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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증세→원전→사드까지, 자고 나면 뒤바뀌는 여권 ‘궤도 수정’...전문가들 "아마추어리즘이자 포퓰리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30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북한 미사일 도발 등 현안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우 원내대표는 “북한의 도발로 안보 위협이 매우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잔여 발사대 추가 배치 결정은 시의적절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30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북한 미사일 도발 등 현안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우 원내대표는 “북한의 도발로 안보 위협이 매우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잔여 발사대 추가 배치 결정은 시의적절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30일 오후 1시 30분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긴급기자간담회를 했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출입기자들에게 ‘공식 일정 없음’으로 공지했던 그다. 그는 “휴가철이고 일요일이어서 조용히 넘어가는 날이라 생각했는데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 발사 등으로 긴박하게 돌아가서”라고 설명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잔여 발사대 4기의 추가 배치 결정을 시의적절했다고 평가했다. “북 도발로 안보 위협이 매우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해야 한다. 한·미동맹 차원에서라도 이해한다”라고 했다.
앞서 여권은 28일 국방부가 사실상 사드 배치를 내년 하반기로 미루는 조치(사드 부지에 대한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발표했을 때도 환영했었다.

며칠 만에 달라진 여권의 모습에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조변석개(朝變夕改·아침저녁으로 다르다)”라고 지적했다. “한 치 앞도 못 내다본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전협정일인 27일을 전후로 북한이 미사일 도발을 할 것이라고 예고됐던 터여서다. 당장 김근식 경남대(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28일에는 사드 배치를 좀 미뤄도 되고 29일에는 당장 필요하다고 했는데 한 치 앞을 못보고 바뀐 것을 국민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며 “김정은이 세게 위협한다고 당장 사드를 설치하겠다는 건 너무 감정적인 대응이란 느낌이 들게 한다”고 말했다.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 이윤석(왼쪽), 이희진 대변인이 지난 27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공론화위는 당시 “우리는 찬반 결정을 내지 않고 최종 결정은 정부가 한다”고 했다. 이에 책임 떠넘기기 논란이 일자 김지형 공론화위원장은 다음날인 28일 해명자료를 내고 “결론을 정부에 전달하는 것이 위원회 본연의 임무”라고 입장을 바꿨다. [연합뉴스]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 이윤석(왼쪽), 이희진 대변인이 지난 27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공론화위는 당시 “우리는 찬반 결정을 내지 않고 최종 결정은 정부가 한다”고 했다. 이에 책임 떠넘기기 논란이 일자 김지형 공론화위원장은 다음날인 28일 해명자료를 내고 “결론을 정부에 전달하는 것이 위원회 본연의 임무”라고 입장을 바꿨다. [연합뉴스]

문제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자고 나면 뒤바뀌는 ‘궤도수정’이 잇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탈원전·증세 논의도 그 예다.
지난 27일 “우리는 (원전 건설 중단에 대해) 찬반 결정을 내지 않는다, 최종 결정은 정부가 한다”고 했던 신고리 원전 5, 6호기 공론화위원회(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는 책임 떠넘기기 논란이 커지자 하루 만에 “결론을 정부에 전달하는 것이 위원회 본연의 임무”라고 했다. 공론화위의 권한·책임·방법론에 대해 처음부터 정부와 공론화위가 정확한 인식을 공유하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20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2017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문재인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이날 비공개 회의 때 추 대표는 ‘초대기업ㆍ초고소득자에 대한 법인세ㆍ소득세 인상론’을 제안했다. [연합뉴스]

지난 20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2017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문재인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이날 비공개 회의 때 추 대표는 ‘초대기업ㆍ초고소득자에 대한 법인세ㆍ소득세 인상론’을 제안했다. [연합뉴스]

정부 여당의 증세 드라이브에서도 당·정·청 간 스텝이 꼬이는 장면이 여러 차례 노출됐다. 거시경제 사령탑인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소득세·법인세 명목세율 인상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공언했으나 지난 20일 비공개 국가재정전략회의 때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초대기업·초고소득자 대상의 세율  인상을 주장하면서 기조가 달라졌다. 추 대표 자신도 26일 기자들과 만나 “(이번 세법 개정안에서) 두 축은 소득세·법인세이고 나머지 세원은 논의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으나 다음날 그의 말을 뒤집는 일이 벌어졌다. 27일 민주당이 당·정협의 후 브리핑에서 “자본소득 과세 강화 방안이 포함돼 있다”고 한 것이다.

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우 원내대표는 30일 기자간담회에서 탈원전·증세 논의와 관련해 “자유한국당이 전기료 폭탄 등 가짜뉴스를 만들고 있다”, “초거대기업·초고소득자 적정과세에 야당이 묻지마 반대를 하고 있다”며 야당 탓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여당을 향해 “아마추어리즘이자 포퓰리즘”이라고 질타한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후마니타스 칼리지)는 “문재인 정부가 사드 배치의 현실적 불가피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보니 왼쪽 깜빡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가고 있다”며 “포퓰리즘이 정책의 비일관성을 낳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창렬 용인대(교양학부) 교수는 “탈원전은 전국민적 전력 복지의 문제이자 산업경쟁력 차원의 중차대한 문제인데 정부가 국가적 전력 수급 등에 대한 완벽한 사전 검토 없이 공론화위부터 만들고 서로 핑퐁을 하는 모습은 아마추어리즘”이라고 말했다. 정부여당으로선 곱씹을 쓴소리다.

김형구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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