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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中 공항서 한국인 단체관광객 격리, 짐검사만 4번..."혹 사드 보복?" 의심 일상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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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이달 초 중국 베이징 서우두(首都) 공항에서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다. 그를 비롯한 일행 20여명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베이징을 경유해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서우두 공항에서 짐 검사를 할 차례가 되자 공안이 “엑스레이 검색대가 고장났다”며 A씨 일행을 다른 곳으로 안내했다.

유사 사례 아직 없지만 여행업계 "관례 비춰봐도 과도" #학계선 중국인 에디터 있는 국제학술지 등재 거부도 속출 #실제 보복인지 불확실…양국 국민 감정 악화되는 건 양국 관계에 부담

격리된 공간에서 공안들은 긴 책상 위에 일행들의 짐을 풀게 했고, 모든 짐을 하나씩 검사했다. 한 명이 검사를 끝마쳐 가방을 닫았더니 옆에 있던 또다른 공안이 다시 가방을 열라고 했다.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모스크바 공항 면세점에서 선물용으로 산 고급 와인을 가져가면서 “한 달 뒤에 찾아갈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A씨의 일행은 모두 4번의 짐 검사를 받아야 했다.

A씨는 “일행 모두 50~60대의 퇴직자나 가정주부로 평범한 사람들이었는데, 이런 상황이 한 시간 가량 계속되면서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며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도 공안들이 앞뒤로 서가며 계속 인원수를 확인하는데, 범죄자 취급을 받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게 말로만 듣던 그 보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가 언급한 ‘그 보복’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 조치다. 지난해 7월 한·미가 사드 배치를 결정한 이후 중국은 경제·문화·사회 등 전 분야에 걸쳐 ‘보복 조치’를 취하고 있다.

A씨가 겪은 일이 사드 보복인지는 단언할 수 없다. 본지는 서우두 공항 여객서비스팀에 e메일로 경위를 문의했으나 답이 오지 않았다. 외교부 당국자는 “아직 비슷한 사례는 접수되지 않았지만 관련 상황은 항상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여행사 관계자는 “중국이 원래 짐 검사가 철저하긴 한데, 한 번이면 몰라도 네 번이라면 너무 과하다. 모스크바라면 그렇게 철저히 짐을 검사해야 하는 테러 위험국도 아니지 않느냐”고 의아해 했다.

그간 중국의 사드 보복은 교묘한 ‘준법 제재’ 형식을 취해 왔다. 롯데마트 영업정지는 소방법 위반이 이유였고, 한국인의 상용비자 발급 요건을 엄격히 바꿀 때도 기존에 편의를 봐주던 것을 본래 원칙대로 적용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사드 보복에 항의할 때마다 중국 측은 “그런 조치는 중국 당국이 한 것이 아니다.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중국민의 정서가 나타난 것”이라며 발뺌을 해왔다.

어디까지가 명확히 사드 보복이고 아닌지 선을 긋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중국과 관련된 사안에서 한국인들이 피해를 보거나 부당한 처우를 당하면 이를 곧 사드 보복으로 의심하는 게 일상이 됐다.

학계도 예외는 아니다. 이공계 교수인 B씨가 속해 있는 유명 대학원에서는 지난해 여름부터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 혹은 사회과학논문인용색인(SSCI)급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등재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학술논문이 연이어 퇴짜를 맞고 있는 것. 등재에 실패한 학술지의 공통점은 에디터가 중국인이라는 점이다. B씨는 “한 논문은 3곳으로부터 거절당한 뒤 네 번째로 에디터가 중국인이 아닌 유럽 지역 학술지에 냈더니 바로 등재가 됐다”고 말했다.

또 “에디터가 ‘우리 저널에 적합하지 않다’고 하면 할 말은 없는데,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사드 보복 여파가 여기까지 미친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며 “얼마 전 관련 학회에 가보니 다른 학교 사람들도 ‘어 거기도 그랬어?’라며 비슷한 경험들을 이야기하더라”고 귀띔했다. 최근엔 종신직을 보장받고 중국의 대학교에 취직했던 한국인 조교수들이 종신직 심사에서 탈락하거나 심사 자체가 계속 미뤄지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가 한국과 사드 문제에 대한 정치적 해결을 할 순 있으나, 일련의 과정에서 한국 국민에게 남긴 감정적 상처는 돌이키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중국의 과도한 ‘준법 제재’와 이로 인해 한국민의 중국에 대한 의심 내지는 피해의식이 계속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라며 “이런 정서적 반감이 회복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양국이 사드 갈등과 별도로 사회·경제 분야에서는 협력을 계속한다는 투트랙 방침을 서둘러 양국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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