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탕트 장정의 제1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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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워싱턴의 미소 정상회담은 인류가 갈망해온 신 데탕트 장정의 제1보로 기록될 만하다. 그것은 70년대 말에 등장한 신 냉전분위기 해소의 시작을 의미한다.
6년 전 「레이건」미 대통령이 제로옵션(영의 선택)이란 말을 꺼냈을 때 만해도 많은 사람들은 이를「순진한 제의」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갖가지 우여곡절끝에 「레이건」과 「고르바초프」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중거리 핵미사일(INF)폐기협정에 정식 조인함으로써 이 순진해 보였던 제의는 핵공포 제거라는 인류의 소방이 아주 실현 불가능만 것만은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 주었다. 「레이건」의 집념과 「고르바초프」의 결단이 멋진 합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세 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해 동서 양 진영의 대표들은 INF 이외에도 보다 가공스런 전략 핵무기의 50% 감축협상에 발판을 마련했고 지역분쟁과 쌍무문제 등에 관해서도 폭넓게 논의했다.
그러나 한국을 포함한 수많은 여타 국가들엔 핵군축이라는 거창한 명제 못지 않게 재래식전력이나 지역분쟁에 관해서도 커다란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70년대 만해도 미소는 요격미사일(ABM) 제한 협정, 우주선 합동 비행, 심지어 미국의 콜라와 소련의 보드카 교환 협상을 성사시키는 등 두 나라는 상당한 데탕트를 구가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동서 화해 무드를 결정적으로 해친 것은 79년 12월소련군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라는 지역분쟁이었다.
그 여파로 80년 모스크바올림픽과 84년 LA올림픽이 반쪽 대회가 돼버렸고, 이란-이라크전은 두 초강대국의 방조로 8년째 계속중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소련군 철수문제만 해도 그렇다. 소련은 미국이 반군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면 철군하겠다는 입장이고, 미국은 소련군이 먼저 철수하면 반군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결국 그게 그 소리지만 미소가 이렇게 선후를 놓고 입씨름만 계속해 온 근본 이유는 상호간의 불신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미소가 과연 지난 8년간 악화됐던 신냉전체제를 청산하고 새로운 화해무드를 조성, 얼마나 지속시킬 수 있을는지는 전적으로 양국간의 신뢰회복 여부에 달려있다고 본다. 핵무기 감축 못지않게 양 진영이 재래식무기 분야에도 각별한 신경을 써야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벌써부터 유럽 각국에선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간의 전력차이를 우려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으며 우리 한국으로서는 극동에서의 소련전력 증강, 특히 소련과 북한간의 군사적 유대강화를 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모쪼록 미소 양국은 이 같은 화해정신을 되새겨 앞으로 이어질 실무회담에서도 88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한반도 주변의 긴장완화를 위해 공동으로 협력할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이러한 길만이 이번 미소정상의 역사적 대좌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전후시대 종결의 장으로 기록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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