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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학교 개방' 서울시조례 "상위법 위반" 유권해석 나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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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연말 서울에서 '서울 공립학교 시설 개방 및 이용에 관한 조례'가 통과됐다. 공립학교는 운동장·체육관·교실 등의 학교 시설을 일반 시민에게 적극적으로 개방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학교 개방을 조례에서 의무화 하는 것은 초·중등교육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유권해석이 나왔다. 서울교육청은 "이미 조례가 자리잡았다"며 법규 위반 상황을 해소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해 연말 서울에서 '서울 공립학교 시설 개방 및 이용에 관한 조례'가 통과됐다. 공립학교는 운동장·체육관·교실 등의 학교 시설을 일반 시민에게 적극적으로 개방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학교 개방을 조례에서 의무화 하는 것은 초·중등교육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유권해석이 나왔다. 서울교육청은 "이미 조례가 자리잡았다"며 법규 위반 상황을 해소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중앙포토]

서울의 공립 초·중·고교가 운동장·교실을 지역주민에게 개방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으로 지난해 통과된 서울시 조례가 ‘상위법을 어겼다’는 법제처·행정자치부의 유권해석이 나왔다. 학교 시설 이용 기준에 관한 규정을 교육감이 정하도록 초·중등교육법에서 규정한 만큼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정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학교와 학부모들은 그간 학생 안전 등의 이유를 들어 시설 개방에 반대해왔다. 하지만 조희연 교육감이 이끄는 서울시교육청은 서울시의회의 결정이라며 이를 수용했고, 이번 유권해석에 대해 "입장의 변화가 없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법제처 "초중등교육법서 교육감 권한으로 정해" #유권해석 요청한 경기도교육청에 최근 전달 #서울선 지난해 시의회가 조례로 개방 의무화 #교육청, 개방하는 학교에 예산 지원 강화도 # #서울교육청 "현 상황 문제 없고 조례 자리잡아" #교육계 "교육청이 불법 방치 하다니 안 믿겨"

학교 시설 개방에 대한 서울시 조례의 법률(초·중등교육법) 위반이 알려진 것은 최근 경기도교육청이 법제처에 요청한 유권해석이 나오면서다.
10일 법제처·서울시교육청·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법제처는 최근 경기도교육청에 ‘학교 시설 개방에 대한 기준은 지자체 의회가 정하는 조례가 아니라 교육감이 정하는 교육규칙에 따라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전달했다. 앞서 경기도교육청은 일부 경기도 도의원이 경기도 내 학교 개방을 확대하는 내용의 조례안을 발의하자 유권 해석을 의뢰했다.

이와 관련해 법제처 자치법제지원과 김성일 사무관은 “초·중등교육법(제11조)에선 학교 시설 이용에 관한 규정을 교육감의 교육규칙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지자체 의회의 조례 제정은 초·중등교육법에 어긋나며 교육감의 고유 권한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답변했다.

초·중·고교 시설의 개방과 이용에 대한 기준을 지차체의 의회가 조례로 정하는 것은 교육감의 고유 권한을 침해한다는 내용의 법제처의 유권해석 내용.[자료:법제처 홈페이지]

초·중·고교 시설의 개방과 이용에 대한 기준을 지차체의 의회가 조례로 정하는 것은 교육감의 고유 권한을 침해한다는 내용의 법제처의 유권해석 내용.[자료:법제처 홈페이지]

이런 유권해석이 알려지자 이미 조례로 학교 개방을 확대해온 서울로 불똥이 튀었다. 서울시의회는 지난해 9월, 12월 두 차례에 걸쳐 학교 개방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전국 17개 시도 중 교육청 규칙 대신 의회 조례로 학교 개방 기준을 정한 곳은 현재까지 서울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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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자치부 역시 학교 개방에 대한 서울시 조례가 상위법을 위반한다고 보고 있다. 행정자치부 구본규 자치법규과장은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따르면 서울시 조례도 상위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교육감이 위법한 조례를 제지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하지 않는 상황으로, 통상적인 절차에서 벗어난다”고 말했다.

구 과장 설명대로라면 권한을 침해받은 당사자인 교육감이 무효임이 분명한 조례를 방치하는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통상적으로 지자체 의회가 의결한 조례에 대해 지자체장이나 교육감이 '법 위반'이라고 판단하면 의회에 재의(再議)를 요구할 수 있다. 그래도 의회에서 재의결하면 대법원에 제소해 무효 판결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서울교육청은 이런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게다가 유권해석이 나온 이후에도 그럴 의향이 없는 상태다. 서울시교육청 이길환 교육재정과장은 “서울은 다른 시도와 달리 교육규칙 아닌 조례로 제정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현행 조례는 이용 절차와 사용료 등을 적절히 제시하고 있어 이용자 입장에서 편리하다. 학교 현장에서 자리잡은 조례를 폐기하고 새 규칙으로 도입하면 오히려 혼란이 가중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학교 시설 개방은 지역 주민에겐 공동체 활동 공간이 늘어나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학교들로선 학생 안전 확보, 시설 관리 등의 숙제가 생긴다. 이 때문에 지자체 의회와 학교·학부모 간에 찬반이 엇갈린다. 초·중등교육법에서 학교 시설 개방 기준을 교육감이 정하게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서울시의회는 ‘교육 활동, 학생 안전에 지장이 없다면 학교장은 학교 시설을 원칙적으로 개방해야 한다'는 내용의 조례를 통과시켰다. 주민 요청을 거부할 때는 학교장이 서면 등으로 사유를 밝히게 해 학교 측의 거절도 까다롭게 했다. 시의원들은 “생활체육 인구가 급격히 늘고 있지만, 서울 시내에 수요 급증을 감당할 수 있는 시설이 부족하다”는 점 등을 학교 시설 개방의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이런 조례안에 대해 교사와 학부모들은 학생 안전, 학교 관리 책임과 예산 문제 등을 들어 반대했다. 조례 통과 후 한국교총은 초등학교·중학교 학부모 2만1502명의 반대 서명을 교육청에 제출했다. 지난해 말 ‘음주·흡연·취사를 한 이용자의 재사용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조례가 일부 수정됐을 뿐이다.

학교들은 시설 개방에 따른 부작용을 호소한다. 서울의 한 공립초 A교장은 매주 월요일 출근하면 교문과 운동장, 체육관 주변을 돌며 쓰레기를 치운다. 주말동안 학교를 이용한 주민들이 버려놓은 테이크아웃 커피잔·과자봉지 등이다. 지난해까지는 조기축구회가 매일 오전 한두 시간 운동장을 빌려쓰는 정도였다. 하지만 조례가 생겨 주민들의 학교 사용이 부쩍 늘었다. 주민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체육관을 빌려쓰고, 동네 독서모임도 수시로 교실을 사용한다.

주민들이 시설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아도 학교 측은 이를 거부하기가 힘들다. A교장은 “주민들이 쓰레기를 잘 안 치워 사용을 거절하려해도 교육청에 민원을 하겠다고 반협박조로 나와 난감하다”고 말했다. 인근의 초등학교 B교장도 “이런 혼란을 우려해서 학교들이 개방을 반대한다고 시교육청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합법적으로 이를 막을 권한이 있는 교육감이 제지하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교육청은 오히려 지난해말 조례 개정안이 통과되자 학교시설을 적극 개방하는 학교에 예산(60억원)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현재 상황에 대해 조희연 서울교육감이 내년도 교육감선거를 의식해 학교보다 시의원들을 더 챙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점희 서울교육청일반직공무원노조 위원장은“교육감과 교육청이 각종 생활체육단체들의 표를 얻으려는 시의원들의 정치적 계산에서 나온 조치를 막기는커녕 자기 권한까지 내주며 사실상 돕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교총 김재철 대변인은 “조희연 교육감은 지금이라도 조례를 철회하도록 시의회에 요구하고 법이 정한대로 교육규칙을 마련해 일선 학교의 어려움을 덜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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