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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투이스트, 또 다른 '디자이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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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캔버스 삼아 그린 타투이스트 홍담의 작품. 잉크의 농담이 두드러진다. [사진 홍담]

몸을 캔버스 삼아 그린 타투이스트 홍담의 작품. 잉크의 농담이 두드러진다. [사진 홍담]

타투이스트. 2015년 고용노동부가 꼽은 신(新) 직업 17개 중 하나다. 기업재난관리사·상품공간스토리텔러 등과 함께 세상의 변화에 대응하는 전문가로 꼽혔다. 그 이후 2년. 예견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타투(문신)가 남을 위협하는 조폭(조직폭력배)의 상징과도 같은 표시에서 몸을 꾸미는 패션 코드로 인식되면서 타투이스트의 위상도 달라진 것이다. '어둠의 기술자'가 아닌 독립 예술가로 주목받는다. 실제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수십 만 팔로어를 자랑하는 이들도 있고, 패션·뷰티 브랜드의 협업 파트너가 되는 일도 벌어진다. 타투이스트들을 만나 그들의 세계를 엿봤다. 이도은·여성국 기자 dangdol@joongang.co.kr

팔로어 30만…셀럽 타투이스트 시대

국내 타투 인구는 100만 명, 타투이스트만 3000여 명에 달한다(한국타투협회 추산). 네이버 지도를 찾아보면 서울 홍대앞·합정 일대에만 60여 개 타투숍이 있다. 마치 미용실·네일숍 가듯 대중화했다는 이야기다.

작고 단순한 선이 특징인 'K타투'를 대표하는 타투이스트 도이. 서울 방배동 작업실을 찾는 손님 절반은 외국인이다. 7월 7일 이곳을 찾았을 때도 홍콩(왼쪽)에서 온 여성이 시술을 받고 있었다. 우상조 기자

작고 단순한 선이 특징인 'K타투'를 대표하는 타투이스트 도이. 서울 방배동 작업실을 찾는 손님 절반은 외국인이다. 7월 7일 이곳을 찾았을 때도 홍콩(왼쪽)에서 온 여성이 시술을 받고 있었다. 우상조 기자

시장이 커지자 '스타'도 생겨났다. 경력 12년차 타투이스트 도이(김도윤·37)도 그 중 하나다. 밝고 아기자기한 디자인, 가는 선으로 그리는 타투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우리보다 타투 문화가 앞선 외국에서도 볼 수 없는, 그래서 한국에서 자생한 스타일이란 의미의 K-타투라는 이름도 붙었다. 얇고 부드러운 선, 다양한 색상, 그리고 기존 타투 장르 안에서 표현하기 힘들었던 디테일한 묘사가 특징이다. 문신에 대한 거부감이 큰 국내에서 2~3년 전부터 인기를 끌었고, 이제는 해외에서 원정을 올 정도다. 고객 절반이 외국인이다.
7월 7일 서울 방배동 그의 작업실을 찾았을 때도 홍콩이나 싱가포르에서 온 외국인들이 타투 시술을 받고 있었다. 도이는 "6월 영화 '옥자' 프로모션을 위해 한국을 찾은 할리우드의 한국계 배우 스티븐 연도 여기서 타투를 하고 갔다"고 말했다.

부드러운 선과 색채를 더한 도이의 타투. [사진 도이]

부드러운 선과 색채를 더한 도이의 타투. [사진 도이]

K-타투가 인기를 끌면서 '셀럽(셀러브리티) 타투이스트'가 점점 늘고 있다. 홍담·바늘·디키·판타·플라워(타투이스트들은 래퍼들처럼 통상 닉네임을 쓴다) 등은 SNS 팔로어 수만 보통 20만~30만 명 수준이다. 웬만한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보다 많은 숫자다. SNS에 올리는 타투 관련 포스팅 하나에 수십 개의 댓글이 붙는 건 예사다. 워낙 파급력이 크다보니 하루 한두 명씩 '타투이스트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이메일이나 멘션이 온다.

가는 선으로 인생에서 마주하는 여러 개의 문을 표현한 판타의 타투. [사진 판타] 

가는 선으로 인생에서 마주하는 여러 개의 문을 표현한 판타의 타투. [사진 판타] 

타투이스트 플라워는 꽃을 모티브로 다양한 작업을 한다. [사진 플라워]

타투이스트 플라워는 꽃을 모티브로 다양한 작업을 한다. [사진 플라워]

이들의 작업은 타투에 관심이 있는 젊은층이라면 단번에 '누구 스타일'이라고 알아 볼 정도로 컨셉트가 확실하다. 가령 판타(최한나·30)는 스케치처럼 선을 여러번 그린 그림, 플라워(성소민·25)는 꽃을 모티브로 삼는 식이다. 도안을 재활용하거나 베끼는 건 금기시한다. "타투이스트가 기술자라기보다 디자이너(예술가)에 가깝다"는 이들 생각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플라워는 "결국 스스로 얼마나 상상력을 가지고 제대로 그림을 그리느냐로 실력이 갈리는 세계"라고 말한다. 물론 타투이스트가 되려고 누구 밑에 들어가도 위생 관리나 고객과의 소통, 기계 다루는 방법 등은 기본적으로 배우지만 말이다.

타투를 소재로 하는 다양한 예술 작업을 하고 있는 타투이스트 노보. 여러 각도에서 찍은 사진을 한 컷에 담았다. 장진영 기자

타투를 소재로 하는 다양한 예술 작업을 하고 있는 타투이스트 노보. 여러 각도에서 찍은 사진을 한 컷에 담았다. 장진영 기자

노보와 뷰티 브랜드 키엘이 협업한 전시장. '도심 속 정원'을 주제로 노보의 트레이드마크인 종이 비행기를 소재로 했다. 서울 북촌로 키엘 부티크에서 7월 31일까지 열린다.[사진 노보] 

노보와 뷰티 브랜드 키엘이 협업한 전시장. '도심 속 정원'을 주제로 노보의 트레이드마크인 종이 비행기를 소재로 했다. 서울 북촌로 키엘 부티크에서 7월 31일까지 열린다.[사진 노보] 

이같은 창작의 힘이 드러나면서 타투이스트는 영역을 확장하는 중이다.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는 이가 노보(강정은·35)다. 그는 최근 화장품 브랜드 키엘의 한정판 제품 패키지 디자인과 전시를 진행했고, 캐주얼 패션 브랜드 세컨플로어와 협업 컬렉션을 선보였다. 그는 "타투는 표현의 소재일 뿐"이라며 공연 무대에서 미술 감독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홍담(김태우·31) 역시 2015~2016년 회화전은 물론 데상트 의상과 푸마 스니커즈 디자인 등에 참여하면서 영역을 넓였다.

한국화를 전공한 홍담의 개인전 작품. 타투이스트가 아닌 순수 회화 작품 활동도 함께 한다. [사진 홍담]

한국화를 전공한 홍담의 개인전 작품. 타투이스트가 아닌 순수 회화 작품 활동도 함께 한다. [사진 홍담]

몸에 새기는 이야기…과정의 예술

이름 난 타투이스트들 대부분 미술을 전공했거나 디자인·예술 분야에서 몸 담은 경험이 있다. 도이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후 IT업계에서 디자인 관련 일을 했고, 판타는 판화과를 나와 구두 디자이너로 일한 경력이 있다. 정석 코스인 디자인·예술 직종 대신 이들이 타투를 택한 이유는 뭘까.
몇몇은 미술 전공자가 부딪히는 현실적 문제에 대한 돌파구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회사 소속 디자이너라고 해도 해외 제품을 카피하거나 서류 업무를 하기가 일쑤라는 거다. '이럴려고 미대를 나왔나'라는 회의 속에 먹고 살 정도에 좋아하는 그림만 그릴 수 있는 일을 찾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금전적 보상이 아주 적은 것만도 아니다. 처음은 시간당 5만원 정도 밖에 벌지 못하지만 인지도가 높아지고 실력이 늘수록 점점 올라가 나중엔 손바닥 크기의 작업에 300만원 안팎까지 받는다. 한달 꼬박 야근을 하고도 100만원 대 초반을 버는 보통 미술 전공자들보다 훨씬 형편이 나은 셈이다.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하는 예술'이라는 점도 작용한다. 한국화를 전공한 홍담은 "한지 대신 몸을, 물감 대신 잉크를, 붓 대신 바늘을 택한 것뿐 회화와 타투를 굳이 구분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굳이 차이를 말하자면 종이와 달리 피부는 똑같은 게 하나도 없다"고 덧붙였다. 인종은 물론 피부 상태에 따라 발색이 달라지는 건 물론이고, 그 인물의 평소 움직임에 따라 시간이 갈수록 타투 역시 다르게 변하는 게 매력이라는 이야기다. "갤러리에 있는 그림과 비교해보라. 내 작품이 누군가의 인생을 통해 움직이고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 그만한 희열이 없다. "

한 여성은 작가 꿈을 꾸던 아버지 작품을 새겼다. [사진 판타]

한 여성은 작가 꿈을 꾸던 아버지 작품을 새겼다. [사진 판타]

무엇보다 타투의 또다른 매력은 의뢰인과의 상호 작용이다. 그래서 '결과보다는 과정의 예술'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잠깐 걸치는 옷이나 헤어스타일과 달리 영원히 함께 하는 장식이다보니 서로가 최상의 결과물을 찾아야 한다. 대부분의 타투이스트들이 휴대폰이나 이메일을 통해 신청을 받고 나서 여러 번 고객과 소통을 하는 이유다. 의뢰인이 타투로 표현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특별한 사연이 있는지 등을 수차례 주고 받는다. 시안을 공유하며 둘이 비슷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판단해야 비로소 시술 약속을 잡는다. 가끔은 이렇게 준비를 해도 직접 얼굴을 마주하면 아이디어가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손가락 길이의 작은 타투를 새기는 데는 30분~1시간 정도만 쓰면서 상담엔 서너 시간씩 공을 들인다.

병상에 있는 어머니의 글씨체로 만든 타투. [사진 판타]

병상에 있는 어머니의 글씨체로 만든 타투. [사진 판타]

판타가 이런 경험 하나를 들려줬다. "병상에 있는 어머니를 기억하기 위해 온 20대 중반 여자 분이 있었어요. 어머니가 딸에게 늘 '기운내, 할 수 있어'라는 말을 해줬다며 그걸 타투로 하고 싶어했죠. 그래서 기왕이면 어머니 글씨체를 그대로 새기자고 했는데 병세가 안 좋아 글씨조차 쓸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할까 하다가 예전 어머니가 썼던 장부에서 글씨를 하나씩 골라 조합했죠. "
타투가 패션의 영역으로 들어온 걸 모두 반기는 건 아니다. 일부 타투이스트들은 타투가 '신념의 미학'이라 단순히 '패션'으로 소비되는 걸 조심스러워했다. 무슨무슨 연예인의 타투를 그대로 따라한다거나, 연예인 누구의 타투이스트라는 것만 보고 몸을 맡기는 건 경계해야 한다는 거다. 달(윤지수·24)는 "옷이나 헤어스타일처럼 타투도 시간이 지나면 취향이 달라질 수 있다"며 "비록 취향은 바뀌었지만 나중에 이 타투를 왜 했는지, 의미를 떠올리면 덜 질리고 덜 후회하게 되지 않겠는가"라고 조언했다.

합법화? 선입견이 더 아파

스스로는 물론이요 많은 젊은층이 예술의 경지로까지 타투를 바라보지만 사실 타투는 국내에서 시술 자체가 불법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타투이스트들은 작업실을 '타투 제품 판매처'로 등록한다. '불법'인 일을 하면서도 인터뷰에 나선 이들은 "법적 장벽보다 대중적 선입견을 없애고 싶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설령 법이 바뀐다한들 사람들의 생각이 그대로라면 결국 반쪽의 성공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2016년 서울 신사동 한 갤러리에서 열린 타투이스트들의 그룹전 포스터. [사진 도이] 

2016년 서울 신사동 한 갤러리에서 열린 타투이스트들의 그룹전 포스터. [사진 도이] 

선입견을 털고 싶은 타투이스트들은 작지만 구체적인 '실천'을 한다. 도이가 2013년 타투를 업으로 삼으면서 세운 원칙은 어머니가 봐도 부끄럽지 않게 일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혐오스러운 것, 반종교적인 것, 음란한 것, 이 세 가지는 하지 않는다. 타투를 대중 눈높이에서 알리기도 했다. 마음이 맞는 몇몇 타투이스트들과 함께 그룹전을 하면서 타투 사진이 아닌 도안을 전시장에 걸고 QR코드로 실제 작업을 확인하는 방식을 택했다. "혹여 멀리서라도 실물을 보고 반감이 드는 사람이 생길까봐"였다. 유기견 보호단체의 스티커를 만드는가 하면, 타투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다큐멘터리도 준비 중이다.
노보는 2010년 『타투를 말하다』라는 책을 시작으로 타투 아트북을 부정기적으로 내고 있다. 타투가 아무리 음성적이라지만 엄연히 기원 전부터 인류가 누려온 문화인데 국내에서는 이를 학습할 만한 책조차 없다는 건 말이 안된다는 게 이유였다. "타투에 대한 생각은 다를지 몰라도 그것의 역사적 가치를 알릴 필요는 있지 않을까요. "

타투가 패션이 되면서 '몸의 예술가'로 확장 #미술 전공자들이 자기만의 색깔로 팬층 만들어 #브랜드 협업에 개인전 열고 아트북 출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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