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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 인도 철수, 르노 脫프랑스, 자동차업계 “남의 일 아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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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6호 18면

위기의 한국 자동차 산업

카허 카젬

카허 카젬

제너럴모터스(GM)가 한국에서 철수하는 어두운 미래를 암시하는 신호가 한 가지 더 늘어났다. 최근 GM 미국 본사가 호주 출신의 카허 카젬(46) GM인도 사장을 신임 한국GM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한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한국GM은 지난해 531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2014년과 2015년에도 각각 1486억원, 5944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2014년부터 3년간 영업손실 규모를 합산하면 1조2741억원에 이른다.

호주·남아공 등 구조조정하는 GM #한국 군산공장도 정리 가능성 커 #프랑스 자동차 생산 100만 대 줄어 #곤, “고용 늘리라” 마크롱 요청 거부 #국내업체도 “인건비 더 늘면 해외로”

공교롭게도 그의 출신지인 호주, 직전 부임지 인도 두 곳 모두 GM이 2010년대 들어 시장에서 철수한 지역이다. 카젬 사장은 인도 부임 1년 5개월째였던 지난 5월 쉐보레 브랜드를 올 연말까지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GM본사는 구자라트주 할롤에 위치한 생산 공장까지 중국 상하이자동차(SAIC)에 매각하려 했으나 양측 간 가격 차이로 인해 일단 판매 부문부터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2013년 호주 철수를 시작으로 GM은 2014년 인도네시아 공장 철수, 2016년 태국·러시아 생산 중단, 올해는 오펠 매각,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쉐보레 철수 등을 차례로 진행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GM 본사 경영진 입장에서 볼 때 높은 인건비 등으로 생산 경쟁력이 떨어지는 한국GM은 더 이상 매력적인 생산기지가 아니다”며 “과거 호주에서 GM이 철수했듯 언제든 매력이 떨어지면 철수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감 줄어든 군산공장 주간조만 근무

호주에서도 GM은 생산시설 매각 없이 공장 문부터 닫았다. 2012년 호주 정부로부터 향후 10년간 공장 가동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2억5000만 달러를 먼저 지원받았지만, 이듬해인 2013년 말 돌연 입장을 바꿨다. GM 산하 홀덴 공장을 2017년 10월까지만 운영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철수 발표 5개월 전만 하더라도 마이크 데버루 당시 홀덴 CEO는 “GM은 호주에 머무를 것(stay)”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같은 해 12월 그는 “홀덴은 생산 공장을 정리하고 수입·판매업체로 전환할 예정”이라고 말을 바꿨다.

GM의 한국시장 출구 방식으로도 전면 철수보단 디자인·엔지니어링 파트만 일단 남기는 방식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디자인센터·기술연구소가 있는 인천 부평 사업장은 존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정리 수순 첫 번째 타깃으로 꼽히는 곳은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올란도, 준중형세단 크루즈를 생산하는 군산공장이다. 주간조와 야간조, 2교대제로 운영되는 일반적인 완성차 조립공장과는 달리 군산공장은 주간조(오전 7시~오후 3시40분)만으로 공장이 가동 중이다. 생산량 대비 국내 주문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풀체인지(완전변경) 모델로 사내외에서 기대를 모았던 크루즈의 판매량은 지난달 1050대로 아반떼(7109대)의 15%에도 못 미쳤다. 올란도의 후속작인 에퀴녹스 역시 미국에서 수입할 예정이다. 한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GM은 자사가 보유한 공장터를 매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량이 없어 군산공장 라인이 멈추게 되더라도 그냥 공장을 폐쇄할 뿐, 부동산을 팔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9년 GM은 미국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미국 내 14개 공장을 폐쇄했다. 당시 폐쇄됐던 공장 중 2곳(스프링힐·오리온타운쉽)은 재가동했지만, 나머지 공장은 여전히 폐쇄된 상태다.

이남석 중앙대 교수(경영학)는 “정규직 노조가 지식인의 후원으로 고임금을 받는 사이, 국내 자동차 산업이 프랑스·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의 침체 경로와 유사한 패턴을 밟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과 언론의 후원을 받은 강성 노조가 생산성 대비 과도한 보상을 받고, 그 결과 차량 경쟁력이 떨어진 완성차 업체가 도산 위기에 몰려 공적자금이 투입되지만, 여전히 법적·정치적으로 고임금 체계를 해결하지 못해 라인을 해외로 이전하는 구조다.

현지생산 중심 르노-닛산 1위로 부상

프랑스의 자동차 생산량은 10년 전인 2007년 301만 대에서 지난해 203만 대로 33%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판매량은 616만 대에서 973만 대로 57% 증가했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는 프랑스 기반의 르노가 1999년 닛산 지분(43.4%)을 사들인 다음, 두 회사가 차량 공동개발·판매하는 형태를 갖추고 있다. 올 상반기에는 일본 도요타, 독일 폴크스바겐을 제치며 글로벌 판매량(508만 대) 1위에 올랐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는 “전 세계 21개국에 생산 기지를 두며 ‘현지생산-현지판매’ 시스템을 극대화한 덕”이라고 설명했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본사는 현재 프랑스가 아니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해직 근로자(366명)에게 추가 연금(3만 유로)을 지급하지 않으면 완성차 조립공장을 폭파하겠다고 협박한 프랑스 특유의 강성 노조 때문이다. 같은 해 프랑스 정부가 공적자금 60억 달러를 지원하며 회유책을 쓰기도 했지만, 르노-닛산은 신규 생산 라인을 전부 해외로 돌렸다.

2015년에는 프랑스 정부가 급작스레 르노 보유 지분을 15%에서 20%까지 늘리면서 회사 측을 압박했다.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높은 닛산에 르노를 묶어 자국 내 생산량·고용을 보장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당시 경제장관으로 재직했던 에마뉘엘 마크롱 현 대통령이 주도했다. 그렇지만 두 회사 연합을 이끄는 카를로스 곤 회장은 마크롱의 요구를 단번에 거부했다. 곤 회장은 올 2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프랑스 정부가 르노를 국가대표 기업으로 간주하는 한 르노-닛산 합병은 논외의 대상”이라며 “프랑스 정부의 요구를 수용한다면 개발·디자인·상품화에 이르기까지  지금과 같은 르노-닛산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국내 자동차 산업에서도 프랑스와 같은 사태가 충분히 벌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상대적 고임금이 지속될 경우 더 이상 국내에서 대량 생산은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달 14일 현대·기아·한국GM·르노삼성·쌍용 등 국내 완성차 5사는 “기아차 통상임금 판결에 따라 약 3조원의 추가 인건비 부담을 지게 될 경우, 국내 생산을 줄이고 인건비 부담이 낮은 해외로 생산 거점을 옮기는 방안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남석 교수는 “생산만이 자동차 산업의 전부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남유럽 국가처럼 보조금으로 완성차 업계가 연명할 처지에 놓일 수 있다”며 “디자인·엔지니어링 부문이나 상대적으로 고부가가치인 자율주행부품 분야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한국이 자동차 강국의 위상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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