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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티샷 1순위 ‘아너’ 왜 돈 딴 ‘오너’가 됐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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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국내 첫 골프 코스는 9홀에 전장 2322야드인 서울 용산 효창원 골프장이다. 사진은 효창원의 코스맵.[사진 손환 중앙대 교수]

국내 첫 골프 코스는 9홀에 전장 2322야드인 서울 용산 효창원 골프장이다. 사진은 효창원의 코스맵.[사진 손환 중앙대 교수]

한국에 골프장 건설의 꿈이 시작된 것은 딱 100년 전인 1917년이다. 동경제대 법대를 나온 일본의 엘리트가 그 꿈을 꿨다. 남만주철도 경성관리국 과장 안도 유사부로(安藤又三郞)는 중국 다롄의 본사 부설 골프장을 견학한 뒤 경성에도 코스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골프장이 생기면 철도국 직영 조선호텔에 손님들이 오래 머물러 수익이 늘어날 거라고 생각했다.

한국 골프 문화 왜곡한 일본 잔재 #일본식 영어발음 ‘오~나’서 비롯 #라운드 시작 ‘티업’ 아닌 ‘티오프’ #100년 전 일본 통해 골프 들어와 #화려한 프라이빗 클럽 문화 유입 #접대 비리의 온상으로 변질돼

지금의 숙명여대와 효창공원 일대의 국유지에 1921년 개장한 효창원 코스는 한국 최초의 골프장이다. 효창원 이전 함경도 원산 등에 영국인들이 골프장을 만들었다는 설이 있으나 확인되지는 않았다.

효창원의 골퍼 및 캐디 모습. [사진 대한골프협회]

효창원의 골퍼 및 캐디 모습. [사진 대한골프협회]

당시 경성에 있던 일본인들은 골프를 잘 몰랐다. 푸른 초원 위에서 검을 휘두르듯 스윙하는 것은 좋아했지만, 퍼트는 무사도 정신에 위배된다고 생각했다. 그린에 올라가면 그냥 공을 집어 다음 홀로 가는 골퍼가 흔했다. 날이 더울 땐 배가리개만 한 채 나오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국골프 100년사』(대한골프협회)와 『코스에 자취를 남긴 사람들』(최영정)은 전한다.

한국은 일본을 통해 골프를 배웠다. 그러나 일본을 경유하면서 왜곡된 부분도 있다. 서양에서도 골프를 즐기려면 돈이 제법 들기도 하지만 소박한 퍼블릭 코스가 훨씬 더 많다. 그러나 일본을 통해 들어온 한국 골프는 화려한 프라이빗 위주였다. 으리으리한 클럽하우스와 관리비가 많이 드는 매끈한 페어웨이를 가진 호화로운 클럽 문화가 유입됐다.

젊은 여성을 캐디로 쓰는 문화도 그렇다. 골프가 국내에선 접대의 방편이나 비리의 온상으로 인식되는 계기가 됐다. 실제 전 국회의장을 비롯한 많은 인사가 골프장 내 성추행 추문에 휘말렸다.

1941년 일본오픈에서 우승한 한국인 첫 프로골퍼연덕춘.[대한골프협회]

1941년 일본오픈에서 우승한 한국인 첫 프로골퍼연덕춘.[대한골프협회]

예탁금 회원제도 일본 문화다. 원래 회원제 골프장은 회원끼리 십시일반 공동투자하고, 책임과 오너십도 공동으로 나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의 골프장들은 주인은 적은 돈을 투자하고, 회원들 돈으로 코스를 짓는 구조로 왜곡됐다. 골프장 주인은 쉽게 골프장을 만들어 좋다. 회원들은 싸게 이용하면서 주식처럼 회원권 거래 차익도 남길 수 있었다. 양쪽 모두 윈윈으로 보이지만 모래성 위에 쌓은 성이나 다름없었다. 골프장 회원권 가격이 떨어지면서 회원권 소유주는 원금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빈발하고 있다.

일본을 통해 골프가 들어오다보니 잘못된 용어도 많다. 한국 골퍼 중 가장 먼저 티샷을 하는 사람을 오너(owner:주인)라고 이해하는 사람이 많다. 아너(honor:명예)가 맞는 말이다. 일본사람들이 ‘아너’라는 발음을 못해 ‘오~나’로 부르는데 한국에서는 ‘owner’라 이해한 것이다. 언어는 생각도 바꾼다. 오너라는 단어 때문에 돈이 상당히 중요한 것처럼 인식된다. 그러나 골프는 돈이 아니라 명예를 중시하는 스포츠다.

한국과 미국·일본에서 골프장을 경영했던 황진국 IMG 골프코스매니지먼트 한국 대표는 “일본 발음을 따르다보니 라운드를 시작한다는 뜻의 티오프(tee off)가 티업(tee up)으로 인식됐다. 파 3홀, 파 4홀, 파 5홀이 각각 숏홀, 미들홀, 롱홀로 불리는 것도 일본의 영향”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짧은 롱홀’ ‘긴 숏홀’ 같은 역설적인 단어들이 나온다. 그린에서 경사를 보는 걸 ‘라이(Lie)를 본다’고 하는 것도 일본의 영향이다. ‘라인을 본다’ 혹은 ‘경사를 본다’가 맞는 말이다. 라운드를 라운딩이라고 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2015·16년 일본여자프로골프투어상금왕 이보미. [중앙포토]

2015·16년 일본여자프로골프투어상금왕 이보미. [중앙포토]

2017년 현재 세계여자골프랭킹 100위 이내엔 한국 여성 골퍼들이 39명이나 포진해 있다. 일본은 8명이다. 일본 여자 투어에선 한국 선수가 지난 8년간 6차례나 상금왕을 차지했다. 남자 골프에서도 한국은 일본 보다 먼저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했다. 지금은 한국의 골프 실력이 일본을 추월했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골프 문화도 한국이 앞설 때가 됐다.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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