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전영기의 시시각각

나약하고 허세에 찬 정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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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영기
전영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요즘 안전보장 문제에 대해 한국의 주류 정신세계는 세 가지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 첫 번째, 북한은 한국을 상대할 생각이 없는데 끊임없이 대화를 갈구한다. 둘째, 북한은 핵무장을 더욱 강화하고 있는데 그나마 있는 무장까지 스스로 줄이자고 한다. 셋째는 북한의 군사행동엔 구체적 대응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미국의 군사적 행동에 대해서만큼은 단호하게 거부 의사를 나타낸다. 청와대·더불어민주당 중심 세력과 진보를 자처하는 언론·지식인 그룹이 주거니받거니 논의를 끌어가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주한미군 철수론이 나오는 흐름을 의식한 듯 어떤 이들은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중지를 호소하기까지 했다.

대화갈구에 훈련포기론까지 등장 #전쟁은 말 아닌 힘과 의지로 막아

북한은 한 달 보름 전 “제 것이란 아무것도 없는 괴뢰들이 그 무슨 군사적 대응을 떠들어 대는 것은 가소롭기 그지없다” “우리의 자위 억제력(핵무기)이 정의의 보검이며 그것을 절대로 내려놓지 않으리라는 것쯤은 알고 덤벼들어라” “대화인지 대결인지 분명히 하라”고 한국 정부에 윽박지른 바 있다(7월 4일자 노동신문). 한국 정치의 주류 계층이 드러내는 ‘대화 갈구’ ‘무장 해제’ ‘군사행동 거부’ 세 가지 특성은 북한의 윽박지르기에 대해 나약, 허세, 논점 회피로 답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런 정신들은 1938년 히틀러의 협박에 굴복해 소위 ‘뮌헨 평화협정’을 체결한 영국의 체임벌린 총리의 순진함과 유약함을 떠올린다. 체임벌린은 침략적 성향을 지속적으로 드러내 온 히틀러와 불가침조약을 맺고 귀국한 뒤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내가 해냈다. 이제 전쟁은 없다” “우리 시대에 평화가 왔다.” 체임벌린의 선언으로 평화 무드에 빠진 유럽이 히틀러의 전쟁을 맞이한 건 1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체임벌린의 실패는 무력(武力)의 뒷받침 없이 말과 선의(善意)로만 추구한 평화가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지금의 한국과 70여 년 전 영국을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인간의 본성과 인류의 역사는 ‘전쟁은 말이 아니라 힘과 의지로 막는다’는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한반도에서 두 번 다시 전쟁은 없을 것이다. 자신 있게 말씀드린다”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누구도 한반도에서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국민을 전쟁으로부터 지켜내겠다는 대통령의 열망은 나름대로 진정성 있게 전달됐다. 하지만 어떤 근거와 수단으로 반전·평화를 이루겠다는 것인지 손에 잡히는 게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다”는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6월 김정일과 평양 회담을 마치고 돌아와 내놓은 첫 발언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흥분이나 체임벌린의 감격은 정상회담→공동선언이라는 눈에 보이는 성과에 따른 것이다. 전쟁 도발의 주체로부터 말뿐일지언정 무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으니 그 감상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듯 정상회담과 공동선언이 전쟁이나 핵무장을 막지는 못했다.

하물며 문 대통령은 도발의 당사자인 북한 쪽 얘기는 한마디도 듣지 않은 채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대신 우리의 안보 협력자인 미국한테 ‘한국에서 군사행동을 할 생각을 감히 하지 말라’고 경고한 셈이니 미덥지 못하고 방향을 헛짚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한국이 이룩한 자유와 정의, 민주주의를 지켜 내겠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북한의 핵무장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몇 마디 말만 추가했어도 그의 반전·평화론은 균형감각이 돋보였을 것이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