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리카와 아야의 서울 산책

위기의 기억 너무 빨리 잊는 한국, 20년 지나도 계속 되새기는 일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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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나리카와 아야 일본인 저널리스트

나리카와 아야 일본인 저널리스트

세계적으로 봐도 한국만큼 열정적인 나라도 드물다. 내가 세 번이나 한국에 유학 온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에는 일본에서 느낄 수 없는 자극적인 매력이 있다. 그런데 그 열정이 신기할 정도로 금방 식어버리고 잊혀지는 게 너무나 아쉽다. 국민성 때문일까.

최근 일본에서 다니던 신문사의 선배 기자가 올해로 한국 IMF 경제위기가 터진 지 20년이 됐다며 기획기사를 준비하는데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당시 직장에서 해고당하거나 취직이 취소되는 등 인생에 큰 영향을 받은 사람을 찾고 있는데 그게 잘 안 된다고 했다.

그런 사람이 얼마든지 있을 텐데 왜 그렇게 못 찾는지 처음엔 이해가 안 됐다. 그런데 찾아보면서 이유를 알게 됐다. 20년이라는 세월이 한국에서는 너무 긴 세월인 것이다. 그렇게 큰일을 겪었어도 옛날 이야기처럼 느끼고 당사자도 “자세한 건 잘 기억 안 난다”고 한다. 심지어 “20년이나 지났는데 왜 우리나라도 아닌 일본에서 그런 기사를 쓰냐”며 신기해 한다.

일본은 조금 다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은 물론 1995년 고베 대지진도 매년 그 시기가 오면 당시를 되돌아보거나 희생자 유족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재발 방지 대책 등 여러 보도를 한다. 20주년 때는 아주 크게 보도했다. 잊지 않기 위해서다.

선배가 IMF 위기 20년을 취재한다고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건 2002년 한국에 처음 유학 왔을 때 만난 친구다. 난 당시 IMF 위기가 어떤 건지 잘 알지 못했지만 그 친구 아버지의 공장이 망하고 어머니는 집을 나가버렸다고 들었다. 어렵게 살면서 어떻게든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자극을 받았다.

선배에게는 IMF 위기 때 은행원이었다가 해고당한 분을 찾아 소개했다. 처음 인터뷰 요청을 했을 때는 “해고당했다고 억울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다른 일도 많이 경험하게 돼 좋았다”며 별거 아닌 것처럼 이야기했다. 그런데 선배와 같이 이야기를 들어보니 고생담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대출 담당이어서 사업이 망하게 된 중소기업 사장들이 많이 찾아와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걸 뻔히 알면서도 하소연할 수밖에 없었던 사장들 심정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리 은행이 퇴출 은행으로 지정돼 다른 은행에 인수되면서 해고당했다. 나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에 빠진 사람들을 많이 봤기에 내가 해고당한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직접적인 이유는 아닐지 몰라도 그가 부인과 헤어진 것도 해고와 무관하지 않은 듯했다.

인터뷰는 안 했지만 다른 몇 명으로부터도 IMF 위기에 관한 경험을 들었다. 아버지가 대우그룹 사원이었다는 분은 그룹이 해체되면서 그때까지 회사에서 지급받았던 대학 등록금이 끊겨 스스로 벌어야 했고 취업은 생각조차 못했다고 한다. 결국 20대에 사업을 시작해 성공했다고 한다. 또 다른 분은 97년 취업하자마자 해고당해 예정됐던 결혼도 연기하고 외국에 나가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었다고 한다. 지금은 언론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분들의 경험을 통해 짧은 기간에 아픔을 이겨낸 한국의 저력을 실감했다. 물론 자살하거나 재기 못할 정도의 심각한 상황에 빠진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일본에서 아픈 기억을 되새기며 끊임없이 보도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 아픔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자는 각오다. 지진 자체는 자연재해라 막을 순 없지만 어떻게 대비하고 대처해야 할지, 아픔을 공유하며 앞으로의 희생을 줄이자는 것이다. 한국도 그랬으면 좋겠다. 가슴 아픈 기억이지만 20년 전 일어난 경제위기를 다시 돌아보면 앞으로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언제 재발할지 모를 다음 경제위기의 희생자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나리카와 아야 일본인 저널리스트(동국대 대학원 재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