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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북 비핵화 진전되면 한·미 연합훈련 중단 검토할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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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일 취임 한 달을 맞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그간 문재인 대통령의 정상외교 데뷔전을 밀착 수행했다. 미·중·일·러 정상과의 회담에 모두 배석해 그들의 생생한 육성을 들은 강 장관은 북핵 문제를 가장 심각한 외교안보 현안으로 꼽았다.

북에 남북군사회담 제안하기 전 #외교라인 통해 미국에 설명 #중·러의 ‘쌍궤 병행’ 말은 쉽지만 #비핵화 진척돼야 평화체제도 논의 #한·중 정상 사드 이견 분명했지만 #추가 협의하기로 하고 좋게 끝내

정부가 과연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낼 수 있겠느냐고 묻자 강 장관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노력해야 한다. 외교는 낙관도 비관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있는 요소를 가지고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담담하게 답했다. 인터뷰는 17일 오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약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17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답변하고 있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현동 기자

17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답변하고 있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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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북한에 군사회담, 적십자회담을 열자고 제안한 것은 현재 국제사회의 제재 국면과 온도차가 있는 것 아닌가.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도 대화만 하자는 것이 아니다. ‘또 도발하면 우리도 국제사회의 추가적인 제재와 압박에 동참할 수 없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이니 태도를 바꾸라’는 것이다.”
이번 제안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어땠나.
“발표 전 공관을 통해 미국에 알려주고 이해를 구하는 등 긴밀히 공조하고 있다. 인도주의 사안(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 제안)은 정치적 사안과 별개라는 공감이 있었다. 군사 접촉에 있어서도 상황 관리를 위해서는 필요하다는 이해가 있는 것으로 안다.”
한·미 간에 세컨더리 제재(북한과 합법적 거래를 하는 제3국 기업·개인도 제재)에 대해 협의가 이뤄지고 있나.
“구체적인 세컨더리 제재 방안에 대해서 협의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 채택 추이를 보면서 미국이 독자 제재를 생각하고 있는데, 이런 과정에서 우리와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
8월 초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이용호 북한 외무상이 참석하면 남북외교장관 회담을 할 의향이 있나.
“전향적으로 검토하려고 한다. 하지만 제안했는데 거절당하면 모양새가 좋지 않기 때문에 여건을 봐가면서  조심스럽고 자연스럽게 추진해보려고 한다.”
17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답변하고 있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현동 기자

17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답변하고 있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현동 기자

베를린 구상에 대한 북한의 호응을 끌어내기 위해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하는 방안을 고민할 수 있나.
“지금으로선 북한의 불법적인 (핵·미사일) 도발과 합법적인 방어 차원의 훈련을 바꿀 수 없다는 게 우리 입장이다. 비핵화 진전에 따라서는 그런 것도 같이 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있지만, 거기까지 가는 여정이 아직은 멀다.”
그러려면 북한의 핵 동결 선언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북한의 명시적인 태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압박·제재와 함께 ‘태도를 바꾸면 이런 것이 있을 수 있다’는 인센티브에 대한 메시지를 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핵·미사일을 포기하고 다른 길로 나오면 체제 안보나 국제사회의 경제적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북한에 계속 전달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동시에 논의하자는 중국과 러시아의 ‘쌍궤(雙軌) 병행’ 제안은 한국의 입장과 비슷한 측면이 있는데.
“비핵화를 하면서 평화체제를 추진하는 게 말은 쉬운데, 결국은 이행 로드맵이 중요하다. 평화체제 논의는 비핵화 논의가 어느 정도 진행된 뒤에 가능하다. (문대통령의 한반도 평화구상과) 쌍궤병행과는 속도나 시기 면에서 차이가 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고 해도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저지른 반인도 범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과 체제 보장, 김위원장의 안위 보장을 하는 것이 동시에 가능할까.
“흑백논리로 다룰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북한과의 관계 복원을 위한 대화를 한다고 했을 때 인권 문제도 분명히 다룬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공약이다. 유엔 권고 등을 고려해 이를 의제로 가져가야 우리가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 있고, 북한과의 대화에서도 실질적이고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남북 관계 복원은 우리가 주도해도 국제사회 전반의 지지가 없으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 국제사회가 기대하는 인권 문제도 북한과의 관계복원을 위한 대화에서 하나의 의제로 넣을 필요가 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은 충분히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일정 부분 한 바도 있다. 하지만 교역량의 90%, 대북 원유 제공의 95%라는 그런 영향력 측면에서 더 할 수 있는 것이 있지 않느냐는 게 문 대통령과 국제사회의 메시지다. 안보리 제재 이상의 조치에 대해서는, 중국 스스로가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나중에 보고 판단할 수 있을 지 몰라도 중국이 먼저 ‘이렇게 하겠다’고 선언한 뒤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문 대통령과의 회담 중 '혈맹'을 언급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는데, 어떤 상황이었나.
“과거에는 그랬으나 지금은 북핵을 절대 용납할 수 없고, 안보리 차원에서 제재를 철저히 이행하고 있다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언급됐다. 그 표현 자체에 엄청난 의미가 있었던 것이 아닌데, 시 주석이 말씀하신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이 된 것 같다. 과거에는 그랬으나 지금은 이렇다는 취지였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문제에 대한 정부 기조는 무엇인가.
“사드 배치는 동맹 차원에서 연합 방위 태세 강화를 위해 내린 결정이다. 환경영향평가는 국내적으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이지, 배치 결정 자체를 번복하기 위한 것은 분명히 아니다.”
한·중 정상회담에서 사드 관련 논의는 어떻게 이뤄졌나.
“서로의 입장 차이로 인해 첫번째 정상회담이 좋지 않게 끝나선 안 된다는 양국간 공감대가 있었다. (정상회담전에) 의제 조정 등에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사드 부분에 대해서는 이견은 분명했지만, 대화가 오래 진행됐고 두 정상이 진솔하게 소통했고 앞으로 추가 협의를 하기로 했다. 이견이나 간극을 강조하기보다는, 더 활발한 외교적 소통이 필요한 부분이다.”
한·중수교 25주년 기념일인 8월 24일을 계기로 문 대통령이 방중할 수 있나.
“(중국으로부터) 조속한 방중을 원한다는 초청을 받았고, 실무선에서 중국 측과 협의하고 있다. 수교 기념일이 두드러지는 계기일 수 있는데, 양 측 사정이 맞아야 한다.”
17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외교 현안을 설명하고 있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현동 기자

17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외교 현안을 설명하고 있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현동 기자

위안부 합의 검토를 위한 TF를 구성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합의에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것도 그렇고, 인권 문제는 피해자 중심의 해결이 기본인데 합의 내용이나 경과에 있어 그런 부분이 충실하지 못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잘잘못을 추궁하자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판단해 보려고 한다. 어떤 부분이 부족했고, 어떤 기회를 놓쳤는지 꼼꼼하게 보려고 한다.”
TF 조사 결과 합의를 원상 복귀시켜야 한다면 재협상 외에 방법이 없지 않나.
“'일방 파기'라는 과격한 말도 있지만 그것은 굉장히 비외교적일 것이고, 나가는 순간 기정사실화하는 부분이 있어 매우 조심스럽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공관을 보호해야 하는 외교부의 국제적 의무가 있지만, 소녀상에 대한 시민사회의 열망을 공감하고 존중해야 한다. 일본이 이전을 요구하면 할수록 소녀상은 더 많이 만들어질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계속 거론한다. '재협상(renegotiation)'인가, '개정협상'인가.
“미국이 보낸 서한에는 '개정(amendment)와 수정(modification)'을 논의하자고 돼 있다. 전체를 재협상하자는 것은 아닌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대통령이 계속 재협상을 이야기하니 이런 의지를 어느 정도 담는 게 미 무역대표부의 과제일 것이다. 미국이 공동위원회 특별 세션 개최를 요구했는데 우리는 정부조직법안이 아직 국회 통과가 안 돼 통상교섭본부장이 공석이라 30일안에 열기는 좀 어렵고 우선 실무선에서 의제 조율 등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정이 내년 말 만료되는데, 차기 분담금 협상은 어떻게 준비할 계획인가.
“지금 우리가 분담하는 정도도 상당한 수준이다. 협상 전략 등을 연말까지는 다 만들어서 시간을 두고 준비해나갈 생각이다.”
장관이 된 뒤 가장 어렵다고 느낀 부분은 무엇인가.
“외교부 내부적 관리가 가장 큰 과제 같다. 대통령이 저 같은 사람을 장관으로 불러주신 데는 다른 시각과 경험으로 보라는 뜻이 있는 것 같다. 그 간 외교부 내 순혈주의나 폐쇄주의를 타파하자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저는 다른 시각을 갖고 있고 또 잘 모르기에 다소 무모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무모함 덕분에 따지지 않고 혁신을 밀어붙이는, 드라이브를 걸 수 있을 것 같다.”

인터뷰=박승희 기획조정1담당, 정리=유지혜·박유미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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