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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정호의 시시각각

북한 제재 헛일? … 이제 시작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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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논설위원

남정호 논설위원

지난해 북한 경제가 3.9% 깜짝 성장했다는 한국은행의 21일 발표는 많은 이를 황당하게 했다. 2006년 첫 핵실험 이후 북한 도발 때마다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제재 결의는 모두 7개. 폭삭 망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남한의 성장률 2.8%를 압도했다니 펄쩍 뛸 일이 아닐 수 없다.

약 안 쓰고 “약발 없다” 떠드는 꼴 #올 초 새 압박 시작돼 상황 달라져

해석은 구구했다. 먼저 ‘장마당 효과설’이 나왔다. 궁핍에 찌든 북한 주민들이 자신이 생산한 농·공산품의 일부를 장마당에 팔면서 효율성이 올랐다는 거다. 여기에다 일부 기업에 독립채산제를 허용한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더해졌다. 한쪽에선 대북 제재가 계속되다 보니 맷집이 생긴 탓이라는 ‘내성(耐性)론’도 제기됐다

실상이야 어쨌든 북한이 혹독한 제재에도 성장한다는 인식은 우리의 대북 정책에 메가톤급 파문을 몰고 올 수 있다. 대북 압박은 별 효력이 없으니 방향을 틀어야 한다는 ‘제재 무용론’과 ‘대북 대화론’에 힘이 실릴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정말 그런가. 딴죽을 걸자면 자료의 신뢰성부터 문제삼을 수 있다. 믿을 만한 북한의 경제 지표는 사실상 전무하다. 북한 경제 추정이 주먹구구일 수밖에 없단 얘기다. 실제로 5년마다 『북한의 산업』이란 자료집을 내는 산업은행은 구글 어스에 실리는 공장 사진을 보고 현황을 짐작한다고 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이 경제성장률을 낼 때 쓰는 기준은 영아사망률과 곡물 생산량이다. 이번에 자료를 낸 한국은행은 국내 정보기관이 주는 자료에 의존했다고 한다.

그러니 2015년도 북한 경제 상황을 놓고 현대경제연구원이 “1인당 명목 GDP 기준으로 8.9% 늘었다”고, 한국은행은 “실질 GDP 성장률이 -1.1%를 기록했다”고 딴소리를 해도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백번 양보해 한국은행 발표가 정확하다고 치자. 그럼 대북 제재는 쓸모없는 솜방망이란 얘기인가. 지난해 상황을 보면 “북한을 제재해도 소용없다”는 주장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열쇠를 쥔 중국에 의한 대북 압박이 사실상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 감행된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유엔은 안보리 결의 2270호를 통과시켰다. 제재의 골자는 북한의 최대 외화벌이 품목인 석탄의 수출 금지다. 하지만 여기엔 결정적 구멍이 있다. ‘민생용 수출은 허용한다’는 예외조항이다. 석탄에는 꼬리표가 없다. 그동안 민생용인지 아닌지는 북한 측 통보로 결정됐다고 한다. 석탄 수출에 지장이 있을 턱이 없다. 실제로 지난해 북한의 석탄 수출은 전년보다 12.5%나 늘었다.

하지만 지난해 9월의 5차 핵실험 이후 결의 2321호가 채택되면서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민생용 허용’이란 허점을 메우기 위해 석탄 수출을 물량(750만t) 및 금액(4억87만 달러) 기준으로 제한하기 시작한 까닭이다. 새 제재 발효 후 북한의 대중 석탄 수출은 지난 3월부터 중단됐다고 한다. 본격적인 대북 제재가 비로소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북한은 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재 무용론을 퍼뜨리고 있다. 지난 4월 외신기자들에게 휘황찬란한 평양 내 신도시 ‘여명거리’를 보여준 것도 이런 맥락이다.

요컨대 현 단계에서 ‘제재 무용론’을 주장하는 건 약을 써보지도 않고 약발이 전혀 없다고 투덜대는 것과 다름없다. 북한을 강력히 압박해 스스로 협상장에 걸어나오게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 대가는 막심하다. 북측이 우리의 대화 제의를 깡그리 무시해도 손 쓸 방법이 없는 현 상황이야말로 흐물흐물한 대북 정책의 부작용이다.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