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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리셋 코리아

살 만한 집 공급이 최우선 … 공공임대·재개발 확대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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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부동산 시장 안정시키려면

정부의 규제에도 인기 지역의 청약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주상복합아파트 용산센트럴파크해링턴스퀘어 견본주택에서 시민들이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규제에도 인기 지역의 청약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주상복합아파트 용산센트럴파크해링턴스퀘어 견본주택에서 시민들이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는 주택시장 과열을 막기 위해 주택 청약 조정 대상 지역을 서울·부산·세종 등 전국 40곳으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이들 지역은 지난 3일부터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이 10%포인트씩 낮아졌다. 지난해 11·3 대책으로 주택시장 과열이 해소되지 않자 이번 6·19 대책에서는 대출 규제 카드를 빼 든 것이다.

리셋 코리아 경제분과 제안 #6·19 대책은 투기 차단에만 초점 #주택의 질, 자녀 교육 수요 등 고려 #실수요자 내 집 마련 대책 추진을 #투기 수요 억제 위해 보유세 인상 #임대주택 소득 과세도 시행 필요

문제는 이 같은 수요 억제 대책만으로는 주택시장 불안을 근원적으로 해소할 수 없다는 점이다. 주택시장에는 투기 자금도 유입되고 있지만 이보다는 내 집 마련을 위한 실수요 차원의 투자가 더 많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의 첫 주택시장 대책은 주택 공급을 위한 대책은 빠져 있고 수요만 억제했다는 점에서 미봉책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 7월 첫째 주(5·6일) 청약 접수를 진행한 전국 12개 아파트 단지 중 서울 등 청약조정대상 지역 인기 단지들은 청약 규제에 아랑곳없이 전 주택형이 마감됐다. 현대산업개발의 ‘고덕 센트럴 아이파크’는 540가구 모집에 1만2734명이 몰려 평균 23.6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1순위에서 주인을 찾지 못한 단지는 2개 단지에 그쳤다.

이 같은 주택 수요는 앞으로 규제가 강화될수록 표면적으로 사라지겠지만 풍선효과를 통해 언제든지 고개를 들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경기도 구리시는 풍선효과가 예상되는 지역이다. 구리시 서쪽(서울)과 동쪽(남양주 다산신도시)은 분양권 전매가 입주 때까지 금지됐다. 하지만 구리시는 당첨 6개월 뒤부터 분양권 거래가 가능하다.

중앙일보·JTBC의 국가 개혁 프로젝트 ‘리셋 코리아’ 경제분과는 이래서는 주택시장 불안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역대 정부가 수많은 주택 정책을 쏟아냈지만 사실상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것은 주택시장의 수요와 공급 구조를 무시하고 규제하려고만 하거나 경기 부양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더구나 주택은 수급의 조절만으로 가격을 통제하기 어려운 특수한 재화다. 주택의 수급에는 경제활동 참가자의 소득, 주택의 질과 위치, 주택 소유 희망자의 자녀 교육 수요를 비롯한 사회적 여건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섰지만 여전히 주택 수요가 넘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08년 이후 주택가격 상승세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저금리도 주택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온라인 시민 제안 사이트 시민마이크(peoplemic.com)에도 이 같은 주택시장의 특수성을 고려해 주택 정책을 세워야 한다는 의견들이 올라왔다. park***는 “일회성 대책보다는 장기간 지속적인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며 “거시적인 정책과 함께 미시적인 대책도 함께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또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투기 세력의 제재도 필요하지만 서민들의 주택 마련을 위한 대책도 함께 추진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리셋 코리아 경제분과는 이 같은 인식에 공감하면서 다각적이고 복합적인 주택시장 안정 대책을 주문했다. 우선 투기 수요 억제는 기본적으로 필요하다는 견해가 중론이었다. 주택은 거주 공간이면서 자산 증식을 위한 투자 수단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투기 요인을 내재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조성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보유세의 강화는 부동산에 대한 지나친 투자 수요를 완화하게 된다”며 “조세의 형평성과 중산층·서민층의 주거 안정을 위해 임대주택 과세도 원칙대로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약 1순위, 통장 가입 2년 뒤로 강화를

현재 다주택자는 187만 명에 이르고 있지만 2000만원 이하 임대주택 소득에 대한 과세는 내년 말까지 유예돼 있다. 하지만 2019년부터는 더 이상 유예하지 말고 반드시 과세해야 한다는 것이 리셋 코리아 경제분과의 의견이다. 다만 보유세 강화와 임대주택 소득 과세가 전·월세 인상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주택이 꾸준히 공급돼야 할 것이다.

보유세 인상도 투기 수요 억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한국은 과세 대상 부동산의 공시가격 대비 보유세 실효세율이 0.279%로, 미국(1.4%)·덴마크(0.69%)·대만(0.32%)에 못 미친다. 이에 따라 한국도 점진적인 부동산 과표 현실화를 통해 보유세 실효세율을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 보유세를 높이면 14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의 증가를 막는 효과도 기대된다. 2005년 처음 도입된 종합부동산세의 경우 이명박 정부 들어 과세 기준을 완화하기 전에는 주택시장 과열을 잡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처음엔 오히려 집값을 올렸지만 나중엔 집값을 잡았다.

또 6·19 대책과 8월 중 제시될 가계부채 종합대책에도 불구하고 투기 수요가 계속 꿈틀댄다면 예정대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부활도 검토해볼 만하다. 이 제도는 2006년 도입됐지만 2013년까지 주택 경기가 침체돼 있었던 데다 초과이익에 대한 성격을 둘러싸고 위헌 논란까지 일어나면서 올해 말까지 시행이 유예되고 있다. 그러나 재건축 아파트는 도로·교통·학교 등 도시 생활 인프라의 수혜에 힘입어 가치가 오르는 부분이 적지 않다. 이를 고려하면 개발 이익 환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수도권 청약 1순위 자격을 청약통장 가입 2년 이후로 강화하는 것도 수요 억제에 도움이 될 것이다.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공공 임대주택을 적극적으로 공급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정수 한국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통 임대주택이라고 하면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보지만 시설이 좋은 임대주택이 공급된다면 주택시장 과열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 임대주택 확대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기도 하다. 해마다 17만 호를 공급해 5년간 총 85만 호(장기 13만 호 포함)를 공급할 계획이다. 서민의 전·월세 부담을 덜어주고 취업난을 겪는 젊은 층과 고령층의 주거 불안을 완화해주기 위해서다.

그동안 저금리의 여파로 전세가 월세로 대거 전환된 결과 저소득층의 주거 부담이 급증해 왔다. 저소득층일수록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는데 공공 임대주택은 이들의 주거 불안을 완화해 줄 뿐 아니라 주택 공급을 늘려 주택시장 과열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 고령화에 따라 노인 인구가 늘어나는 것도 임대주택의 공급 확대가 필요한 이유다.

현재 한국의 장기(10년 이상) 공공 임대주택 비율은 전체 주택의 5.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다. 임대주택 비율이 85%에 달하는 싱가포르에서는 최장 99년까지 임대주택을 사용할 수 있어 평생 집 걱정이 없다. 강영재 KSP 공동대표는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공공 임대주택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선 최장 99년 임대주택 사용

임대주택을 확대하려면 민간 건설회사의 참여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현재 공공 임대주택은 공기업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주로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민간 건설회사의 참여를 확대시키면 공공 임대주택의 공급 속도를 높일 수 있다. 다만 공공 임대주택이 지금처럼 시장 질서를 무너뜨리는 요인이 돼서는 안 된다. 홍기석 이화여대 교수는 “10년 임대주택은 10년 임대 후 분양을 하고 입주자가 우선권을 갖는데, 시가보다 낮게 공급하기 때문에 시세 차익이 발생한다”며 “이렇게 공공성이 훼손되면 공공 임대주택이 정착되지 못하고 시장 불안만 불러온다”고 지적했다.

투기 수요를 억제하고 공공 임대주택을 확대하는 것은 주택 정책의 본질이 될 수는 없다. 소득 증가와 삶의 질 향상에 따라 누구나 쾌적한 주거 환경을 희망한다. 신규 분양 아파트가 나오면 구름처럼 청약 희망자들이 몰려드는 이유다. 일본에서도 거품경제 붕괴 이후 부동산 시장이 침체에 빠졌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다른 양상이 벌어진다. 신규 주택은 분양되자마자 ‘완판’되고 가격은 해마다 오르는 추세다.

주택 공급 늘릴 신규 택지도 확보해야

결국 주택정책은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초점을 맞추고 장기적 안목에서 추진돼야 한다. 우선 재건축·재개발은 최대한 허용해 끊임없이 양질의 주택이 공급될 수 있어야 한다. 투기 수요를 억제하는 정책을 쓰되 공급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누구나 더 좋은 집, 환경이 좋은 지역을 선호하기 때문에 오래된 집이나 환경이 나쁜 지역은 외면당해 결국 슬럼화할 수밖에 없다. 주택 보급률이 100%를 넘어섰지만 빈집이 이미 100만 채를 넘어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서는 신규 택지도 적극적으로 늘려야 한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도시정책실장은 “임대주택이든 일반 주택이든 꾸준히 공급하기 위해서는 택지가 필요한데 지금은 거의 고갈돼 있는 상태”라며 “정부에서도 부족한 택지 확보를 위해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해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시 재생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서울의 경우 강북의 주거 환경을 개선해 강남으로 몰리는 주택 수요를 분산시켜야 한다. 조성욱 교수는 “주거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교육·교통·환경·공공시설 등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를 낙후된 지역에도 확대한다면 주택시장의 수요 쏠림 현상을 구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경우에도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을 막아서는 안 된다. 이종화 고려대 교수는 “주택시장이 냉탕·온탕을 오가지 않으려면 투기는 차단하되 공급은 꾸준히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동호 논설위원 dong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