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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이 할 일인데…민원인에 제 업무 맡긴 '갑질' 공무원들 징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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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군포시에서 어린이집 관리를 담당하는 공무원 A씨는 올해 4월 한 어린이집의 폐원 신고를 받았다. 문제는 이 어린이집에 설치된 폐쇄회로 TV(CCTV)였다. 국비와 도·시·군비로 설치 비용의 80~90% 정도가 투입됐기 때문에 함부로 처리할 수 없다.

어린이집에 설치된 CCTV. 기사 내용과 상관없음 [중앙포토]

어린이집에 설치된 CCTV. 기사 내용과 상관없음 [중앙포토]

원칙대로라면 담당 공무원인 A씨가 직접 수요조사를 해 다른 어린이집에 설치하거나 사회복지시설에 CCTV를 기증해야 한다. 하지만 A씨는 이 일을 폐원 신청을 한 어린이집에 맡겼다. '처리했다'는 증빙서류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경기도는 군포시에 A씨와 해당 부서를 주의 처분하라고 요청했다.

경기도, 31개 시·군 대상으로 소극적 업무처리실태 특별 조사 #지위 이용해 민원인에게 업무 떠맡기고 소극적으로 업무 처리 #31건 적발해 8명 징계…22건 34명에는 훈계 처분, 변상명령도 4건

민원인에게 제 업무를 떠넘기거나 업무를 대충 처리해 피해를 준 '갑질' 공무원들이 경기도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경기도 감사실은 지난 5월부터 6월까지 31개 시·군을 대상으로 '소극적 업무처리 실태 특별 조사'를 해 31건을 적발했다고 27일 밝혔다. 도는 사례의 경중을 따져 징계 8건(8명), 훈계 22건(34명), 시정·주의 29건, 변상명령 4건 등의 처분을 해당 시·군에게 각각 요청했다.

적발된 내용은 도민에게 피해를 주고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책임회피가 9건이나 됐다. 실제로 개발지역 토지수용 업무를 담당하는 이천시 공무원 B씨는 지난해 토지수용자가 제출한 토지수용재결 신청서를 법정기한(60일)보다 85일이나 지난 후에 경기도토지수용위원회에 냈다.

경기도청 전경 [중앙포토]

경기도청 전경 [중앙포토]

이로 인해 지자체가 토지소유자에게 수용재결 지연에 따른 1600만원의 가산금을 줘야 하게 되자 문책을 우려해 땅 주인을 3차례나 찾아가 토지수용재결 취하 요청서와 토지가격 재감정 협의요청서를 다시 쓰도록 요구했다.
하지만 재평가 결과 토지수용 보상금은 당초 평가액보다 오히려 2300만원이 더 늘어났다. 경기도는 이천시에 B씨와 해당 부서 팀장·과장을 함께 문책하도록 주문하는 동시에 2300만원을 시에 변상하도록 명령했다.

규정이나 절차를 까다롭게 해석해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 행정편의주의도 9건이나 됐다.
광주시 공무원 C씨는 개발행위허가 신청서를 검토하면서 보강토 옹벽 시공이 가능한데도 시공도 어렵고 비용도 비싼 철근콘크리트 옹벽 설계를 고집하다가 적발됐다. C씨는 경기도가 구조적으로 안전하면 보강토 옹벽도 가능하다고 시에 통보한 후에도 구조적 안전 검토는 하지 않고 철근콘크리트 옹벽 설계를 고집하며 허가신청서를 반려했다. 경기도는 광주시에 C씨와 해당 부서 팀장에 대한 문책을 요청했다.

이밖에도 무사안일이나 업무태만 사례(9건)와 위험이나 비용을 도민에게 떠맡기는 자익적(自益的) 업무처리도 4건이나 각각 적발됐다.
경기도는 이번 적발 사례를 각 시·군에 통보하고 널리 알려 공무원들의 부당하고 소극적인 업무처리를 근절해 나갈 계획이다.

백맹기 경기도 감사관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편의상 관례대로 처리한다든지, 일시적으로 모면하려는 의도로 적당히 처리하는 행정행위로 도민들이 피해를 본 사례가 다수 적발됐다"면서 "소극적 업무처리 관행이 사라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수원=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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