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취임 한 달을 맞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그간 문재인 대통령의 정상외교 데뷔전을 밀착 수행했다. 미·중·일·러 정상과의 회담에 모두 배석해 그들의 생생한 육성을 들은 강 장관은 북핵 문제를 가장 심각한 외교안보 현안으로 꼽았다.
북에 남북군사회담 제안하기 전 #외교라인 통해 미국에 설명 #중·러의 ‘쌍궤 병행’ 말은 쉽지만 #비핵화 진척돼야 평화체제도 논의 #한·중 정상 사드 이견 분명했지만 #추가 협의하기로 하고 좋게 끝내
정부가 과연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낼 수 있겠느냐고 묻자 강 장관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노력해야 한다. 외교는 낙관도 비관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있는 요소를 가지고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담담하게 답했다. 인터뷰는 17일 오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약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 17일 북한에 군사회담, 적십자회담을 열자고 제안한 것은 현재 국제사회의 제재 국면과 온도차가 있는 것 아닌가.
-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도 대화만 하자는 것이 아니다. ‘또 도발하면 우리도 국제사회의 추가적인 제재와 압박에 동참할 수 없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이니 태도를 바꾸라’는 것이다.”
- 이번 제안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어땠나.
- “발표 전 공관을 통해 미국에 알려주고 이해를 구하는 등 긴밀히 공조하고 있다. 인도주의 사안(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 제안)은 정치적 사안과 별개라는 공감이 있었다. 군사 접촉에 있어서도 상황 관리를 위해서는 필요하다는 이해가 있는 것으로 안다.”
- 한·미 간에 세컨더리 제재(북한과 합법적 거래를 하는 제3국 기업·개인도 제재)에 대해 협의가 이뤄지고 있나.
- “구체적인 세컨더리 제재 방안에 대해서 협의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 채택 추이를 보면서 미국이 독자 제재를 생각하고 있는데, 이런 과정에서 우리와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
- 8월 초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이용호 북한 외무상이 참석하면 남북외교장관 회담을 할 의향이 있나.
- “전향적으로 검토하려고 한다. 하지만 제안했는데 거절당하면 모양새가 좋지 않기 때문에 여건을 봐가면서 조심스럽고 자연스럽게 추진해보려고 한다.”
- 베를린 구상에 대한 북한의 호응을 끌어내기 위해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하는 방안을 고민할 수 있나.
- “지금으로선 북한의 불법적인 (핵·미사일) 도발과 합법적인 방어 차원의 훈련을 바꿀 수 없다는 게 우리 입장이다. 비핵화 진전에 따라서는 그런 것도 같이 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있지만, 거기까지 가는 여정이 아직은 멀다.”
- 그러려면 북한의 핵 동결 선언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 “북한의 명시적인 태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압박·제재와 함께 ‘태도를 바꾸면 이런 것이 있을 수 있다’는 인센티브에 대한 메시지를 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핵·미사일을 포기하고 다른 길로 나오면 체제 안보나 국제사회의 경제적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북한에 계속 전달할 필요가 있다.”
-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동시에 논의하자는 중국과 러시아의 ‘쌍궤(雙軌) 병행’ 제안은 한국의 입장과 비슷한 측면이 있는데.
- “비핵화를 하면서 평화체제를 추진하는 게 말은 쉬운데, 결국은 이행 로드맵이 중요하다. 평화체제 논의는 비핵화 논의가 어느 정도 진행된 뒤에 가능하다. (문대통령의 한반도 평화구상과) 쌍궤병행과는 속도나 시기 면에서 차이가 있다.”
-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고 해도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저지른 반인도 범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과 체제 보장, 김위원장의 안위 보장을 하는 것이 동시에 가능할까.
- “흑백논리로 다룰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북한과의 관계 복원을 위한 대화를 한다고 했을 때 인권 문제도 분명히 다룬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공약이다. 유엔 권고 등을 고려해 이를 의제로 가져가야 우리가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 있고, 북한과의 대화에서도 실질적이고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남북 관계 복원은 우리가 주도해도 국제사회 전반의 지지가 없으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 국제사회가 기대하는 인권 문제도 북한과의 관계복원을 위한 대화에서 하나의 의제로 넣을 필요가 있다.”
-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은 충분히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일정 부분 한 바도 있다. 하지만 교역량의 90%, 대북 원유 제공의 95%라는 그런 영향력 측면에서 더 할 수 있는 것이 있지 않느냐는 게 문 대통령과 국제사회의 메시지다. 안보리 제재 이상의 조치에 대해서는, 중국 스스로가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나중에 보고 판단할 수 있을 지 몰라도 중국이 먼저 ‘이렇게 하겠다’고 선언한 뒤 하는 것 같지는 않다.”
-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문 대통령과의 회담 중 '혈맹'을 언급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는데, 어떤 상황이었나.
- “과거에는 그랬으나 지금은 북핵을 절대 용납할 수 없고, 안보리 차원에서 제재를 철저히 이행하고 있다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언급됐다. 그 표현 자체에 엄청난 의미가 있었던 것이 아닌데, 시 주석이 말씀하신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이 된 것 같다. 과거에는 그랬으나 지금은 이렇다는 취지였다.”
-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문제에 대한 정부 기조는 무엇인가.
- “사드 배치는 동맹 차원에서 연합 방위 태세 강화를 위해 내린 결정이다. 환경영향평가는 국내적으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이지, 배치 결정 자체를 번복하기 위한 것은 분명히 아니다.”
- 한·중 정상회담에서 사드 관련 논의는 어떻게 이뤄졌나.
- “서로의 입장 차이로 인해 첫번째 정상회담이 좋지 않게 끝나선 안 된다는 양국간 공감대가 있었다. (정상회담전에) 의제 조정 등에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사드 부분에 대해서는 이견은 분명했지만, 대화가 오래 진행됐고 두 정상이 진솔하게 소통했고 앞으로 추가 협의를 하기로 했다. 이견이나 간극을 강조하기보다는, 더 활발한 외교적 소통이 필요한 부분이다.”
- 한·중수교 25주년 기념일인 8월 24일을 계기로 문 대통령이 방중할 수 있나.
- “(중국으로부터) 조속한 방중을 원한다는 초청을 받았고, 실무선에서 중국 측과 협의하고 있다. 수교 기념일이 두드러지는 계기일 수 있는데, 양 측 사정이 맞아야 한다.”
- 위안부 합의 검토를 위한 TF를 구성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합의에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것도 그렇고, 인권 문제는 피해자 중심의 해결이 기본인데 합의 내용이나 경과에 있어 그런 부분이 충실하지 못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잘잘못을 추궁하자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판단해 보려고 한다. 어떤 부분이 부족했고, 어떤 기회를 놓쳤는지 꼼꼼하게 보려고 한다.”
- TF 조사 결과 합의를 원상 복귀시켜야 한다면 재협상 외에 방법이 없지 않나.
- “'일방 파기'라는 과격한 말도 있지만 그것은 굉장히 비외교적일 것이고, 나가는 순간 기정사실화하는 부분이 있어 매우 조심스럽다.”
-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 “공관을 보호해야 하는 외교부의 국제적 의무가 있지만, 소녀상에 대한 시민사회의 열망을 공감하고 존중해야 한다. 일본이 이전을 요구하면 할수록 소녀상은 더 많이 만들어질 것이다.”
-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계속 거론한다. '재협상(renegotiation)'인가, '개정협상'인가.
- “미국이 보낸 서한에는 '개정(amendment)와 수정(modification)'을 논의하자고 돼 있다. 전체를 재협상하자는 것은 아닌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대통령이 계속 재협상을 이야기하니 이런 의지를 어느 정도 담는 게 미 무역대표부의 과제일 것이다. 미국이 공동위원회 특별 세션 개최를 요구했는데 우리는 정부조직법안이 아직 국회 통과가 안 돼 통상교섭본부장이 공석이라 30일안에 열기는 좀 어렵고 우선 실무선에서 의제 조율 등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 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정이 내년 말 만료되는데, 차기 분담금 협상은 어떻게 준비할 계획인가.
- “지금 우리가 분담하는 정도도 상당한 수준이다. 협상 전략 등을 연말까지는 다 만들어서 시간을 두고 준비해나갈 생각이다.”
- 장관이 된 뒤 가장 어렵다고 느낀 부분은 무엇인가.
- “외교부 내부적 관리가 가장 큰 과제 같다. 대통령이 저 같은 사람을 장관으로 불러주신 데는 다른 시각과 경험으로 보라는 뜻이 있는 것 같다. 그 간 외교부 내 순혈주의나 폐쇄주의를 타파하자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저는 다른 시각을 갖고 있고 또 잘 모르기에 다소 무모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무모함 덕분에 따지지 않고 혁신을 밀어붙이는, 드라이브를 걸 수 있을 것 같다.”
인터뷰=박승희 기획조정1담당, 정리=유지혜·박유미 기자 wisep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