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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축복 받은 사람만 늙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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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젊음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에 가장 칭송받는 미덕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늙음은 가장 감추고 싶은 치부라 하겠다. 오죽하면 영화 ‘은교’에서 70대 시인 이적요가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고 했을까.

나이 듦을 형벌로 받아들일 정도로 노인에 대한 차별(혐오)이 만연한 요즘, 의미 있는 선언이 하나 나왔다. 미국의 뷰티·패션 매거진 ‘얼루어’가 9월호 표지모델로 70대의 영국 배우 헬렌 미렌을 내세우면서 “안티에이징(노화 방지)이라는 표현은 부지불식간에 노화를 싸워서 이겨내야 할 대상이라는 메시지를 주기에 더 이상 쓰지 않기로 했다”고 밝힌 것이다. 미셸 리 편집장은 “젊음이 아름답다고 나이 듦이 추한 건 아니다”며 노인차별(에이지즘)에 반대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정반대로 움직인다. 사회가 성숙해질수록 성차별이나 인종차별 등 나와 다른 이에 대한 공공연한 차별을 금기시하기 마련인데 유독 노인차별은 점점 더 심해진다. 젊음에 대한 강박을 부추기는, 어쩌면 죽는 것보다 늙는 걸 더 두려워하는 사회 분위기 탓이다. 편견과 차별은 늘 나와 다른 집단을 향하지만 노인차별만큼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 자신의 미래를 가리키고 있는데도 말이다.

젊음이 워낙 큰 미덕으로 받아들여지다 보니 동안이라거나 젊어 보인다는 말은 누구에게나 듣기 좋은 큰 칭찬이 된다. 하지만 『나는 에이지즘에 반대한다』를 낸 작가 애슈턴 애플화이트는 “칭찬이 아니라 차별”이라고 주장한다. 젊음은 좋고 늙음은 나쁘다는 식의 나이 불평등을 자연스럽게 여기고 젊음에 집착하도록 만든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지난 4월 TED 강연에선 “나이 듦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라며 “자연스러운 일생의 변화를 부끄러운 문제나 두려운 질병처럼 만들어 결국 화장품회사와 제약회사만 돈을 번다”고도 했다. 그러고 보니 화장품 중에서도 교묘하게 차별을 담은 게 비싸게 팔린다. 화이트닝이 그렇듯 안티에이징 역시.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축복받은 사람만 늙을 수 있다. 젊든 늙든 이 점만 기억하면 서로 혐오하기보다 존중하며 좀더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