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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희의 맛따라기]‘요리가 있는 집’으로 돌아온 해천탕 원조, 희귀생선 회의 고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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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재와 채소를 달인 국물에 생 닭, 큼직한 전복을 껍데기까지 넣고 끓인 ‘해천탕’. 1996년 전복 전문 음식점 ‘해천’에서 개발한 음식이다. 전통 보양식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올해 나이가 스물한 살밖에 안 된 젊은 음식이다. 사진은 2004년 이태원 '해천’에서 촬영한 해천탕이다. 지금도 달라지진 않았다.[중앙포토]

한약재와 채소를 달인 국물에 생 닭, 큼직한 전복을 껍데기까지 넣고 끓인 ‘해천탕’. 1996년 전복 전문 음식점 ‘해천’에서 개발한 음식이다. 전통 보양식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올해 나이가 스물한 살밖에 안 된 젊은 음식이다. 사진은 2004년 이태원 '해천’에서 촬영한 해천탕이다. 지금도 달라지진 않았다.[중앙포토]

6.8평 아지트 만들어 손님과 즐기는 ‘전복의 달인’

요즘은 해천탕이 흔해졌다. 전국 어디를 가도 눈에 띈다. 전래의 여름 보양식인 줄 아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 이름의 음식은 나이가 올해 스물한 살밖에 되지 않았다. 보통명사처럼 생각하지만 고유명사다. 특허청에 상호 등록이 되어있다. 채성태(50)씨가 한약재와 채소 달인 물에 생 닭과 활 전복을 껍질째 넣고 맑게 끓인 음식을 개발해 ‘해천(海川)’이라는 음식점을 열고 상호를 넣어 음식 이름을 지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전복 전문 음식점이었다. 전복으로 수십 가지 음식을 개발했고 음식 호사가들의 명소가 됐다. 새로운 음식이 나올 때마다 미디어에 오르내렸다. 돈도 많이 벌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해천’ 얘기가 잦아들었다.

지난달 23일 저녁에 모임이 있었다. 음식 평론가 강지영씨가 주선해 8명이 모였다. 미슐랭 1스타를 받은 중화요리 집 ‘진진’의 왕육성 오너셰프, 조희숙 한식 전문가, 최성순 와인21닷컴 대표, 남윤희 매거진 『AVENUEL』 편집장, 중앙SUNDAY에 ‘오늘 한 잔 어때?’를 연재하는 이지민 전통주 전문가, 심선애 샘표 홍보담당자와 나.

모임 1시간 10분 전 카톡방에 강씨의 염려 섞인 안내가 떴다. “강지영 이름으로 예약되어 있으며 허름해서 실망하실 수도 있어요.” 삼각지 대구탕 골목이었다. 가끔 다니는 길이지만 이런 집이 있었는지 의식하지 못했다. ‘요리가 있는 집(서울 용산구 한강대로62가길 14/전화 02-749-9797)’이다. 실내는 작았다. 영업신고증을 보니 면적이 21.25㎡(6.4평)라고 돼 있다. 4인 식탁 3개, 2인 식탁 2개, 모두 16석이 놓여 있다. 전면은 수족관과 출입문, 우측 벽 쪽은 주방과 화장실이고 나머지 벽은 붉은 벽돌로 채웠다. 벽돌에 많은 낙서가 적혀 있다. 하나는 이렇게 썼다. “역사를 믿어요! -역사 선생”. 이 집의 사연을 얘기하는 듯하다.

메뉴를 적은 흑판을 보니 “海川 Since 1997”라고 씌어있다. 단품 메뉴는 전복회·전복조림·전복소갈비찜·자연송이버터볶음·해천탕 각 12만원이라고 적혀 있다. 전복내장무침·해산물·회가 곁들여 나오는데 2~3인이 한잔 하면서 먹을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코스는 1인 5만, 7만, 9만원이다. 코스의 내용은 당일 시장에서 사온 물건에 따라 매일 달라지므로 따로 상의해야 한다고 적어 놨다. 최근 메뉴는 인터넷에 떠도는 것과 상당히 다르다. 내용이 이태원에 있던 ‘해천’과 거의 같다.

돌돔(왼쪽)과 붉바리 활어를 한 마리씩 수조에서 주방으로 옮기는 주인의 큰형은 25년간 제주도에 살면서 횟집을 운영했다.

돌돔(왼쪽)과 붉바리 활어를 한 마리씩 수조에서 주방으로 옮기는 주인의 큰형은 25년간 제주도에 살면서 횟집을 운영했다.

붉바리 활어 3마리를 회로 준비하기 위해 수조에서 주방으로 옮기고 있다. 도다리보다 한길 위로 대접 받는 생선이다.

붉바리 활어 3마리를 회로 준비하기 위해 수조에서 주방으로 옮기고 있다. 도다리보다 한길 위로 대접 받는 생선이다.

붉바리를 회로 뜨는 과정.

붉바리를 회로 뜨는 과정.

사람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한 남자가 수족관에서 물고기 3마리를 건져 대야에 담아 주방으로 옮긴다. 우리 팀이 먹을 거라고 했다. 처음 보는 생선이다. 사진 좀 찍자고 요청했다. 연한 적갈색 바탕에 호피 무늬가 보이는 몸통엔 팥만한 주황색 반점이 촘촘히 박혀 있다. 관상어처럼 예쁘게 생겼다. 이름을 물었더니 자랑스레 말했다. “붉바리예요. 제주도에서 다금바리 위로 칩니다.” 붉바리는 수온이 높은 연안 암초지대 바위 틈에 숨어 사는 정착성 물고기다. 밤에 활동하면서 새우·게·물고기 등을 잡아 먹는 육식성이다. 제주 바다에서 주로 잡힌다. 7∼8월이 제철이다. 맛이 좋은 고급 어종이지만 귀하다.

덩치가 무척 큰 돌돔 활어. 보통은 몸통에 7개의 검은색 띠가 있는데, 수컷은 자라면서 줄무늬가 사라져 주둥이 부분만 검은색이 남는다. 저 강한 이빨로 조개를 깨트려 살을 빼 먹는다.

덩치가 무척 큰 돌돔 활어. 보통은 몸통에 7개의 검은색 띠가 있는데, 수컷은 자라면서 줄무늬가 사라져 주둥이 부분만 검은색이 남는다. 저 강한 이빨로 조개를 깨트려 살을 빼 먹는다.

잠시 후엔 붉바리 세 마리 합친 것보다 덩치가 큰 청회색 물고기 한 마리를 건져 옮겼다. 눈과 주둥이 부분은 검은색이다. 일본어 이시다이(イシダイ)로 흔히 불리는 돌돔이다. 해초가 무성한 해저 돌밭에 살기 때문에 그런 이름으로 부른다. 몸통에 7개의 검은색 띠가 있는데, 수컷은 자라면서 줄무늬가 사라져 몸통은 청회색이 되고 주둥이 부분만 검은색이 남는다. 해초도 먹고 갑각류·성게류 등을 깨물어 속살을 빨아 먹는 잡식성이다. 이빨이 아주 강하다. 회·구이·탕 무엇으로든 최고급으로 치며, 창자를 진미로 꼽는다. 여름에 가장 맛이 좋다.

‘요리가 있는 집’ 주인 채성태씨는 ‘전복의 달인’으로 불린다. 해천탕을 필두로 전복으로 할 수 있는 요리 수십 가지를 개발했다. 선수 출신으로 지도자 자격증을 소지한 유도인이기도 하다.

‘요리가 있는 집’ 주인 채성태씨는 ‘전복의 달인’으로 불린다. 해천탕을 필두로 전복으로 할 수 있는 요리 수십 가지를 개발했다. 선수 출신으로 지도자 자격증을 소지한 유도인이기도 하다.

식사를 시작할 무렵 주인이 들어왔다. ‘해천탕’을 처음 만든 ‘해천’의 주인 겸 메뉴 개발자, ‘전복의 달인’으로 불리던 채씨다. 회 뜨는 작업을 하던 남자는 일곱 살 위 큰형이다. 제주도에 25년간 살면서 서귀포에서 ‘안성수산’이라는 횟집을 운영했었다. 음식을 나르는 여성은 동생이다. 첫 접시가 나왔다. 음식이 나온 순서대로 사진으로 설명하겠다.

①전복내장 샐러드

①전복내장 샐러드

↑①전복내장 샐러드: 양상추를 중심으로 미나리, 양파 채, 쑥갓 등이 섞이고 김 가루와 저민 아몬드를 뿌렸다. 한 번 먹고도 몰랐는데 주인 채씨가 전복내장이 들어갔다고 알려줬다. 비린내가 전혀 없었다. 전복내장은 비린내가 문제인데, 살짝 데쳐서 잡았다고 설명했다. 샐러드 간을 잘했다. 약간 센 듯하고 전복내장의 풍미가 잘 버무려졌다. 왕 셰프는 “내 음식과 간이 비슷하다. 아주 맛있게 잘했다”고 평가했다. 간을 무엇으로 했는지 묻자 “전문가들 모시면 이게 골치 아프다니까” 하며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참치액젓이라고 말했다.

②희귀생선 모둠회

②희귀생선 모둠회

↑②희귀 생선 모둠회: 한 접시는 4인 몫이다. 왼쪽부터 전복·돌돔(다음 세 줄)·붉바리·전복이다. 돌돔 회는 살이 단단해 씹으면 아삭아삭 소리가 귀에 들리면서 삼킬 때 단맛이 혀뿌리에 감겼다. 자연산 큰 생선 살이 내는 식감과 맛이다. 붉바리의 흰 살은 맛이 깔끔하면서 씹을수록 맑은 고소함이 올라왔다. 돌돔과 붉바리는 그물로 잡은 활어라고 했다. 꼬리지느러미 쪽 상처가 그 표시라고 했다. 이틀 전 노량진 수산시장에 나온 6마리를 모두 사들였다. 붉바리는 맛으로나 귀하기로 물고기의 귀물에 속한다.

③돌돔 특수부위 5종

③돌돔 특수부위 5종

↑③돌돔 특수부위 5종: 민어에 부레가 있다면 돌돔은 창자를 진미로 친다. 맛이 색다른 특수부위 5가지를 따로 내왔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창자·눈밑살·아가미근육·간·껍질. 창자는 생각보다 질감이 두툼했다.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고소했다. 눈밑살은 소고기 아롱사태를 회로 먹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아가미근육의 조직은 반투명으로 속이 비치는 힘줄 덩어리 같지만 씹히기는 연하고 고소하며 달금했다. 육상 동물의 생간은 먹지 못하는데 돌돔 간은 먹었다. 졸깃한 듯하면서 고소했다. 물고기가 커서 그런지 껍질이 도톰했다. 민어나 도미 껍질보다 두껍고 둔중하게 씹혔다. 돼지껍질 구워 먹을 때 생각이 났다.

④송이·돔·바지락 맑은탕

④송이·돔·바지락 맑은탕

↑④송이·돔·바지락 맑은탕: 새로 개발한 메뉴라고 했다. 모두가 자연산이다. 바지락을 얼마나 좋은 걸 사왔는지 익었는데도 살이 껍데기 밖으로 벗어날 정도로 실했다. 국물 간을 참치액젓으로 했다고 한다. 메뉴 실험을 좋아하는 주인은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요즘 액젓에 빠져있다”고 말했다. 왕 셰프는 “이 탕에 겨울배추 생즙을 짜서 넣으면 맛이 훨씬 시원해진다. 서리 맞은 배추를 일정기간 방에 저장해 익히면 더 달다. 중화요리의 칭탕(淸湯)을 그렇게 만든다”고 아이디어를 줬다.

⑤딱돔구이

⑤딱돔구이

주방 그릴에서 딱돔 여러 마리가 구워지고 있다. 군평선이·금풍생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생선이다. 구이로 많이 먹으며 ‘샛서방고기’라는 별칭도 있다.

주방 그릴에서 딱돔 여러 마리가 구워지고 있다. 군평선이·금풍생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생선이다. 구이로 많이 먹으며 ‘샛서방고기’라는 별칭도 있다.

↑⑤딱돔구이: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주방에 슬쩍 잠입해봤다. 회 뜨는 작업이 궁금했다. 아주 좁은 주방에 들어가니 금빛이 도는 생선을 그릴에서 굽고 있었다. 딱돔이라고 했다. 등지느러미 뼈가 크고 날카롭고 억세서 그렇게 부른다. 닭돔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군평선이·금풍생이라는 이름이 더 알려져 있다. 이순신 장군이 여수에서 전라좌수영을 지휘할 때 식사 시중을 들던 관기 이름이 ‘평선’이었다고 한다. 관기가 생선을 구워서 상에 올리자 맛나게 먹은 장군은 생선 이름이 무엇인지 물었다. 아는 사람이 없었다. 장군은 앞으로 '평선'이라고 부르자고 했다. 이 생선은 주로 구워서 먹으니 ‘군평선이’가 됐고, 소리로 전하면서 금풍생이, 금풍쉥이라고 부르게 됐다는 민간어원설이 있다. 요즘도 여수 사람들이 즐겨 먹고 귀하게 여기는 생선이다. 그곳에서는 맛이 좋아 남편에게는 안 주고 샛서방에게만 몰래 준다 하여 샛서방고기라는 별칭도 있다.

손바닥만한데 칼날이 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비늘이 강하고, 뼈도 세고 굵어서 살은 많지 않지만 맛은 좋다. 구이·찜·조림 등으로 해 먹는다. 살이 야물어 횟감으로도 좋다. 이날 구이는 낮은 온도에서 오래 구웠는지 살이 메마르고 잘 뜯어지지 않았다.

⑥삶은 참소라

⑥삶은 참소라

↑⑥삶은 참소라: 주방에 들어갔을 때 보니 크고 작은 참소라를 20개쯤 미리 삶아놓았다. 식은 다음에 살과 내장을 끝부분까지 잘 발라서 저며 냈다. 내장의 초록색 부분을 잘못 먹으면 탈이 나는데 특히 여름에는 위험하다고 한다.

⑦자연산 광어 전

⑦자연산 광어 전

↑⑦자연산 광어 전: 준비한 회가 당일 소진되지 않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바로 전으로 부친다. 이 날은 자연산 광어로 전을 부쳤다. 살은 단단하고 맛은 담담(淡淡; 느끼하지 않고 산뜻함)했다. 파조차 섞지 않고 계란물만 적셔 전으로 부쳐서 고소함을 더했다.

⑧병어 초된장무침

⑧병어 초된장무침

↑⑧병어 초된장무침: 신맛이 강했다. 병어가 기름져서 식초를 강하게 쓴 모양이다. 음식의 순서 상 술이 얼큰할 때여서 입맛을 돌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병어는 뼈째 도톰하게 썰었고, 양파·대파 약간과 막된장에 사과식초와 매운고추·후추·통깨 넣어 무쳤다.

⑨한치 초고추장무침

⑨한치 초고추장무침

↑⑨한치 초고추장무침: 한치를 한입 크기로 자르고 미나리·양파·대파를 섞어 초고추장으로 무쳤다. 서서히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⑩삭힌 홍어와 묵은지

⑩삭힌 홍어와 묵은지

↑⑩삭힌 홍어와 묵은지: 뜻밖이라 할까, 엉뚱하다 할까. 그 좁은 음식점에서 삭힌 홍어가 나왔다. 홍어는 삭히면 물이 빠지면서 꼬들꼬들해지는데 물이 덜 빠졌다. 쓴맛이 돌았다. 주인은 홍어 삭힐 때 쓸 유기농 짚을 구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가을 추수 때면 내가 부탁해볼 데가 있다고 했더니, 누군가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다고 귀띔했다.

⑪삶은 통 골뱅이

⑪삶은 통 골뱅이

↑⑪삶은 통 골뱅이: 술안주로 자주 먹는 골뱅이는 동해안의 물레고둥, 남해안의 수염고둥, 우리나라 모든 바다에서 나는 큰구슬우렁이를 통칭하는 말이다. 이날 먹은 골뱅이는 수염고둥으로 보인다. 통조림 골뱅이는 조미가 많이 돼 제 맛을 느끼기 어렵지만 생 고둥을 삶아 먹으면 쫄깃한 식감과 감칠맛이 좋다.

⑫전복조림

⑫전복조림

↑⑫전복조림: ‘요리가 있는 집’의 주인 채씨는 전복음식 전문가다. 개발한 전복요리가 70가지쯤 된다고 한다. 전복조림도 그 가운데 하나다. 전복을 통으로 쪄서 녹말소스를 끼얹었다. 녹말 즙에 굴 소스를 약간 넣거나 간장으로 맛을 낸다고 한다.

⑬와다(해삼내장)라면

⑬와다(해삼내장)라면

와다라면을 끓이기 위해 해삼내장 얼린 덩어리를 자르고 있다.

와다라면을 끓이기 위해 해삼내장 얼린 덩어리를 자르고 있다.

해삼내장 얼린 덩어리와 라면 1개를 끓이는 데 넣기 위해 자른 조각.

해삼내장 얼린 덩어리와 라면 1개를 끓이는 데 넣기 위해 자른 조각.

얼린 해삼내장을 끓는 물에 넣자 녹으면서 가닥마다 오그라들고 있다.

얼린 해삼내장을 끓는 물에 넣자 녹으면서 가닥마다 오그라들고 있다.

해삼내장 가닥이 풀어지면 라면을 넣고 삶는다.

해삼내장 가닥이 풀어지면 라면을 넣고 삶는다.

↑⑬와다(해삼내장)라면: 3년의 연구 끝에 개발한 최신작이다. 해삼 내장을 모아 아주 굵은 소시지 모양으로 얼린 것을 5mm 안팎 두께로 잘라 끓는 물에 넣고 라면(진라면)을 끓인다. 면이 익으면 뚝배기에 옮겨 담고 청경채와 숙주나물 몇 가닥을 얹었다. 라면 국물 맛이 신기하게 돌변했다.

⑭돌돔 서덜 미역국

⑭돌돔 서덜 미역국

↑⑭돌돔 서덜 미역국: 덩치가 큰 돌돔을 회 뜨고 남은 뼈로 미역국을 끓였다. 뽀얀 국물 표면을 노란 기름막이 얇게 덮었다. 국물이 고소하고 시원하다. 여기까지 먹느라 제법 술을 마셔 거북해진 속을 부드럽고 자상하게 달래주는 맛이다.

오후 7시 조금 넘어 시작한 자리가 이렇게 먹고 나니 12시가 다 됐다. 음식 값은 1인 10만원, 술은 각자 조금씩 가지고 모여 따로 돈을 내지는 않았다. 매일 이렇게 비싼 음식을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이 집에 더 싼 값에 먹을 수 있는 메뉴들도 여러 가지가 있다. 6일 뒤(지난달 29일) 점심시간에 찾아갔다. 주인은 집안에 우환이 있어 자리를 비웠다. 제주도에서 온 큰형이 지키고 있었다. 손님 7명이 있었다. 5명 테이블은 생물 대구탕(1인 8000원)을 먹고 있었다. 2인 테이블은 전복조림을 먹고 있었다. 나는 전복 된장찌개(1만5000원)를 주문했다. 이밖에 와다(해삼내장) 라면·전복삼계탕(각 1만5000원)·낙지볶음(1만2000원)도 있다. 지난 주 왔을 때 얼굴을 기억하는지 주문하지 않은 접시가 하나 나왔다.

①돌돔회무침

①돌돔회무침

↑①돌돔회무침: 돌돔 회를 새끼손가락 크기로 잘라 일본간장 약간 치고 참깨를 뿌려 무쳤다. 그릇에 담고 김 가루를 얹었다. 회는 잔 가시가 가끔 걸리기도 했지만 찰떡을 먹을 때처럼 혀에 척척 감겼다. 작은 주방에서 음식을 혼자 하니 빨리 준비하기 힘들어 기다리는 동안 한잔 하지 않을까 싶어서 회를 내주는 듯했다. “심심할 테니 드세요”라며 상에 올렸다. 거듭된 과음에 지쳐(실은 가슴팍 속이 뜨끔거려) 술 없이 그걸 다 먹었다. 회는 간장 맛인지 씹을수록 감칠맛이 돌았고 삼킨 뒤에는 목 안에서 고소한 단맛이 올라왔다.

②전복된장찌개

②전복된장찌개

②-1 전복된장찌개와 7찬 상차림

②-1 전복된장찌개와 7찬 상차림

②전복된장찌개: 혼자서 다 먹었지만 2인분을 끓여서 내왔다. 전복은 작지만 살만 들어간 것, 껍데기까지 들어간 것이 섞여 모두 20개쯤 됐다. 전복 껍데기를 국물 낼 때 쓰기도 하니까 반은 껍질 째 조리를 한 것 같다. 찌개에는 작은 꽃게 2마리, 두툼한 오징어 살과 주꾸미 다리도 들어갔다. 국물은 처음엔 기침이 나올 정도로 매콤했다. 양식 전복은 작다고 나이가 어린 것은 아니다. 같은 시기에 치패(稚貝)를 들여와 키우기 시작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더디게 자랐을 뿐이다. 이렇게 작은 것들은 자루에 담아 아주 싼 값에 거래된다. 밑반찬은 조기구이·동치미·오이소박이·배추김치·깻잎장아찌·시금치나물·오징어젓갈무침, 7찬이 나왔다.

새벽 노량진수산시장에 가서 사놓은 활어를 오후 1시쯤 수조차가 배달해주고 있다. 차가 들어오지 못하는 골목이어서 물고기를 물통에 담아 손수레로 옮겨서 횟집 수조에 넣고 있다.

새벽 노량진수산시장에 가서 사놓은 활어를 오후 1시쯤 수조차가 배달해주고 있다. 차가 들어오지 못하는 골목이어서 물고기를 물통에 담아 손수레로 옮겨서 횟집 수조에 넣고 있다.

점심 손님이 다 나가자 일한 사람들도 식사를 했다. 그날 첫 끼라고 했다. 오전 내내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사온 생선과 해산물들 손질해 손님 맞을 준비하고, 점심 영업하느라 식사할 시간이 없었다. 날마다 그렇다고 한다. 식사하려고 앉는데 다시 누가 찾아왔다. 새벽에 노량진수산시장에 나가 주문한 활어를 수조차가 싣고 왔다. 돌돔(암컷) 1마리, 강당돔(배달한 사람은 ‘범돔’이라 함) 3마리, 줄전갱이(흔히 일본어 이름인 ‘시마아지’라 부름) 3마리가 들어왔다. 강당돔은 처음 봤다. 옛날 교련복 같은 얼룩무늬로 덮여 있다. 돌돔과 습성·생태가 비슷하다고 한다. 강한 이빨로 조개나 성게류 등을 부수어 먹는다. 고급 요리재료로 취급되며 여름에 가장 맛이 좋다.

노량진수산시장에서 바로 횟집에 도착한 활어들. 점박이 강당돔(배달한 사람은 ‘범돔’이라 함) 3마리, 줄무늬 돌돔 1마리, 날렵한 유선형의 줄전갱이 3마리가 왔다.

노량진수산시장에서 바로 횟집에 도착한 활어들. 점박이 강당돔(배달한 사람은 ‘범돔’이라 함) 3마리, 줄무늬 돌돔 1마리, 날렵한 유선형의 줄전갱이 3마리가 왔다.

활어와 함께 배달 온 아이스박스에는 회로 먹어도 될법한 참돔 10마리가 들어 있다. 회를 먹은 손님에게 맑은탕으로 끓여 낼 때 쓸 거라고 했다.

활어와 함께 배달 온 아이스박스에는 회로 먹어도 될법한 참돔 10마리가 들어 있다. 회를 먹은 손님에게 맑은탕으로 끓여 낼 때 쓸 거라고 했다.

줄전갱이도 활어를 보기는 처음이다. 주인은 일본산 양식이라고 다른 자리에서 말했다. 생선이 힘이 좋아야 회 맛도 활기찬데 요즘 힘 좋은 자연산 횟감이 적어서 사왔다고 한다. 스티로폼 상자도 하나 왔다. 신선한 참돔 10마리가 들어있었다. 눈알을 보니 선어회로 먹어도 될 정도의 선도였다. 저녁 손님들에게 나갈 맑은탕 거리라고 했다. 송이·돔·바지락탕을 말하는 듯했다.

사흘 뒤(지난 25일) 부인 병구완 중인 채씨를 병원 커피숍에서 만나 살아온 이야기와 이태원에서 하던 옛 ‘해천’이야기를 들어봤다.

유도 명문 비봉고등학교 유도선수 출신인 그는 1991년 충남 태안군 안흥 앞바다에 있는 신진도의 부속 섬인 마도로 갔다. 바다를 좋아하는 그는 ‘하얀등대’라는 민박 겸 횟집을 차리고 눌러앉았다. 술 마시는 자리 옆이 바로 바다였다. 술 마시다가 걸어 들어가 소라나 낙지를 잡아 안주로 먹기도 했다. 그때 어선보다 빠른 레저용 보트를 가지고 있었다. 해녀들이 급하게 움직일 때 실어다 주곤 하다 친해졌다. 해녀들은 잡아온 전복 중 자잘해서 값이 안 나가는 ‘께끼’를 먹어보라면 자주 줬다. 그걸 안주로 먹으면 술이 잘 취하지도 않고 깰 때도 편했다.

고향(경기도 안성) 선배에게 전복을 갖다 드렸더니 닭과 전복을 고아서 함께 먹자고 권했다. 선배의 고향인 화성시 서신·사강 지역에서 그렇게 해 먹는 걸 봤다고 했다. 시화방조제가 막히기 전까지는 바다가 가까웠던 동네다. 송산면 사강리에는 지금도 제법 큰 수산시장이 있다. 전복과 닭의 조합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전복 음식을 먹고 나면 피로도 잘 풀리고, 무엇보다 아침에 힘이 느껴졌다. 전복의 효과를 믿고 스쿠버다이빙을 시작했다. 전복이 어디서 뭘 먹고 자라는지 궁금했다. 해초가 많은 어두운 곳에 많았다. 보름달이 뜨면 안 나오고 그믐이나 초승달 뜰 때, 비 올 때 많이 나오고 활동도 많았다. 수줍음 많은 여자를 연상시겼다. 전복 잡는 귀신이 됐다.

어느 날 아는 형님 부부가 놀러 왔다. 전복과 닭을 고아서 대접했다. 며칠 놀다간 그 분이 달라졌다. 부인이 알아챘다. 서울에 전복 전문점을 내자고 했다. 1996년 경리단길(회나무로) 꼭대기에 동업으로 제법 큰 음식점을 냈다. 상호를 바다(전복)와 하늘(닭)을 합쳐 ‘해천’이라고 정했다. 한자로 써보니 '海天'은 별로 맵시가 안 났다. 뜻보다 모양으로 가자고 ‘해천(海川)’으로 바꿨다. 바다와 민물이 만나는 곳에 은어·연어·풍천장어·참게·황복 같은 좋은 물고기가 많다는 점도 참작했다. 상호에 따라 주력 음식 이름을 ‘해천탕’으로 정했다. 자연산 전복에 닭을 넣고 푹 곤 음식이라니 돈 있는 손님들이 많이 왔다. 그러나 다시 찾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1년쯤 하다가 접었다. 주방장 의욕이 넘쳐 국물에 한약재를 너무 많이 넣었다. 음식이 아니라 한약 가까운 맛이 났던 것이다.

다시 제주도로 내려갔다. 큰형이 서귀포에서 ‘안성수산’이라는 예약제 횟집을 하고 있었다. 저녁 손님만 받았는데 자연산 참돔을 100kg씩 준비해도 모두 팔리는 유명한 음식점이었다. 1년쯤 있으면서 실패한 이유를 따져보고 해천탕의 레시피를 완성해 서울로 돌아왔다. 1997년 이태원에 ‘해천’을 다시 열었다.

많은 음식을 개발했다. 전복 음식이 20여 가지, 해초죽도 반응이 좋았다. 김·미역·파래·다시마·매생이 넣고 볶아서 죽을 쑤는데 개발할 때 아무리 해도 비린내가 없어지지 않았다. 예전 어머니가 하던 걸 돌이켜보니 답이 있었다. 참기름 둘러 해초를 볶으니까 해결됐다. 이태원 해천 외에도 압구정 현대백화점과 순천향병원에 죽 집을 내고, 신세계백화점에 반찬코너 ‘해천’을 열기도 했다.

가게는 몇 달 만에 일어섰다. 2001년 ‘사랑의 밥차’를 시작했다. 주문 받은 죽을 배달하다가 돈이 없거나 몸이 불편해 먹고 싶어도 못 먹는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음식을 해주는 봉사활동에 나섰다. 처음엔 승용차로 하다가 후배가 트럭을 기증해서 이동식 주방을 꾸려 매주 봉사를 나갔다.

‘요리가 있는 집’의 주인 채성태씨는 현재 사단법인 ‘사랑의 밥차’ 이사장이다. 2001년 시작해 주방시설을 한 차를 끌고 가서 한 달에 4회 음식 나눔 봉사를 한다.

‘요리가 있는 집’의 주인 채성태씨는 현재 사단법인 ‘사랑의 밥차’ 이사장이다. 2001년 시작해 주방시설을 한 차를 끌고 가서 한 달에 4회 음식 나눔 봉사를 한다.

장애인 시설,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방과후교실 등에 찾아가서 희망 음식을 신청 받아 현장에 가서 요리를 해준다. 랍스터부터 캘리포니아롤·돈가스까지 안 되는 음식이 없다. 채씨는 지금도 이사장을 맡고 있다. 서울·충청도와 포항에 주방 차 1대씩이 매주 봉사활동에 나선다. 앞으로 전국에 8대까지 늘리는 게 목표다. 이 일을 하느라 빚도 많이 졌다. 그는 “남에게 뭘 해주는 게 왜 이리 좋은지 빚을 져도 하게 된다. 이것도 중독인가 보다”라고 말했다.

‘사랑의 밥차’가 인연이 돼 장애인들과 히말라야도 가고 캄보디아로 해외봉사도 갔다. 캄보디아는 우리나라와 함께 세계에서 지뢰가 가장 많은 나라다. 채씨의 아버지는 6·25 때 안남미 얻어 먹은 얘기를 종종 했다. 그 쌀이 온 곳이 동남아이니, 내가 갚아주자는 생각으로 갔다. 의족·의수·쌀 지원, 집·화장실 지어주기, 우물 파주기 같은 일을 했다. 주변의 도움을 받았지만 이태원 ‘해천’에서 번 돈도 거기에 다 썼다. 캄보디아 지원 사업을 더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 정착을 생각했다. 2011년 20만평 땅을 마련해(현재는 7만 평) 농장을 만들었다. 현지 관리인을 두고 건강식품으로 활용되는 모링가·그라비올라와 커피·바나나·망고·파파야 나무 등을 재배한다.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 직원들 월급 주러 다녀온다.

캄보디아에 몰두하느라 이태원 해천을 1년간 완전히 비웠다. 후배에게 맡겼더니 잠깐 사이에 잘못돼 2014년 완전히 손을 뗐다. 단골이던 음식 전문가, 미디어 종사자, 방송·연예인, 식품업계 친구들이 “당신이 하던 해천이 없으니 갈 데가 없다. 믿고 먹을 데가 없다. 십시일반으로 돈 모아 회원제 식당 만들어 먹고 놀자”고 졸랐다. 지난해 9월 놀이터 삼아 작은 공간을 마련했다. 탤런트 공효진의 어머니가 1번 회원으로 500만원을 쾌척했다. 배우 전무송·이창훈씨도 단골이다. 몇 달을 단골들 하고 잘 먹고 잘 놀았다. 막상 손을 다시 대니 ‘할 거면 제대로 하자. 나도 먹어야 하니까. 좋은 물건 들여놓고 잘하자’ 하는 생각이 들어 ‘요리가 있는 집’ 간판을 걸었다. 용산세무서 사업자등록증에 적힌 개업일은 2017년 5월 1일이고, 용산구청 영업신고증을 받은 날은 5월 15일이다.

식재료는 대부분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사온다. 일요일을 빼고 매일 나간다. 살 게 없어도 2시간씩은 돌아다닌다. 돌아다니다 ‘째려보는’ 물고기가 있으면 산다. 눈빛이 그 정도면 그만큼 싱싱하다는 표시다. 음식 값은 그날 구입한 물건에 따라 다르다. 1㎏에 1만4000원짜리 생선을 사면 1인 3만원 받고 곁들이 음식과 함께 차려준다. 제주 다금바리가 1㎏ 15만원에 올라오면 1인 9만원은 받아야 한다. 좋은 재료를 구하면 사발통문을 돌린다. 사람들이 번개모임을 엮어서 회신이 온다. 술은 마시고 싶은 것으로 가져와도 좋고 가게에서 파는 술을 마셔도 된다. 채씨는 “그런 날은 나도 엔도르핀 만드는 날”이라고 했다.

100% 예약제로 운영한다. 에약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지나가다 들르는 손님은 자리가 비어있어도, 물건이 남아도 받지 않는다. 준비 제대로 안 하고 음식을 내면 어설퍼질까 봐서 그런다고 했다. 손님을 받았으면 맛있게 먹도록 준비하고 함께 즐기고 놀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기분 내키면 골목에 숯불 피우고 수조에서 돌돔 잡아 비늘도 안 벗긴 채 구워서 나눠 먹기도 한다.

삼각지 대구탕 골목 안에 둥지를 튼 ‘요리가 있는 집’. 해천탕을 개발한 이태원 ‘해천’의 옛 주인 채성태씨가 지난 해 지인들과 놀이터 삼아 열었다.

삼각지 대구탕 골목 안에 둥지를 튼 ‘요리가 있는 집’. 해천탕을 개발한 이태원 ‘해천’의 옛 주인 채성태씨가 지난 해 지인들과 놀이터 삼아 열었다.

그는 음식점 골목 아래위 일식·소머리국밥 집 주인들을 아버지·어머니라고 부른다. 맛있는 게 있으면 꼭 나눠 먹는다. 퇴근할 땐 인사하고 간다. 이유를 물어보니 그의 사람됨이 엿보이는 대답을 했다. “어머니는 고1 때, 아버지는 내가 스물아홉 살 때 돌아가셨다. 내가 대여섯 살 무렵 아버지 사업이 부도나 다리 밑에서 삶은 보리쌀로 끼니를 이으며 살기도 했다. 고생 많이 하셨는데, 자식이 맛있는 음식도 개발하고 돈도 벌었지만 뭘 해드릴 수가 없다. 부모님 대신 해드린다. 그 분들 계셔서 내가 행복하다.”

문 여는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10시. 일요일은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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