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700m에 위치한 인구 1200여명의 작은 산골 마을. 전교생이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는 초등학교가 있다. 강원도 평창 방림면 계촌초등학교가 그 주인공이다. 1931년에 개교한 계촌초등학교는 한때 주변에 3개의 분교까지 냈었지만, 여느 시골학교처럼 지속적인 학생 수 감소 문제를 겪고 있었다.
산골마을에 클래식 별빛이 쏟아지다
2009년 3월 당시 교장이었던 권오이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음악의 씨앗을 심어주고자 했다. 본인도 강릉시 교향악단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기에 음악이 가져다줄 변화를 믿었다. 아이들이 최소한 두 개 정도의 악기는 배울 수 있게 해보자는 목표로 음악 교육을 시작했다.
당시 재학생 중에는 방과 후 교실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해본 경험이 있는 3명이 전부였고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서 뭐 할거냐"는 반응을 보인 학부모들도 있었다. 그러나 도시의 아이들처럼 사교육이나 별다른 체험활동을 접하지 못하던 아이들에게 음악은 놀이가 됐고 계촌별빛오케스트라는 그렇게 탄생했다.
계촌초등학교에서는 입학과 동시에 6년간의 오케스트라 단원 생활이 시작된다. 1학년 때 예비단원으로 시작해 바이올린으로 기초를 닦은 뒤 3학년부터 파트를 나눠 연주한다. 퍼스트 바이올린·세컨드 바이올린·더블베이스·클라리넷·플루트·첼로 등 6개 파트를 아이들의 희망 사항과 체형에 맞춰 선택할 수 있다. 악기 구매와 교육, 활동비는 전액 학교에서 지원한다. 학기 중에는 방과 후 수업, 방학 동안에는 집중연습 기간을 갖는다.
2015년 현대차정몽구재단이 주최하는 ‘예술세상 마을프로젝트’에 선정되어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생들로부터 깊이 있는 지도가 진행되고 있다. 매주 수요일마다 병설 유치원 동생들과 동요조회를 갖고 점심시간에는 10분씩 짬을 내어 작은 음악회도 열린다. 연주활동에만 한정 짓지 않고 음악이 학교생활 곳곳에 일상화되어있다.
음악은 아이들에게 많은 변화를 끌어냈다. 말썽꾸러기 친구는 동생들을 잘 챙기는 의젓한 형이 되었고, ADHD(주의결핍력 과잉행동장애) 진단을 받고 도시에서 전학 온 학생은 평범한 아이의 모습을 찾기도 했다. 왕따나 집단 괴롭힘 같은 단어는 이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단체 생활에 익숙하다 보니 서로서로 살뜰하게 챙긴다. 공연준비와 뒷정리까지 척척 해내며 ‘조화’를 자연스럽게 배워나간다.
조화는 연주에서 큰 빛을 발휘한다. 보통 개인실력을 쌓고 합주를 시작하는데 별빛 아이들은 연주력이 조금 모자라더라도 합주를 시작할 수 있다. 서로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맞춰 나가는 것이다.
별빛오케스트라에서 지휘를 맡고있는 이영현 선생님은 “아이들인 만큼 받아들이는 속도가 빠르다. 처음엔 이게 될까 싶었지만 음악에 대한 감이 무척 좋고 능력치도 높다. 교육성과가 높게 나온다. 우리 아이들이 연주하는 레퍼토리는 셀 수 없이 많다. 보통 초등과정의 오케스트라는 몇 곡만 반복하는데 별빛 아이들은 연주회마다 다른 레퍼토리를 연주하고 있다. 동년에 비해 수준이 훨씬 높다. 계촌이 클래식 마을로 변신하는데 이 아이들이 지대한 공을 세운것 같다”며 아이들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드러냈다.
별빛오케스트라는 방학중에도 연습을 쉬지 않는다. 다음 주에는 계촌마을 클래식 거리축제, 9월에는 평창에서 열리는 연합음악회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8월 7일부터 11일 까지는 집중연습기간을 가졌다.
집중연습은 '개별연습-파트연습-합주'로 이어진다. 축제에서 연주할 곡들인 윌리엄텔 서곡, 캐리비안의 해적, 라데츠키 행진곡, 천국과 지옥 서곡중에서 캉캉, 스웨디시 랩소디, 콰이강의 다리 등 10곡이 넘는 합주곡을 지치지 않고 연주했다.
한국의 '엘시스테마(베네수엘라의 유소년 음악교육 프로그램)'를 꿈꾸는 별빛오케스트라의 무대는 8월 18일~20일 사흘간 평창군 방림면 계촌마을 일대에서 열리는 ‘제3회 계촌마을 클래식 거리축제’에서 만나볼 수 있다. 별빛 아이들은 가을로 입장하는 밤 하늘을 클래식 선율로 채울 예정이다.
평창=사진·글 장진영 기자artj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