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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제2의 노태강’ 나올 환경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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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박진석경제부 기자

박진석경제부 기자

그저 웃기만 했다. 얼마 전 만났던 한 공무원 얘기다. 최근 이슈와 관련된 업무를 맡은 그는 무슨 질문을 해도 한결같이 웃는 표정으로 “(청와대에서)그렇다고 하지요”라는 단답형만 내놓았다. 좋아서 웃는 게 아니라 자조적인 웃음이라는 것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침묵하는 공무원’이 또다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터무니없는 면세점 신설 지시에 반대하기는커녕 “5~6개는 만들 수 있다”고 큰소리쳤던 고위 공무원이 있었다. “많아야 한 개 신설이 가능하다”는 용역보고서를 숨기면서까지 면세점 특허를 4개나 더 부여한 사람도 고위 공무원이었다. 외국인 관광객 30만 명 증가 시 면세점 한 개를 늘리게 돼 있는 기준에 비춰볼 때 가당치 않은 일이었지만, 그 어디에도 반대의 목소리는 없었다.

빠르고 거칠게 진행되는 탈원전 정책에 관해서도 쓴 소리를 하는 공무원은 없다. 원전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의 주영환 장관은 신고리 5, 6호기 건설 잠정 중단 결정을 내렸던 국무회의 내내 입을 닫고 있었다. 산업부 전체로도 정권의 뜻에 배치되는 얘기를 한 공무원은 없다.

물론 공무원에게는 정권의 정책을 실행하는 기술 관료의 측면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국민의 세금으로 녹을 받는, 그래서 국민의 안위를 책임져야 할 공복인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해로운 정책이라고 판단되면 반대해야 할 의무도 있다.

하지만 그걸 기대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기도 하다. 엄격한 위계질서 아래에서 모난 돌이 정 맞는 선례를 무수히 봐온 공무원들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부당한 지시에 맞섰던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칭송받는 것도 그의 행동이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소수의 용기를 칭송하고 다수의 침묵을 비판하는 것만으로 또 한 번 넘어가는 게 능사는 아닐 것이다. 공무원들이 지금보다 좀 더 쉽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게 실명의 오프라인 공간이든, 익명의 온라인 공간이든 말이다.

해당 분야 최고 전문가인 일선 공무원들의 고언에 귀를 기울여서 청와대가 손해 볼 일이 무엇일까. 혹여 순수성이 의심된다면 가려 들으면 될 일이다. 최소한 그들에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고 외칠 수 있는 환경은 만들어주자는 얘기다. 정권과 국민 모두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박진석 경제부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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