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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률 3% 미만 달성” 전망 속 전문인력 구인난이 문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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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0호 15면

메르켈 공약 ‘완전고용’ 실현 가능할까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지난 3일 베를린에서 완전고용 실현 등이 담긴 공약을 논의하고 있다. ‘잘살고, 살고 싶은 독일을 위하여’라는 슬로건이 걸려 있다. [AP=연합뉴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지난 3일 베를린에서 완전고용 실현 등이 담긴 공약을 논의하고 있다. ‘잘살고, 살고 싶은 독일을 위하여’라는 슬로건이 걸려 있다. [AP=연합뉴스]

“완전고용을 달성하겠다.”

실업률 5.5% 실업자 250만 명 #2025년까지 반으로 감축 공약 #100만 개 일자리는 되레 구인난 #90만 명 장기 실업자 해소 난제 #보호무역·브렉시트 암초 될 수도

올 9월 총선에서 4선 연임에 도전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중도우파 기사·기민연합이 내세운 야심 찬 공약이다. 메르켈은 “2025년까지 실업률을 반으로 줄여 3% 미만의 완전고용을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6월 현재 독일의 실업률은 5.5%. 메르켈 총리는 “우리의 미래 프로젝트는 ‘모두를 위한 번영과 안전’”이라며 “우리에게 필요한 건 ‘모든 사람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완전고용 공약이 선거전략 차원에서 내건 ‘몽상가’의 구호에 그칠지, 아니면 실제로 달성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완전고용이라고 해도 실업률 0%는 현실 사회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모든 사람이 일자리를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회사가 파산하면 일시적 실업자가 생길 수밖에 없고,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모두가 일자리를 얻기는 어렵다. 뮌헨 Ifo연구소의 클레멘스 푸에스트 소장은 “실업률 3% 미만이면 완전고용이 달성됐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고 일간 디벨트는 전했다.

독일이 통일된 지 15년째를 맞이한 2005년 초만 하더라도 실업자 수는 510만 명, 실업률은 11.7%에 달했다. 당시는 중도좌파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집권 말기였다. 같은 해 말 중도우파 기민·기사연합의 메르켈이 총리가 된 이후 독일의 실업률은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세계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메르켈 집권 3기 말인 지난 6월의 독일 실업자 수는 247만 명, 실업률은 5.5%로 떨어졌다.

슈뢰더 전 총리 ‘하르츠 개혁’이 초석 깔아

겉보기에는 메르켈 시대의 업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그 초석을 슈뢰더 전 총리 정부가 깔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슈뢰더 집권기인 2000년대 초반 많은 독일 기업은 해고와 비정규직 고용이 어려운 경직된 노동시장 탓에 신규 고용을 꺼렸다. 독일 통일 이듬해인 1991년 7.3%였던 실업률은 어느새 두 자릿수로 치솟았다. 이런 상황에서 슈뢰더 총리는 ‘신중도’를 내세워 2002년 ‘어젠다 2010’ ‘하르츠 개혁’으로 불리는 강도 높은 노동시장·복지제도 개혁을 추진했다. 폴크스바겐 인사담당 이사인 페터 하르츠를 위원장으로 내세운 노동시장 개혁의 핵심 내용은 경기가 나쁘면 정리해고 기준 등을 완화하고, 경기가 좋을 때는 최대한 일자리를 보호하는 노동의 유연화였다. 또 비정규직 규제를 완화했으며 기업이 파견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는 기간 제한을 없애는 등 파견근로자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했다. 한마디로 시장 논리를 강화한 것이다.

월 400유로(약 52만원) 미만의 급여를 받는 저임금 일자리인 ‘미니 잡’과 월 400~800유로를 받는 ‘미디 잡’ 등 시간제 일자리가 많이 생겨났다. 기업들은 미니 잡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돼 비용을 절약할 수 있게 됐다. 시간제 일자리를 확대해 신규 고용을 창출할 수 있게 한 것이다. 1인 기업에 대한 재정 지원도 확대했다. 실업급여 기간은 32개월에서 12개월로 축소했다.

이런 과감한 개혁조치에 힘입어 그때까지만 해도 과다한 통일비용 등 후유증으로 ‘유럽의 병자’로 불렸던 독일은 체질 개선에 성공, 유럽의 절대 강자로 재부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록 인기 없는 개혁정책 때문에 슈뢰더 총리는 2005년 총선에서 패배해 물러났지만 그 결실은 슈뢰더의 정책을 계승·발전시킨 메르켈 시대에 맺게 됐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2025년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독일은 벌써 완전고용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셈이다.

‘히든 챔피언’이라 불리는 독일의 중견기업(미텔슈탄트)이 주도하는 제조업 부문 경쟁력은 완전고용을 달성하는 데 가장 앞장서고 있다. 한정화(전 중소기업청장)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는 “독일에는 세계 시장 1위 또는 점유율 50% 이상인 제품을 생산하는 중견기업이 1300개 이상 된다”고 말했다. 미텔슈탄트는 독일 전체 노동력의 70% 이상을 고용하고 있으며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듀얼 시스템, 청소년 일자리 알선 효과적

이른바 듀얼 교육시스템은 청소년의 일자리 알선에 매우 효율적인 제도로 정평이 나 있다. 하이케 배렌스(사민당) 연방하원의원은 “학교와 기업을 이어 주는 듀얼 시스템 덕분에 학생들은 졸업 후 취업에 큰 도움을 받는다”고 소개했다. 학생들은 학업과 병행해 졸업하기 전 기업들이 제공하는 견습직 일자리에서 3년 정도 실무를 익힐 수 있다. 이를 마치면 정식으로 고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맞춤형 직업교육이 체계화돼 있는 덕분에 청소년 실업률은 7%대로 낮은 편이다.

‘라인강의 기적’이 정점에 달했던 60년대 독일에선 이미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가 달성됐다. 당시 서독은 1%대 미만의 실업률을 보였으며 이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거 필요로 했다. 66~67년의 일시적 불경기 때도 2%를 조금 상회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70년대 이후에는 서서히 실업률이 다시 상승했다.

완전고용 달성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새 직업을 찾으면서 일시적으로 실업급여를 받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서둘러 아무 일자리에나 취직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도 많다. 절대적인 완전고용은 사용자 측에서 봐도 어려운 과제다. 회사가 필요로 하는 자격을 갖춘 인력을 모두 고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적절한 인력을 구하지 못하는 구인난이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강소 미텔슈탄트들이 그런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다. 독일경제연구소(DIW)의 마르셀 프라처는 “앞으로 10년의 문제는 모자라는 일자리가 아니라 더 심각해지고 있는 전문인력 구인난”이라고 말했다고 쥐트도이체차이퉁(SZ)은 전했다. 지금도 100만 개의 일자리가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프라처는 “베이비부머가 연금생활자가 되는 앞으로는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이는 독일의 경제 성장과 복지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90만 명에 달하는 장기실업자 해소도 큰 과제다. 독일노동조합총연맹 지도자인 아넬리 분텐바흐는 “실업률 반감은 장기실업 문제를 효과적으로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데틀레프 셸레 독일노동청장은 정규 일자리 시장에서 기회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사회적이고 공공적으로 요구되는 노동 시장을 만드는 것에 대해 생각 중이라고 SZ는 전했다.

메르켈 총리의 기민·기사연합도 이 부분을 고려하고 있다. 선거강령은 “특수한 상황으로 정규 노동 시장 진입이 어려운 장기실업자들에게 의미 있고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부모가 장기실업자인 젊은 사람들이 교육과 노동에서 기회를 잃지 않도록 재정적 수단을 준비하려고 한다고 약속했다.

국제경제 여건 따라 정치적 실망 안길 수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수출지향형 경제인 독일은 국제경제 여건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위험도 안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 강화와 금리 인상,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도 큰 변수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여러 가지 상황을 감안한다면 완전고용 공약은 정치적 실망으로 귀결될 수 있다고 DIW 노동 시장 전문가 카를 브렌케는 경고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조립공, 숙박업소 종사원이나 상점 점원 같은 단순직 수요는 갈수록 줄어들 수 있다.

여론조사기관 포르자에 따르면 메르켈의 기민·기사연합은 지지율 39%로 2위 사민당의 22%에 월등히 앞서고 있다고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이 전했다. 차기 연정 파트너로 유력시되는 친기업 성향의 자민당도 8%로 원내 진입에 필요한 5%를 안정적으로 넘어섰다. 따라서 그사이 큰 이변이 없는 한 9월 총선에서 메르켈 총리가 무난히 4선에 성공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메르켈의 공약인 완전고용을 놓고 독일 내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오지만 적어도 완전고용 자체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없다. 여러 가지 면을 고려해 봐도 2025년까지 가지 않더라도 그전에 실업률 3% 미만의 완전고용은 달성 가능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 의견이다. 세계 곳곳에서 청년실업 등 일자리 만들기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는 지금 지구촌 한편에서 완전고용 문제가 거론되는 것만 해도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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