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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안 양자택일'에 갇힌 수능 개편 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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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18일 부산 부경대에서 수능 개편안과 관련해 전문가와 학부모·시민단체의 의견을 듣는 3번째 공청회를 열었다. 공청회에 참여한 교육계 인사 중 상당수가 "교육부가 내놓은 1안과 2안 모두 지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수능 개편안은 31일에 확정·발표될 예정이다. [연합뉴스]

교육부는 18일 부산 부경대에서 수능 개편안과 관련해 전문가와 학부모·시민단체의 의견을 듣는 3번째 공청회를 열었다. 공청회에 참여한 교육계 인사 중 상당수가 "교육부가 내놓은 1안과 2안 모두 지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수능 개편안은 31일에 확정·발표될 예정이다. [연합뉴스]

"1안은 무한 경쟁과 과중한 학습 부담 등 현행 수능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답습하게 된다."(안상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
"2안대로라면 수능에 변별력이 없다. 수능이 선발고사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된다."(신동원 휘문고 교장)

교육부, 현 중3 보는 수능 개편안, 이달 말 확정 #두 가지 시안 내놓고 "절충안 없다"해 교육계 불만 #"1,2안 장점 살리고 단점 줄일 3안도 고민해야" #1안과 2안 중간에 속하는 3안 지지 의견 봇물 #교육부 "엄청난 요구 있다면 종합 검토 하겠다"

 교육부가 지난 10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개편 시안 두 가지를 발표하고 이 중 하나를 이달 말 확정하기로 했으나 두 가지 안 모두 단점이 적지 않아 새로운 3안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분출되고 있다. 교육단체·전문가들 사이에서 "교육부가 수능 개편의 논의를 두 가지 안으로만 국한해서만 안되며 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최적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교육부가 스스로 정한 일정에 얽매여 무리하게 양자택일을 할 경우 더 큰 혼란과 부작용만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는 현재 중학교 3학년부터 적용될 2021학년도 수능 개편안의 시안을 지난 10일 두 가지 내놓았다. 모두 절대평가를 현재 수능보다 확대하는 내용인데 1안은 '부분적 확대'(영어, 한국사, 통합사회·통합과학, 제2외국어/한문에 절대평가 적용) 2안은 '전면적 확대'(수능 전체 과목 절대평가)다. 교육부는 두 가지 시안을 내놓으면서 “절충안은 없다"(박춘란 교육부 차관)고 했다. 1, 2안의 절충 가능성을 묻는 언론의 질문에 답하면서다. 박 차관은 “현재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양자택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실제로 교육부는 시안 발표 이후 주최한 공청회도 1, 2안 두 가지에 대한 찬반 토론 위주로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21일 교육단체나 전문가·교사들은 “1, 2안이 각각 가진 장점은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는 방법으로 절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 2안의 단점에 훤히 보이는데 이를 그냥 넘겨선 안 된다"는 것이다.

 국어·수학·탐구 영역을 현행처럼 상대평가로 남기는 1안에 대해선 이들 영역의 학습 부담 증가와 사교육 팽창 등 ‘풍선효과’가, 전면 절대평가인 2안에 대해선 수능 변별력 약화로 인한 동점자 처리 곤란 등이 단점으로 꼽히고 있다. 주석훈 미림여고 교장은 “1, 2안의 단점을 해소하지 못하면 현행 수능과 같은 ‘무한경쟁’, 문제풀이 위주의 학습 방식이 반복돼 개편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18일 부산 부경대에서 열린 수능 공청회에 참석한 교육시민단체들이 '수능 전과목 절대평가 시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18일 부산 부경대에서 열린 수능 공청회에 참석한 교육시민단체들이 '수능 전과목 절대평가 시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3안에 대해 통일된 입장이 모아지는 것은 아니다. 절대평가 확대를 지지하는 교원단체 '좋은교사운동'은 수능 전 과목을 절대평가로 하되(2안), 과목별로 출제 방식을 차별화 하는 안을 내놓았다. 국어·수학·영어는 선다형 지필평가로, 통합사회ㆍ과학,  탐구나 한국사는 서술형ㆍ논술형 평가로 수능을 치르자는 것이다.

 김영식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은 “통합사회ㆍ과학이나 탐구영역 등은 프로젝트나 토론 등 학생이 주도하는 다양한 수업을 구현할 때 제대로 된 교육 성과를 올릴 수 있다. 이런 과목에 논술형 수능을 도입해야 고교 수업을 내실화하고 수능에서도 변별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이처럼 출제 방식을 과목별로 차별화 하는 것은 대학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가 도입돼 변별력이 떨어지게 되면 대학은 구술면접이나 논술 등의 전형요소 추가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차라리 논술형 수능으로 대학에 변별 도구를 주자”고도 제안했다.

 절대평가를 확대하더라도 등급뿐 아니라 원점수를 일부 공개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이런 주장을 내놓은 이는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에서 교육 공약을 입안한 인물 중 하나인 교육평론가 이범이다. 그는 21일 더미래연구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수능 절대평가 때문에 동점자가 많이 발생한다면, 동점자의 처리 기준을 위해 원점수를 대학에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고 밝혔다. 동점자에 한해 대학이 원하는 2~3개 과목의 원점수를 제공하고, 대학이 설정한 기준에 따라 합격·불합격을 가리게 하자는 제안이다.

 수능의 출제 과목·범위를 줄이자는 제안도 나온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출제 범위를 고1 때 배우는 공통과목과 통합과목으로만 제한하자”고 요구했다. 안상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은 “내년 고1부터 적용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취지는 고1은 공통과목을 듣고, 2~3학년때 진로와 적성에 맞게 과목을 선택하라는 건데, 교육부의 시안대로라면 학생들이 자유롭게 과목을 선택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효근 하나고 교사(과학)는 국어·수학·탐구영역을 현행처럼 상대평가로 남겨놓은 1안에서 조금 더 2안 쪽으로 나아가 탐구도 절대평가를 적용한 안을 제시했다. 이 교사는 “상대평가와 절대평가가 혼재된 수능에서는 상대평가 과목에 변별이 쏠리게 된다. 탐구영역이 대입에서 더 중요한 변수가 되는 게 타당한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혜남 문일고 진학부장은“수학은 현행 난이도를 유지하되, 수능 출제 범위로 공통과목으로 범위를 한정해 수험생에게 수학에 대한 부담을 줄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대신 공대처럼 수학에 높은 성취도를 요구하는 학과는 고2~3 때 배우는 수학 내신을 반영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같은 다양한 의견은 1, 2안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강요하면 수용되기 힘들다. 3안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들이 교육부의 ‘양자택일’ 요구를 부당하다고 여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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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단체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이찬승 대표는 “교육부가 고지한 대로 수능 개편안을 31일까지 확정하기보다는 좀더 폭넓은 논의를 거쳐 최적의 안을 찾으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정해진 일정대로 무리하게 이달 말 확정하겠다고 밀어붙이다가는 자칫 더 큰 혼란과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이주희 교육부 대입제도과장은 “공청회 등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교육부는 기본적으로 1안, 2안 중에서 선택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지만 1안과 2안을 뛰어넘는 엄청난 요구가 있다면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박형수·전민희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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