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하성용 라인’ 업체에 일감 주려 기존 협력사 돈줄 조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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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협력업체 5곳을 압수수색한 검찰은 이들 업체의 납품 계약자료를 집중적으로 확보했다. 2개 업체는 하성용 KAI 사장 취임 뒤 설립됐고, 다른 2개 업체는 KAI의 발주물량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곳이다. 나머지 한 곳인 D사는 하 사장의 ‘측근 기업’으로 의심되는 회사에 일감을 넘겨준 뒤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하 사장 취임 후 급성장한 회사들 #수의계약으로 물량 나눠 받고 #다른 업체는 어음 받고 자금난

검찰은 협력업체들과 KAI의 납품 및 자금 흐름을 분석 중이다. 하 사장이 측근 기업에 일감을 몰아주고 원가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또 이를 위해 기존 협력업체를 고사(枯死)시키고 그 일감을 측근 기업에 몰아줬는지도 수사 중이다.

업계에서는 압수수색을 당한 D사가 이 같은 비리 구조의 ‘희생양’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D사는 한때 연 매출 500억원대의 건실한 협력업체였다. 그러나 지난해 대표 황모(60)씨가 KAI 생산본부 부장급 직원에게 3억원의 금품을 제공한 사실이 적발돼 사법 처리되면서 KAI와 관계가 틀어졌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황씨는 “KAI 측의 부탁으로 페루에 수출한 훈련기 격납고 수리비용 7만9000달러(약 8900만원)를 대신 송금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관세청은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KAI와 D사에 각각 과태료 480만원을 부과했다. 이후 KAI는 윤리경영 의무 위반을 이유로 지난해 7월 D사에 협력업체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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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사의 일감(에어버스 A320 부품 생산·조립 등)은 다른 4개 협력업체로 이전됐다. 이들 중 2곳은 이번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KAI와 D사의 대금 결제 방식도 어음 지급으로 바뀌었다. KAI는 대부분의 협력업체에 현금 결제 원칙을 지켜왔지만 D사는 예외가 됐다. 매달 5억~6억원가량의 돈줄이 막힌 D사는 결국 자금난을 견디지 못해 지난해 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D사 관계자는 “KAI가 고의적으로 자금 압박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D사의 일감을 나눠 가진 업체 중 일부가 계약 해지 전부터 관련 설비를 구축해 수주 준비를 마쳤다는 의혹도 있다. 이 업체는 KAI와 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 방식으로 물량을 받은 것도 의심스러운 부분이다.

검찰은 D사와의 계약 해지와 일감 몰아주기 의혹 등 일련의 과정에 하 사장이 관련됐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또 다른 협력업체인 B사는 ‘측근 기업’으로 의심받는 신생업체 P사에 일감이 몰리면서 매출이 급감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압수수색한 P사는 당초 항공업과 무관한 조선부품을 생산했는데 하 사장 취임 뒤 KAI의 생산라인 조립업체에 선정됐다. 이에 대해 KAI 측은 “D사는 대표의 불법행위 때문에 계약 해지가 된 것일 뿐이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한 협력업체 관계자는 “KAI 물량은 거의 최저가 경쟁입찰을 거치기 때문에 수의계약 자체가 일감 몰아주기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사천=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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