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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희의 맛따라기] 숨은 집 공개 죄짓는 마음…진한 사골국 삼각지 ‘와와 소머리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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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와 소머리탕’ 집의 한우 사골 소머리국밥 한 상. 국에 삶은 소면을 말았다. 신선한 한우 머리를 삶은 고기는 부드럽고 맛이 풍부하다. 한우 사골을 17시간30분 동안 다섯 차례 끓인 국물은 고소하고 진하다. 네 가지 반찬은 주인 아주머니가 모두 직접 만들어 맛이 깔끔하고 차분하다. 소금은 볶아서 곱게 빻았다.

‘와와 소머리탕’ 집의 한우 사골 소머리국밥 한 상. 국에 삶은 소면을 말았다. 신선한 한우 머리를 삶은 고기는 부드럽고 맛이 풍부하다. 한우 사골을 17시간30분 동안 다섯 차례 끓인 국물은 고소하고 진하다. 네 가지 반찬은 주인 아주머니가 모두 직접 만들어 맛이 깔끔하고 차분하다. 소금은 볶아서 곱게 빻았다.

70대 부부, 고추 직접 말려 김치 담그고 소머리·사골 한우만

기사를 쓰면서 주인 부부에게 죄를 짓는 기분이다. 나이든 어르신 두 분이 운영하는 작은 음식점이다. 소머리국밥과 설렁탕을 판다. 입구에 조리대가 있고 그 안으로 식탁이 놓였다. 들어서면 왼쪽에 개수대와 고기 도마, 오른쪽에 국물을 끓이는 화구와 대파 다지는 채소 도마 조리대가 있다. 옹색한 자취방 같은 내부는 좁고 분잡하다. 세 들어 있는 23㎡(7평) 공간의 건물은 낡았다. 좌석은 적고 테이블은 좁고 준비는 느리다. 식탁이 4개지만 식탁마다 4명이 앉으면 어깨나 무릎이 닿을 정도다. 줄 서서 기다린다 해도 그늘은 없다. 인내심 약한 사람은 맛있게 먹기 어렵다. 그러니 며칠 새 가보려 하지 마시라. 이런 집이 있다는 사실은 기억해두고, 천천히 찾아가기를 호소한다. 몰려드는 손님 맞이하다 어르신들 과로하면 영영 갈 수 없는 집이 될 수도 있다.

‘와와 소머리탕’의 우설과 소머리 고기 수육. 늦은 밤 배가 아주 부를 때 우설 한 점을 맛보고 이 집 음식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와와 소머리탕’의 우설과 소머리 고기 수육. 늦은 밤 배가 아주 부를 때 우설 한 점을 맛보고 이 집 음식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지난주 소개한 삼각지 ‘요리가 있는 집’ 저녁 모임(6월 23일)은 밤 12가 다 돼서 파했다. 늦게까지 별식을 즐겼는데 막바지에 주인 채성태(50)씨가 잠깐 나갔다 오더니 고기 한 접시를 들고 왔다. 우설(牛舌)과 소머리 고기 수육이다. 차린 음식도 다 못 먹고 남겼는데 웬 고기냐고 묻자 아무리 배불러도 이건 먹을 수 있을 테니 한 점 맛보라고 권했다. 취기도 있고 배는 불렀지만 먹어 보니 고기도, 삶은 솜씨도 예사롭지 않았다. 바로 윗집에서 가져왔다고 했다.

밤 12시 무렵인데 ‘와와 소머리탕’ 주인 방도현·박혜찬씨 부부가 골목길 가로등 아래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다. 다음날 팔 음식을 준비하느라 불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밀레의 그림 ‘만종’과 ‘건초 말리는 사람들의 휴식’이 겹쳐진 이미지가 떠올랐다.

밤 12시 무렵인데 ‘와와 소머리탕’ 주인 방도현·박혜찬씨 부부가 골목길 가로등 아래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다. 다음날 팔 음식을 준비하느라 불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밀레의 그림 ‘만종’과 ‘건초 말리는 사람들의 휴식’이 겹쳐진 이미지가 떠올랐다.

창고에서 사골을 고아서 소머리국밥 국물을 만들고 있다.

창고에서 사골을 고아서 소머리국밥 국물을 만들고 있다.

골목으로 나가 윗집 쪽을 보니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의 ‘만종’과 ‘건초 말리는 사람들의 휴식’이라는 그림이 함께 떠오르는, 그림 같은 광경이 보였다. 노부부가 가로등 불빛 아래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하고 있다. 보기가 좋아 늦었는데 왜 안 주무시냐고, 술기운을 빌려 말을 걸었다. 내일 쓸 음식 재료를 준비하는데 불을 보느라 기다린다고 했다. 옆을 보니 ‘와와 소머리탕(서울 용산구 한강대로62가길 18 삼각지 대구탕 골목/전화 02-798-8288)’ 간판과 배너가 있다. 주인 부부의 이름과 나이를 알아내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방도현(77)·박혜찬(72)씨 부부였다. 한우 사골 소머리국밥(8000원/1만원), 한우 설렁탕(8000원/9000원) 국물을 만드는 중이었다. 식당 앞 창고에서 국이 끓고 있었다.

우설 맛에 주인의 진지한 태도가 더해져 음식에 대한 믿음이 커졌다. 곧 와보겠다고 점을 찍었다. 일부 인터넷 지도에는 나오지 않는다. 블로거들 발길도 용케 피해서 소박한 느낌을 적은 2편만 검색이 될 뿐이다. 닷새 뒤 회사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러 갔다. 잠행취재를 겸해 소머리국밥과 설렁탕을 주문했다. 들어간 고기가 다를 뿐 국물은 한 가지였다. 첫 술을 뜬 순간 ‘아, 진국이구나. 이거 횡재다’ 하는 생각이 스쳤다. 객지 나가 공부하는 자식이 방학 때 집에 오면 챙기던 어머니의 보신음식이 떠올랐다. 기교라고는 부린 데가 없다. 본바탕이 거짓 없고 진하다. 뺄 것도 더할 것도 없는 정직한 사골 국물이다.

사골을 17시간30분 동안 다섯 차례로 나눠 끓인 다음 섞어서 다시 끓인 곰국을 덜어서 데우고 있다. 국물이 얼마나 진한지 표면에 보인다.

사골을 17시간30분 동안 다섯 차례로 나눠 끓인 다음 섞어서 다시 끓인 곰국을 덜어서 데우고 있다. 국물이 얼마나 진한지 표면에 보인다.

완성된 국물을 덜어서 데우면서 부유물을 한번 더 거르고 끓여서 손님 상에 낸다.

완성된 국물을 덜어서 데우면서 부유물을 한번 더 거르고 끓여서 손님 상에 낸다.

사골 국물을 끓이면서 거품을 계속 걷어내는 여주인 박혜찬 여사. 거품으로 올라오는 게 기름기라고 했다. 부유물을 다 걷어내면 옆 작은 냄비에 덜어서 끓이면서 그릇에 담아 손님 상에 낸다.

사골 국물을 끓이면서 거품을 계속 걷어내는 여주인 박혜찬 여사. 거품으로 올라오는 게 기름기라고 했다. 부유물을 다 걷어내면 옆 작은 냄비에 덜어서 끓이면서 그릇에 담아 손님 상에 낸다.

여주인 박 여사의 후덕해 보이는 인상처럼 탕도 반찬도 맛이 차분하고 편했다. 음식 값을 치르며 이것 저것 물으니 오늘밤 소머리를 통째로 삶는데 내일 저녁쯤 가장 맛있어질 거라며 시간 되면 오라고 했다. 다음날 저녁에 갔다. 한우 수육(소머리/3만원)을 먹어봤다. 얼리지 않은 신선한 한우의 맛이었다. 양도 적지 않다. 다시 닷새 뒤 찾아가 제주흑돼지 목덜살(200g 1만3000원)을 먹어 봤다. 처음 접하는 맛이다. 먹어 보지 않은 소꼬리곰탕(호주산 1만2000원)도 있어 전체 메뉴는 5가지다.

이 집은 물도 흔한 정수기 물을 주지 않고 볶은 결명자와 둥굴레를 넣고 정성 들여 끓인 ‘차’를 내놓는다.

이 집은 물도 흔한 정수기 물을 주지 않고 볶은 결명자와 둥굴레를 넣고 정성 들여 끓인 ‘차’를 내놓는다.

상차림을 살피니 가장 먼저 나온 물부터 여느 식당과 다르다. 흔한 정수기 물이 아니다. 맑은 적갈색 물은 볶은 결명자와 둥굴레를 섞어 끓인 맛이다. 이쯤이면 물이 아니고 차라 해야겠다. 4가지 반찬이 깔렸다. 배추김치·깍두기·부추겉절이·마늘장아찌. 김치와 깍두기는 붉은색이 무척 고운데 파·양파나 무·당근 채 같은 부재료 채소가 안 보였다. 절여서 고춧가루·마늘·생강 정도 양념으로 버무린 뒤 잘 익힌 모양새다. 맛이 매콤하면서 단맛이 있고, 깔끔하고 시원했다. 맛있다고 말하자 고춧가루를 좋은 걸로 써서 그렇다고 했다. 음식점을 오가다 보니 출입문 앞 골목 한쪽에서 고추를 말리고 있었다. 여름 한철 내내 그렇게 고추를 말린다. 완전 자연건조 고추, 태양초다. 모자라는 건 국산 고춧가루를 구해 섞어서 김치를 담근다고 한다. 1960년대 내가 산골에서 자랄 때 먹던 김치와 재료나 외관이 같다.

소머리국밥과 설렁탕의 기본 찬. 부추겉절이·마늘장아찌·배추김치·총각무깍두기. 때론 부추겉절이 대신 쪽파김치가 나올 때도 있다. 반찬이 깔끔하고 차분한 맛이다.

소머리국밥과 설렁탕의 기본 찬. 부추겉절이·마늘장아찌·배추김치·총각무깍두기. 때론 부추겉절이 대신 쪽파김치가 나올 때도 있다. 반찬이 깔끔하고 차분한 맛이다.

음식점 앞에 이 집 음식의 정성을 보여주는 것들이 놓여 있다. 김치는 늘 직접 담근다. 직접 말린 태양초를 빻아서 김치를 담근다. 여름에는 날이 맑으면 날마다 골목에서 고추를 말린다. 고무함지에는 깍두기 담글 총각무를 절이고 있다. 옆에는 배추와 쪽파, 결명자·둥굴레 물을 끓인 주전자가 나란히 놓여 있다.

음식점 앞에 이 집 음식의 정성을 보여주는 것들이 놓여 있다. 김치는 늘 직접 담근다. 직접 말린 태양초를 빻아서 김치를 담근다. 여름에는 날이 맑으면 날마다 골목에서 고추를 말린다. 고무함지에는 깍두기 담글 총각무를 절이고 있다. 옆에는 배추와 쪽파, 결명자·둥굴레 물을 끓인 주전자가 나란히 놓여 있다.

깍두기는 일반 무가 아닌 총각무로 담갔다. 식당 앞 고무함지에 총각무를 절이고 있기도 했다. 조직이 치밀하고 수분이 적어 일반 무보다 먹기에 좀 단단하고 질깃해 싫어할 수도 있다. 맛이 드는 데 걸리는 시간도 길다. 박 여사에게 물으니 일반 무로 담그면 무르는데 총각무는 무르지 않고 아삭아삭해서 그걸로만 한다고 답했다. 여기도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고 있었다. 깍두기를 조금 담그면 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 맛이 날 만큼 담그면 음식점이 작아 여러 날 써야 하니 저장성 좋은 재료를 고민한 결과가 총각무였던 것으로 보인다.

김치·깍두기 맛이 좋다고 하자 박 여사는 “음식점 하기 전에는 김치를 담가본 적도 없어요. 그냥 내 입에 맞게 담가요. 친정어머니·시어머니 하던 거 어깨너머로 본 것뿐이에요. 시어머니는 배춧잎을 한 장씩 길게 김치를 담갔는데 따라 하다가 너무 길어서 지금은 한 번 잘라서 담가요. 고춧가루 좋은 걸로 쓰고 마늘은 기계로 갈지 않고 작은 절구에 다져서 써요. 그래야 마늘 향이 배추에 충분히 잘 배요. 다른 집과 다른 게 있다면 그런 것”이라며 별 것 아니라는 듯 얘기했다.

부추에 양파 채를 약간 섞어 액젓으로 갓 무친 겉절이는 감칠맛이 좋았다. 좋은 고춧가루가 한몫 한 맛이다. 박 여사는 “멸치액젓 맛이에요. 내 손맛은 없어요”라고 했다. 잔 마늘장아찌는 색이 고른 게, 간을 충분히 머금은 자태다. 상에 놓인 소금도 볶아서 곱게 빻은 자가제품이다.

‘와와 소머리탕’ 집의 대표음식 한우 사골 소머리국밥. 부드럽고 맛이 진한 고기는 한우 황소 머리고기이고, 고소한 진국 국물은 한우 사골로 고았다.

‘와와 소머리탕’ 집의 대표음식 한우 사골 소머리국밥. 부드럽고 맛이 진한 고기는 한우 황소 머리고기이고, 고소한 진국 국물은 한우 사골로 고았다.

한우 설렁탕은 고기만 소머리국밥과 다를 뿐 국물은 소머리국밥에 쓰는 것과 한 가지다.

한우 설렁탕은 고기만 소머리국밥과 다를 뿐 국물은 소머리국밥에 쓰는 것과 한 가지다.

소머리국밥과 설렁탕에 함께 쓰는 국물은 우유처럼 뽀얗다. 먹다 보면 아래위 입술에 풀이 묻은 듯 자꾸 붙는다. 입이 쩍 붙는다는 표현이 실감난다. 핏물을 뺀 한우 사골에 잡뼈를 약간 섞어 17시간30분 동안 다섯 차례를 고아서 만든 국물이다. 물을 흘려 보내며 몇 시간 동안 사골의 핏물을 빼고 1차로 삶는다. 한소끔 끓여 남은 핏기를 뽑아낸다. 부유물도 떠오른다. 이 물은 모두 버린다. 그 다음에 1탕, 2탕, 3탕을 끓이고, 세 탕을 따로 받아뒀다가 한꺼번에 섞어 한번 더 끓여야 국물이 완성된다. 매번 물의 양을 정해진 비율대로 붓고, 정해진 시간만큼 끓이니까 맛도 일정하다. 끓이면서 위에 뜨는 거품을 계속 걷어낸다. 거품은 기름기다. 배합해 끓인 국물을 마지막으로 냄비에 덜어 화구에서 데우면서 주문이 있으면 분량대로 끓여서 낸다. 마지막 과정에서도 거품과 국물 속 부유물을 여러 차례 걷어낸다. 그렇게 끓인 국물은 잡맛 없이 깔끔하면서 진하고, 부드러운 고소함이 가득하다. 탕에 넣는 파도 한꺼번에 많이 썰어 두는 게 아니다. 모자라면 몇 대씩 계속 다지면서 탕을 준비한다.

수육을 만들기 위해 소머리 고기를 자르는 여주인 박혜찬 여사. 칼날 끝부분을 뭉툭하게 잘랐다.

수육을 만들기 위해 소머리 고기를 자르는 여주인 박혜찬 여사. 칼날 끝부분을 뭉툭하게 잘랐다.

수육 한 냄비를 만들기 위해 자른 소머리 고기가 무척 정갈하게 보인다. 칼이 놓인 쪽은 우설이다.

수육 한 냄비를 만들기 위해 자른 소머리 고기가 무척 정갈하게 보인다. 칼이 놓인 쪽은 우설이다.

수육 주문을 받으면 삶아서 식혀둔 소머리 고기를 냉장고에서 꺼낸다. 날의 끝을 뭉툭하게 잘라낸 무쇠 칼로 고기덩이 둘레를 다듬어 각을 잡은 다음 가지런하게 저민다. 우설도 잘라 여러 점을 섞는다. 중간에 사골국물을 냄비에 덜어 끓이고, 한쪽에 전골용 돌냄비를 꺼낸다. 저민 고기를 끓는 사골국물에 넣어 토렴하듯 잠시 덥힌 다음 건져서 돌냄비에 펼쳐 담는다. 거기에 사골국물을 조금 부어 상에 낸다. 얇게 저민 새송이버섯과 굵은 부추가 별도 접시에 따로 나왔다. 전골처럼 끓이면서 먹는 수육은 돌냄비에서 국물이 자작자작할 때 가장 맛있다고 했다.

삶아서 식혀둔 소머리 고기를 잘라 끓는 사골국물에 잠시 담가 수육으로 준비하는 과정.

삶아서 식혀둔 소머리 고기를 잘라 끓는 사골국물에 잠시 담가 수육으로 준비하는 과정.

사골국물에 데운 수육을 전골용 돌냄비에 담는 박혜찬 여사.

사골국물에 데운 수육을 전골용 돌냄비에 담는 박혜찬 여사.

수육 상차림. 총각무깍두기, 마늘·고추장아찌가 찬으로 나온다.

수육 상차림. 총각무깍두기, 마늘·고추장아찌가 찬으로 나온다.

수육을 만드는 소머리는 개업 이후 계속 한우 황소만 썼다고 한다. 머리는 암소보다 황소가 맛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농가에서 수송아지를 낳으면 씨소로 키우기 위해 좋은 사료를 잘 먹인다. 자라서 씨소 구실을 잘하면 좋지만 못하면 시장에 내다 판다. 오로지 씨소로 사육됐기 때문에 영양상태가 좋아 한우 머리는 황소가 맛있다는 것이다. 이 집은 소머리든 사골이든 한우만 쓴다고 했다. 처음부터 마장동 한 곳만 거래하고 있다. 소머리는 이틀에 한 번, 1주일에 세 번 꼴로 삶는다. 전날 주문하면 다음날 낮에 소머리를 배달해준다. 도축장에서 오전 일찍 소를 잡으니까 시간이 그렇게 돌아간다. 받아서 20여 시간 핏물을 빼고 1차로 40~60분 끓인 후 물을 갈아준다. 2차로 3시간~3시간20분 삶고 건져서 바로 냉수마찰을 한다. 찬물에 담가 수돗물을 흘려 보내며 담가 둔다. 처음엔 3시간을 담갔는데 단물 빠진다고 2시간 담가뒀다가 건져 냉장고에 넣는다. 그렇게 하면 잡냄새가 없어지고 고기가 쫀득쫀득하다고 했다. 소머리 삶은 물은 일절 쓰지 않고 버린다.

목덜살을 주문하면 고기를 잘라서 조리대에서 초벌구이를 해서 손님 상에 낸다. 기름기가 많아 기름을 한번 빼는 과정이다.

목덜살을 주문하면 고기를 잘라서 조리대에서 초벌구이를 해서 손님 상에 낸다. 기름기가 많아 기름을 한번 빼는 과정이다.

초벌구이를 마친 돼지 목덜살.

초벌구이를 마친 돼지 목덜살.

제주흑돼지 목덜살 구이 상차림. 배추김치·총각무깍두기·쪽파김치와 상추·쑥갓이 쌈 채소로 나왔다. 채소는 이웃 고깃집에서 쓰려고 농사지은 게 남는다고 나눠준 것이라고 했다.

제주흑돼지 목덜살 구이 상차림. 배추김치·총각무깍두기·쪽파김치와 상추·쑥갓이 쌈 채소로 나왔다. 채소는 이웃 고깃집에서 쓰려고 농사지은 게 남는다고 나눠준 것이라고 했다.

마늘 편과 매운 고추를 잘라 넣은 멸치액젓이 불판에서 끓고 있다. 돼지 목덜살을 찍어 먹을 소스이다.

마늘 편과 매운 고추를 잘라 넣은 멸치액젓이 불판에서 끓고 있다. 돼지 목덜살을 찍어 먹을 소스이다.

‘제주흑돼지 목덜살’은 조리대에서 초벌구이를 해서 기름을 빼고 식탁 구이판에 나온다. 구이판 위에는 마늘과 청양고추 넣은 멸치젓국도 올려준다. 쫀득쫀득한 식감과 풍부한 육즙이 일품이다. 돼지고기 부위로는 처음 듣는 이름인데 어디에 붙은 살인지는 주인도 모른다고 했다. 지방층이 근육을 구석구석 촘촘하게 감싼 조직이다. 비계가 적잖게 있지만 물컹거리지 않고 쫀득거린다. 돼지 한 마리에 150g쯤 나온다는데, 얼린 덩이가 어른 작은 주먹 두 개를 합친 크기였다. 별도 부위로 정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하다. 전문가가 분류한 25가지 부위에도 나오지 않고, 인터넷 검색도 안 된다. 이름으로 봐서는 목덜미 쪽이겠다. 고기 유통업을 하는 조카딸이 권해서 들여놨다고 한다. 얼려 도착한 목덜살을 덩이째 보관했다가 주문하면 바로 잘라서 구워준다.

쌈으로 상추·쑥갓과 풋고추가 나왔다. 잎채소는 이웃 고깃집에서 쓰려고 농사지은 게 많다며 나눠줬다고 한다. 볼품은 떨어져도 노지에서 자라 맛은 진했다. 중간에 ‘풋고추 좀 더 줄 수 있냐’고 물으니 박 여사가 얼굴에 재미있는 웃음기를 머금고 나가더니 고추를 들고 들어왔다. 밤이면 노부부가 앉아 휴식을 즐기는 골목 공터 화분에 키우는 고추를 따온 것이다. 마치 시골 원두막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느낌이 들었다.

제주흑돼지 목덜살 덩어리. 돼지 한 마리에서 나온 덩어리다. 목덜살은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고 인터넷에서도 검색이 안 된다.

제주흑돼지 목덜살 덩어리. 돼지 한 마리에서 나온 덩어리다. 목덜살은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고 인터넷에서도 검색이 안 된다.

풋고추를 요청했더니 여주인이 식당 앞 화분에 키우는 고추 네 개를 따다 줬다. 서울 한 복판이지만 시골 원두막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기분이 들었다.

풋고추를 요청했더니 여주인이 식당 앞 화분에 키우는 고추 네 개를 따다 줬다. 서울 한 복판이지만 시골 원두막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기분이 들었다.

음식점 일은 철저하게 부부유별(夫婦有別) 분업으로 한다. 국물 만들고 소머리 삶는 일은 남편이, 식당 조리대에서 음식을 차려 내는 일은 부인이 한다. 점심시간 손님 상 차리고 치우기는 남편이 한다. 박 여사가 옛날 얘기를 꺼냈다. “결혼할 때요, 저 사람이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게 해주겠다고 했어요.” 남자들 결혼할 때는 대부분이 그렇게 말하지 않나, 그건 의욕일 뿐 거짓말이라는 거 모르고 결혼하는 사람도 있나, 생각하며 빙그레 웃어 보이니까 “그런데요, 진짜 그랬어요”라며 반전 스토리를 펼쳤다.

국도 7호선이 지나가는 울산~경주의 경계 어름에서 1945년 태어난 박 여사는 1967년 결혼했다. 시집 올 때 살림 돌볼 아가씨를 데리고 왔다. 그 아가씨가 결혼한 뒤에도 살림해주는 사람을 늘 두고 살았다. 부부는 용산에서 ‘달러 장사’를 했다. 남편이 결혼 전부터 그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일을 도왔다. 살림은 일절 하지 않아 음식을 직접 만들 일이 없었다. 맛있는 음식 먹으러 다니기는 많이 했다. 결혼하고 31년을 정말로 손에 물 안 묻히고 살았다. 한강대로 큰길 가 용산우체국 옆(현재 아모레퍼시픽 사옥 신축하는 곳)에 있던 대지 285㎡(86평) 4층 건물이 집이었다. 지하~3층까지 4개 층은 생질(누이의 아들)이 입주해 비디오 사업을 크게 했고 4층이 살림집이었다. 살림은 넉넉했는데 생질이 IMF 외환위기 때 부도가 났다. 남편이 조카 보증을 여러 건 서는 바람에 집이 날아갔다. 보증한 거 제하고 12억원이 남았다. 당시 상업은행에 빚도 있어 또 제하니 1999년에 건진 게 달랑 1억3000만원이었다. 그걸로 소머리국밥 집을 시작했다. 살던 집은 한 손 거쳐서 100억에 팔렸다는 후일담을 들었다.

집에서도 음식을 해본 적이 없으니 음식점은 생각도 해본 적이 더 없다. 그러나 막상 닥치니까 못할 일이 없었다. 시어머니가 음식을 잘했다고 한다. 남편 고향이 왕십리인데 그곳에서 음식 솜씨로 이름이 있었다. 그 시절에는 명절이나 잔치 때 음식을 나눠 먹는 일이 많으니까 동네 사람들이 알아줬다고 한다. 갑자기 음식점을 시작했지만 남편은 처음부터 잘했다. 개업 첫날 사람들이 “정말 맛있다. 어디서 배웠냐”고 물을 정도였다. “남편이 상상 이상으로 잘하더라”고 박 여사는 회상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남편은 “다 연구해서 한 거예요”라고 한마디 했다.

삼각지 대구탕 골목 끝에 있는 ‘와와 소머리탕’ 입구. 서울지방보훈청 뒷담길이다. 주인은 여름 한철 길에서 고추를 말려 김치를 담글 때 쓴다. 완전 자연건조 태양초다.

삼각지 대구탕 골목 끝에 있는 ‘와와 소머리탕’ 입구. 서울지방보훈청 뒷담길이다. 주인은 여름 한철 길에서 고추를 말려 김치를 담글 때 쓴다. 완전 자연건조 태양초다.

처음부터 이 자리에서 시작했다. 간판도 없이 했다. 음식에 자신이 없어서 안 달았다. 간판을 단 지 5~6년밖에 안 됐다. 찾기 어려운 골목에 있으면서 간판도 없다고 손님들이 하도 지청구를 해서 달았다. ‘와와 소머리탕’ 상호는 이 집을 찾아서 반가운 마음에 “와~소머리탕이다”라고 소리치는 것처럼 하자는 남편 친구의 아이디어에 따라 지었다. 그보다 앞서 언제부터, 누가,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손님들이 ‘와와’라는 말로 이 집을 지칭했다. 약속 장소를 정할 때 ‘와와로 오세요’ ‘와와에서 만납시다”라는 말들을 많이 했다. 아직도 명함에는 주소나 주인 이름은 없고 ‘와!! 와!! 소머리국밥·설렁탕’이라고 적고 전화번호만 넣었다. 간판은 ‘소머리탕’이라고 썼지만 메뉴 이름은 ‘소머리국밥’이다.

이문이 얼마나 남는지 셈은 해봤냐고 물었다. 박 여사는, 이문은 모르겠고 돈 대신 건강은 남았다고 했다. “계산 안 해봤어요. 남는지 안 남는지 모르고 퍼주는 스타일이니까. 얼마라도 남았으니 임대료 내고 망하지 않고 여태 하겠지. 이 나이에 건강하게 일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가져요. 일을 하니까 아플 일도 없잖아요. 남편은 탕 끓이는 창고까지 물을 호스로 끌어가지 않고 양동이로 퍼 날라요. 운동 삼아 직접 나르면서 체력관리를 하는 거지. 집이 넘어가고 할 때는 술도 많이 했는데 요새는 스스로 금주 중이에요. 그래서 몸이 따라 줄 때까지 하려고 해요.”

‘와와 소머리탕’의 주인 방도현·박혜찬씨 부부가 일을 마치고 골목에 나와 쉬고 있다. 이 자리는 자영업을 하는 골목 이웃들이 모이는 동네 사랑방 구실도 한다.

‘와와 소머리탕’의 주인 방도현·박혜찬씨 부부가 일을 마치고 골목에 나와 쉬고 있다. 이 자리는 자영업을 하는 골목 이웃들이 모이는 동네 사랑방 구실도 한다.

손님은 단골이 절반을 넘는다. 바로 옆에 있는 국방부 직원과 주변 자영업자들이다. 그들 중에는 박 여사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채승태 사장도 그 중 한 명이다. 박 여사는 “가족 같이 대하니까 그러나 봐요. 바쁘면 김치도 알아서 냉장고에서 꺼내다 먹고. 고맙죠”라고 했다. 이 말을 듣던 국방부 직원 손님이 말했다. “손님이 아니라 가족처럼 대해주세요. 이것저것 먹어 보라고 챙겨주고, 모자라는 것 없느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7년 전 처음 왔을 때 국물에서 플라스틱 조각이 나왔어요. 실망했는데 그때 함께 왔던 사람들이 지금은 다 여기 단골이 됐어요. 국물이 느끼하지 않고 반찬도 정성스러워요. 일주일에 서너 번은 옵니다. 우리 집에서 먹는 기분이 들게 해주니까 어머니라고 부르지요.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여기 와서 국밥 한 그릇 먹으면 기운이 꽉 차는 느낌이에요. 그런 기분이 이틀은 가요.”

이런 단골들 때문에 음식 값이 싼 듯 하지만 올리지 못한다. “공무원들 상대로 하는데 올리기가 어렵죠. 이 나이에 돈 더 벌어 뭐하겠어요. 돈 벌 생각 안 하니까 마음이 편해요.” 음식 만드는 마음이 이렇게 편하니까 음식 맛도 차분하고 편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을 내는 것도 서두르는 게 없다. 손님이 주문을 하면 그때 고기를 썰기 시작한다. 미리 해놓는 일은 없다. 칼질 속도는 느리다. 박 여사는 “기술이 부족하잖아요. 그래서 느려요”라고 겸손해했다.

수육은 고기에 사골 국물을 자작하게 붓고 부추와 버섯을 얹어 전골처럼 끓여가며 먹는다.

수육은 고기에 사골 국물을 자작하게 붓고 부추와 버섯을 얹어 전골처럼 끓여가며 먹는다.

수육을 주문하자 삶아 식혀둔 머리고기를 자르기에 옆에 가서 부탁했다.

-나: 사진 찍는다고 일부러 고기 더 주시거나 하지 마세요. 다음에 손님들 왔을 때 사진보다 고기 적으면 제가 거짓말 한 게 돼요.
▷박 여사: 그럼요, 그래야지요. 더 주면 내가 손해나는데.

말 한마디에 이 집 음식의 진면목이 들어있었다. 수육 값에 맞춰 고기는 줄 만큼 최대한 준다는 점이다. 사진 찍는다고, 취재한다고 몇 점 더 얹어줄 여지가 없다는 말이다. 느낌상 믿음이 확신으로 변했다.

명절·일요일만 쉬고 다른 날은 공휴일 포함해 매일 문을 연다.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한다. 하지만 점심 때는 밥이 떨어져서, 저녁에는 고기가 떨어져서 일찍 끝내는 날도 종종 있다. 예약은 가능하지만 점심에는 사절이다. 국방부 공무원들 점심시간이 있기 때문에 편의를 봐줘야 한다. 대략 11시 30분부터 12시 30분 사이는 피해서 가는 게 좋다. 그 시간이 지나면 자리가 있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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