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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이 모자 쓰고 응원했지만 … 톱10엔 한국 8 미국 0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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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승 트로피를 들고 활짝 웃는 박성현. [베드민스터 AFP=연합뉴스]

우승 트로피를 들고 활짝 웃는 박성현. [베드민스터 AFP=연합뉴스]

박성현(24·KEB하나은행)이 17일 미국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장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 US여자오픈에서 우승했다. 박성현은 최종라운드 5언더파 67타를 기록, 합계 11언더파로 아마추어 최혜진(18)을 2타 차로 제쳤다. 박성현과 공동선두를 달리던 최혜진은 16번홀에서 티샷이 물에 빠지는 바람에 50년 만에 아마추어 챔피언이 될 기회를 놓쳤다. 공동 3위는 한국의 허미정(28)과 유소연(27)이다. 이정은(21)·김세영(24)·이미림(27)·양희영(28)도 톱10에 들었다. 10위 안에 한국 선수 8명, 중국과 스페인 선수가 각각 1명이다. 미국 선수는 한 명도 없다.

US여자오픈 박성현 11언더 우승 #톱10 미국 선수 없는 건 대회 처음 #트럼프 “한국 아마추어 잘해” 트윗 #자기 소유 골프장서 사흘간 관전

미국 선수가 내셔널 타이틀이 걸린 US여자오픈에서 톱10에 한 명도 들지 못한 것은 1946년 대회가 시작된 이래 처음이다. 미국은 72번의 US여자오픈에서 52차례나 우승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세력이 강해졌지만 톱10에 미국 선수가 한 명도 없는 것은 큰 사건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 대회를 유난히 챙겼기 때문에 미국 골프계의 충격은 더 크다. 트럼프는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US여자오픈 대회장을 방문했다. 더구나 이 골프장은 트럼프의 이름을 쓰는 트럼프 대통령 소유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쓰고 있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는 문구가 새겨진 모자. [베드민스터 AP=연합뉴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쓰고 있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는 문구가 새겨진 모자. [베드민스터 AP=연합뉴스]

트럼프는 대회 개막 전부터 US여자오픈에 관심이 많았다. 지난달 30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 직후 이곳을 찾아 라운드를 즐겼다. 당시 연습라운드를 하던 한국의 아마추어 선수 성은정(18)에게 다가가 “한국 대통령을 만나고 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사흘을 머물고 백악관으로 돌아갔다가 열흘 만인 15일 대회장을 다시 찾았다. 이번에도 그는 2라운드부터 최종 라운드까지 사흘간 경기를 관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성 대회 중 가장 중요한 대회여서 이곳에 왔다”고 트위터에 썼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언론은 트럼프가 자신 소유의 부동산을 홍보하기 위해서 대회장을 찾은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트럼프는 2월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리조트와 골프장·호텔 등 자신 소유의 부동산을 찾은 날이 53일을 넘었다. 이 중 골프장을 찾은 것은 39일이다.

트럼프와 친한 크리스티 커 공동 19위

트럼프 대통령이 골프장을 찾은 또 다른 이유는 미국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서다. 골프광인 트럼프는 ‘풍운아’ 존 댈리 등과 친하다. 여성 선수 중에서는 미국 선수 중 맏언니인 크리스티 커(40)와 인연이 깊다. 트럼프는 지난 4월 롯데 챔피언십에서 커가 우승하자 축전을 보냈다. 커는 이번 대회 기간 “트럼프 대통령 소유의 골프장에서 대회가 열리니 더욱 우승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커는 공동 19위에 머물렀다. 다른 미국 선수들 역시 결과가 좋지 않았다. 미국 선수 중 랭킹이 가장 높은 렉시 톰슨은 공동 27위로 대회를 마친 뒤 “최선을 다 했지만 경기가 잘 안 됐다”고 했다. 미셸 위는 목이 아파 경기 도중 기권했다.

미국 선수들이 우승 경쟁에서 완전히 탈락하자 트럼프는 한국 선수를 칭찬했다. 트위터에 “한국의 아마추어 선수(최혜진)가 잘한다”는 문구를 남긴 뒤 박성현이 지나가자 일어나서 박수를 쳤다.

그러나 여론은 좋지 않다. 미국의 골프닷컴은 “역대 메이저 대회에서 한 나라 선수들이 이 정도로 상위권을 독식한 것은 초창기 영국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미국 선수들의 부진을 꼬집었다.

결과적으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하자’는 트럼프의 구호는 미국 최고의 대회인 US여자오픈에선 공허하게 들렸다. 대신 트럼프가 깔아준 멍석에서 한국 선수들이 화려한 퍼포먼스를 펼쳤다. 박성현이 이날 정상에 오르면서 지난 10년간 한국 선수들은 US여자오픈에서 7차례나 우승을 차지했다. 유상건 상명대 스포츠정보기술융합학과 교수는 “성적으로 보면 이번 US여자오픈은 한국여자오픈에 중국 선수 펑산산이 초청 선수로 출전한 모양새다. 미국 선수들은 보이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미국 윈스럽 대학에서 스포츠 매니지먼트를 가르치는 정진욱 교수는 “미국을 지나치게 우선시하며 인종차별 발언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소유 코스에서 톱10에 미국 선수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라면서 “골프 코스와 공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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