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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현기의 시시각각

이런 야당 리더십을 더 견디라고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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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현기 기자 중앙일보 도쿄 총국장 兼 순회특파원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복도(福島)회’. 2011년 3월 도호쿠(東北) 대지진과 후쿠시마(福島) 원전사고 당시 도호쿠 현장에 함께 있던 이들의 조그만 모임이다.

한·미·일 공히 제1야당 리더십 부재 #철저한 자성이 ‘대체 리더십’ 확립

지난해 그동안 몰랐던 사실을 하나 들었다. 당시 우리를 견학 초청했던 다카시미즈 주조 공장의 모로하시 사장. 그는 대지진 발생 다음 날 전기·수도·통신이 끊긴 상황에서 우리를 위해 도쿄로 돌아갈 전세 버스를 어렵게 대절해 왔다. 문제는 운전기사 확보. 도로 곳곳이 차단되고 추가 위험이 큰 상황임에도(실제 돌아오던 중 버스와 100여㎞ 떨어진 곳에서 후쿠시마 원전 1호기가 수소폭발했다. 하지만 아직은 다들 멀쩡하다), 그는 무슨 재주인지 예비기사분까지 쉽게 구해왔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당시 운전기사분들이 운행을 강하게 거부했었다는 것. 그러자 모로하시 사장은 우리 몰래 두 분을 데리고 가 모종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한다.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기사분들은 “아, 이건 내가 꼭 가야 하는 것이구나!”라 마음을 고쳐먹었다 한다. ‘리더십’은 극한상황일수록 빛을 발한다.

일본 아베 총리의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졌단 소식이 들려온다. 일부에선 ‘아베 정권 붕괴 초읽기’란 분석도 나온다. 어림없는 이야기다. 정권교체란 다른 대체 리더십이 존재할 때 가능한 일이다. 제1 야당 민진당 지지율은 3.8%. 정권교체가 가능한 숫자가 아니다. 설령 있다 해도 ‘자민당 내 정권교체’로 끝날 거다.

미국이라고 사정은 다를까. 트럼프는 지난 4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직후 트위터에 “한국과 일본이 이 상황을 더 견뎌야 한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썼다. 난 “미국인들이 이 상황(트럼프 정권)을 더 견뎌야 한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위로해주고 싶다. 그런데도 야당 민주당은 있는지 없는지 보이질 않는다. 그러니 트럼프를 찍었던 주에선 “다음 대선에서도 트럼프를 찍겠다”는 유권자가 앞선다. 이대로 가면 트럼프 재선이다. 맥아더가 1951년 미국의 정신연령을 45세, 일본을 12살로 비유했다지만 지금 보면 둘 다 12살 같다. 미·일 양국 공히 ‘대체 리더십’ ‘대체 정당 자질’이 바닥인 건 왜일까. 유권자의 외면에 대한 철저한 원인분석과 자성이 없기 때문이다.

자민당은 2009년 8월 민주당에 충격의 패배를 당한 뒤 3년여 동안 무려 50번의 반성회를 열었다. 2주에 한 번꼴이다. 처음엔 비우호적 언론 욕만 하더니 30회 정도부터 반성의 깊이가 달라졌다 한다. 그 결과가 정권탈환이었다. 민주당은 거꾸로다. 2012년 말 정권을 빼앗기고도 반성회는 5년 동안 딱 한 번뿐이었다.

미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힐러리를 후보로 내세우는 게 아니었다”는 말만 한다. 대안 정책 마련이나 민심 파악 따윈 관심 밖이다.

남의 나라 흉볼 때는 아닌 듯하다. 제1야당 자유한국당은 반성회랍시고 의원연찬회 한 번 하더니 ‘상황 끝’이다. 국민을 향해 “이상한 설치류”라 하는 도의원이 있는가 하면 혁신위원장이 되신 분은 “탄핵에 앞장선 분들의 잘잘못을 따지겠다”고 한다. 심지어 홍준표 대표는 “TK민심은 살인범도 용서할 수 있지만 배신자는 끝까지 용서 안 한다”는 말을 쏟아냈다. 조폭을 잡아들이더니 본인도 조폭 흉내를 내고 있다.

손자병법은 “지지 않는 건 나에게 달렸고, 이기는 건 적에게 달려 있다”고 했다. 일단 자신의 문제점을 깨달아야 승리도 가능하단 얘기다. 그런데 우리 제1야당은 왜 국민이 자신들을 외면했는지 알려고도 않는다. 이쯤되면 시쳇말로 ‘노 답’이다. 또 한 번 트럼프의 말을 빌리자면, 이런 야당 리더십을 더 견뎌야 한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