는 참치액비도 있다.

현재 수미다정의 직원은 김 대표와 어머니 둘뿐이다. 직접 농사짓고 경영도 가족끼리 해 연 매출 1억5000만원 중 순익이 9000만원(인건비 포함)으로 높은 편이다.

친환경 농법과 부지런한 발품 팔기로 먹을거리 창업에 성공한 청년 농부들.서산아로니아 이희준 대표.[사진 각사]

친환경 농법과 부지런한 발품 팔기로 먹을거리 창업에 성공한 청년 농부들.서산아로니아 이희준 대표.[사진 각사]

건강식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아로니아 착즙을 선보인 서산아로니아 이희준(43) 대표는 “백화점 판촉 행사를 통해 인연을 맺은 고객들은 직접 농장을 방문하기도 한다”며 “소비자가 신뢰는 먹거리 사업의 기본 중 기본”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서울에서 건설회사를 다니다 5년 전 서산으로 내려왔다. 귀농 전 사전 조사를 통해 작물은 아로니아로 정한 후, 그간 번 돈으로 7만9000㎡의 땅을 매입하고 16만5000㎡는 빌려 총 24만4000㎡의 대단위 농장을 구축했다. 당시 폴란드 수입산을 비롯해 전국에서 아로니아를 심기 시작해 공급 과잉이 우려되던 때였지만, 그는 생과가 아닌 착즙 제품으로 부가가치를 높인다는 생각이었다.

이 대표는 “물을 전혀 가미하지 않고 오롯이 아로니아로만 짠 즙은 먹힐 거라 생각했다”며 “홈쇼핑 등을 통해 건강 식품으로 잘 알려져 덕을 봤다”고 말했다. 공급 과잉으로 아로니아 가격은 5년 전에 비해 10분의 1로 폭락했지만, 착즙은 덜했다. 재작년 매출 2억4000만원에서 지난해 9억8000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이 대표가 생산하는 서산아로니아는 ‘친환경’ 인증을 신청하지 않았다. 그는 “친환경이라는 페이퍼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착즙은 20여 농가에서 수확한 아로니아를 쓰는데, 약을 치는 농가도 더러 있다. 단, 해초로 만든 ‘친환경 농약’이다. 이 대표의 농장은 아예 약을 하지 않는다. 24만㎡ 전 농장에 약을 하기도 어려울뿐만 아니라 인부를 고용해 벌레를 잡는 게 오히려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이다.

친환경 농법과 부지런한 발품 팔기로 먹을거리 창업에 성공한 청년 농부들.‘소금이 오는 소리’ 유제정 대표. [사진 각사]

친환경 농법과 부지런한 발품 팔기로 먹을거리 창업에 성공한 청년 농부들.‘소금이 오는 소리’ 유제정 대표. [사진 각사]

‘소금이 오는 소리’ 유제정(46) 대표는 2년 전 주부에서 사업가로 변신했다. 서산 지역에 옹기 조각을 바닥에 깔아 천일염을 만드는 ‘옹기바닥염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20억원을 투자해 가공 공장을 세웠다. 유 대표는 “돈벌이가 아니라 이런 문화유산은 꼭 지켜야겠다”는 생각에서다. ‘소금이 오는 소리’ 제품은 옹기바닥에서 3년간 간수를 빼고, 다시 물로 한번 씻어 이물질을 제거해 보다 깨끗한 소금으로 가공한다.

유 대표는 국내 대형 유통점은 물론 해외 박람회 등 고객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쫓아간다. 그는 “좋은 소금은 맛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며 “잘 만든 천일염은 입 안에서 달짝지근한 맛이 난다”고 했다. 지난해 매출 5억원으로 투자에 비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우리 것을 지켜나간다는 자부심에 힘이 난다”고 말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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