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이트부터 성접대까지…‘갑질' 의사 28명 입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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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부산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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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에는 내가 아는 마담이 있는 술집으로 가자” “네. 위치 알려주시면 먼저 가 있겠습니다”

의료보조기 판매업체에서 1000만원~1억원 수수한 의사 28명 불구속 #판매업체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총 11억 3000만원 리베이트 지급 #리베이트 금액은 의료보조기 판매가격에 전가돼 환자 피해로 돌아가

경남 양산에서 A 병원을 운영하는 이모(42)씨는 부산에서 의료기기 판매업체를 운영하는 문모(42)씨에게 수시로 성 접대를 요구해왔다. 이씨는 문씨에게서 매달 용돈처럼 현금을 받고, 명절에는 한우 세트와 와인 같은 선물을 받았다. 2013년부터 3년간 받은 리베이트가 총 4356만원에 이른다.

이씨처럼 문씨에게 리베이트를 받아온 의사 28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부산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의료보조기 판매업체에서 보조기 판매금액의 20~30%를 리베이트로 받은 정형외과 의사 28명을 의료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10일 밝혔다. 이들에게 리베이트를 준 의료보조기 업체 대표 문씨는 의료기기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판매업체 직원 2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문씨는 자사 제품을 환자에게 처방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의료보조기 판매대금의 20~30%를 의사에게 리베이트로 지급해왔다. 문씨가 부산·경남지역 정형외과 37곳 100여명의 의사에게 2011년 2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지급한 돈은 총 11억 3000만원에 이른다. 경찰은 이 가운데 1000만원 이상 받은 의사 28명을 입건했다. 가장 많이 받은 의사는 부산 수영구 S 정형외과 소속 남모(50)씨로 9600만원을 챙겼다.

문씨는 리베이트와 별도로 의사들에게 수백만 원의 학회비를 지급하고, 명절에는 한우 세트 등 선물을 챙겨줬다. 골프장 예약과 간호사 간식 제공 같은 잔심부름을 해주고, 심지어 술값 대납과 성접대를 하기도 했다. 사진 찍기가 취미인 의사에게는 200만원이 넘는 카메라 렌즈 교체비를 주기도 했다. 문씨 업체는 연 매출 15억~20억원 규모로, 부산의 10여개 의료보조기 업체 가운데 세 번째로 매출이 높다.

박용문 부산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장은 “의료보조기 시장 규모가 크지 않지만 부산의 10여개 업체가 경쟁을 하다 보니 보조기 처방 권한을 가진 의사들에게 돈을 제공한 것”이라며 “의료보조기 업체가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의료보조기 업체대표 문씨는 인터넷 등에서 20만원 내외에 판매하는 척추보조기를 40만원에 납품해왔다. [사진 네이버 캡쳐]

의료보조기 업체대표 문씨는 인터넷 등에서 20만원 내외에 판매하는 척추보조기를 40만원에 납품해왔다. [사진 네이버 캡쳐]

문제는 의료보조기 업체가 의사에게 제공한 리베이트는 보조기 판매가격에 전가돼 환자들이 피해를 본다는 점이다. 의약품은 정부의 통제로 제약회사가 일방적으로 가격을 책정할 수 없지만 의료보조기는 판매업체가 임의로 정할 수 있다. 문씨는 20만원짜리 척추보조기를 환자들에게 40만원에 판매하는 방식으로 리베이트 금액을 충당해왔다.

박 대장은 “재발방지를 위해 병원 등 의료기관 내에 의료보조기 납품업체별 가격 비교표를 비치하도록 보건복지부에 건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부산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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