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대학 등록금 500만원 못 구해 … 광주 두 모녀의 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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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대학교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고민하던 딸과 어머니가 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모녀의 사망 추정 시점은 딸이 다니던 대학의 2학기 등록금 납부 기간 마지막 날이었다.

저수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 #7년 전부터 남편과 별거 40대 #50만원 월세 아파트에서 거주 #건강 악화로 일 못해 생활고 #등록금 납부 마지막 날 사망 추정

28일 전남 장성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50분쯤 장성군 삼계면 한 저수지에서 승용차 한 대가 빠져 있는 것을 행인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이 크레인을 투입해 건져올린 승용차는 베르나였다. 차량의 기어는 ‘주행’ 상태인 ‘D’에 놓여 있었다. 이 차량 내부에서 여성 2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또 제조일이 8월 24일, 유통기한이 8월 26일인 김밥이 나왔다.

경찰이 조사했더니 사망자는 승용차 소유주인 김모(46·여)씨와 대학생 딸(19)로 파악됐다. 두 사람은 광주광역시에서 거주해 왔다. 장성은 김씨의 친정어머니가 사는 지역이다.

승용차가 발견된 저수지는 도로에서 아래로 약 1m 내려가 여기서 다시 잔디밭 50m를 달려야 나오는 곳이다. 잔디밭 위에서는 승용차가 직진해 저수지까지 달린 듯한 흔적이 발견됐다.

차량 내부에서는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이 같은 점으로 미뤄 대학생 딸을 태운 김씨가 스스로 저수지 방향으로 차를 몰았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김씨 모녀의 승용차는 지난 25일 낮 12시20분쯤 장성의 한 도로를 달리는 모습이 폐쇄회로TV(CCTV)에 담겼다. 이후 더 이상 모녀가 탄 차량의 모습은 찍히지 않았다. 경찰은 시신의 상태 등으로 미뤄 이날을 사망 시점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유일한 자녀인 딸과 단둘이 지내 왔다. 김씨는 약 7년 전부터 남편과 별거 중인 상태라고 한다. 김씨 모녀는 생활고를 겪어 왔다. 광주광역시 한 아파트에서 보증금 없이 월세 50만원에 생활해 온 것으로 경찰이 파악했다.

김씨의 주변인들은 “과거 어린이집에서 근무했던 김씨가 피부질환으로 일하지 못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어 왔던 것으로 안다”는 취지의 진술을 경찰에서 했다.

하지만 김씨 모녀는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초생활수급자는 아니었다. 형편이 어려웠지만 어떤 이유로든 수급자로 지정되지 못했다. 남편과 별거 중이지만 이혼한 상태는 아니어서 수급자로 지정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남편의 경제적 지원도 못 받고 정부의 지원도 못 받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광주의 한 구청 복지업무 담당자는 “김씨 모녀의 경우 정확한 상황을 파악해 봐야 수급자 지원을 받지 못한 이유를 알 수 있다”면서도 “별거 중인 남편의 수입을 확인할 수 없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씨가 수급자 지원을 받으려면 남편의 재산과 수입을 확인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러지 못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김씨 소유의 자동차가 재산으로 잡혀 걸림돌이 됐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특히 광주의 한 대학교 1학년인 김씨의 딸은 2학기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최근까지 고민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 김씨의 딸은 지난 25일 친척에게 “등록금을 낼 수 있게 500만원을 빌려 달라”고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친척 역시 경제적으로 형편이 넉넉지 않아 돈을 빌려주지 못했던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25일은 김씨의 딸이 다니는 대학교 등록금 납부 기간 마지막 날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은 경찰이 추정한 모녀의 사망 시점이기도 하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김씨 모녀가 (딸의) 대학교 등록금 등 금전적인 문제를 고민하다가 탈출구를 찾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경찰은 김씨 모녀의 정확한 사망 경위를 가리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또 주변인들을 상대로 김씨 모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만한 또 다른 배경이 있는지 등도 조사하고 있다.

장성=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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