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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 이소연, 여름 뮤지컬 무대를 장악하다

중앙일보

입력

국립창극단 소속 소리꾼 이소연. 그는 올 여름 뮤지컬 두 편에 잇따라 출연한다. 판소리와 뮤지컬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21세기형 예인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국립창극단 소속 소리꾼 이소연. 그는 올 여름 뮤지컬 두 편에 잇따라 출연한다. 판소리와 뮤지컬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21세기형 예인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아리랑’에 이런 대사가 있어요. ‘지는 소리꾼이어라∼’.”
 애초부터 답을 기대한 질문은 아니었다. “소리꾼이냐, 배우냐”고 물은 건 일종의 순발력 테스트였다. 잠깐 머뭇거리던 그는 활짝 웃으며 뮤지컬 ‘아리랑’의 대사를 기억해냈다.
 이소연(33). 국립창극단 소속 소리꾼이다. 국립창극단은 소리꾼이라면 다들 선망하는 예술단체, 아니 직장이다. 물론 이소연의 프로필도 여느 창극단원 못지않다. 송순섭ㆍ안숙선ㆍ정회석 선생을 사사했고, 중요무형문화재 ‘적벽가’ 이수자다.
 또 다른 이소연도 있다. 오늘 25일 개막하는 뮤지컬 ‘아리랑’에서 옥비 역을 맡은 뮤지컬 배우다. 다음 달 30일 시작하는 뮤지컬 ‘서편제’에서는 주인공 송화 역까지 거머쥐었다. 여름 극장가를 달굴 대형 창작 뮤지컬 두 작품에 잇따라 출연한다. 여느 인기 배우 못지않은 스케줄이다.
 “두 작품 모두 예인 역할이에요. 그래도 아주 다르죠. ‘아리랑’에서는 혼자만 소리를 하니까 다른 배우들과 호흡이 중요해요. 제 목소리를 덜어내고 섞여야 해요. ‘서편제’는 ‘징허니’ 보여줘야지요. 송화가 이끌어가니까요.”
 이소연은 열한 살 때 처음 소리를 배웠다. 전남 진도 출신의 아버지가 시켜서 억지로 배웠다. 중고등학생 때는 소리꾼 이소연이 싫었다. 친구들한테 ‘촌스럽다’고 놀림 받을까 봐 일부러 SES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그래도 소리를 놓지는 않았다. 전남대 국악과에 입학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을 졸업했고 2013년 국립창극단원이 됐다. 그는 “꾸역꾸역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창극 '서편제'에서 공연 중인 이소연. 소리꾼의 한 맺힌 삶을 표현했다. [사진 국립극장]

창극 '서편제'에서 공연 중인 이소연. 소리꾼의 한 맺힌 삶을 표현했다. [사진 국립극장]

 “‘서편제’에서 송화도 아버지가 시켜서 소리를 시작하잖아요. 송화를 보면서 제 어릴 적을 떠올렸어요. 솔직히 저는 소리를 하면서 좌절을 느꼈어요. 제 목소리가 맑은 편이거든요. 그런데 우리 소리는 탁한 소리가 좋은 소리예요. 한을 토해내야 하잖아요. 제 소리에는 그늘이 없어요.”
 본인은 제 소리가 마음에 안 들지 몰라도 듣는 사람은 아니다. 소리가 맑고 높아 가사가 잘 전달된다. 배우에게는 오히려 장점이다. 국립창극단 김성녀 예술감독은 “이소연은 목을 타고났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이소연과 ‘아리랑’에 같이 출연한다.
 “이태 전 ‘아리랑’ 첫 공연 때 소연이가 옥비 역을 혼자 다 했어요. 67회 공연 모두. 작품 마지막에 정말 고음을 질러야 하거든요. 그런데 하루도 목이 안 쉬었어요. 뮤지컬 배우들이 ‘소리를 배우면 저렇게 되느냐?’고 물었다니까요. 소연이는 명창이 될 재목이에요.”

소리꾼 이소연이 배우로서 주목을 받게 된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장면. [사진 국립극장]

소리꾼 이소연이 배우로서 주목을 받게 된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장면. [사진 국립극장]

 이소연에게서 배우의 끼를 발견한 건 고선웅 연출이었다. 그는 2014년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이하 ‘옹녀’)‘에서 막내 단원이었던 이소연에게 옹녀 역을 맡겼다. ‘옹녀’는 올 봄 공연까지 4년 연속 전석 매진 기록을 세운 국립창극단의 대표 레퍼토리다. 이소연이 ‘옹녀’ 오디션의 일화를 소개했다.
 “연출님이 연기가 아니라 소리를 시켰어요. 적벽가 중의 새타령을 했어요. 슬픈 노래예요. 전쟁에서 죽은 군사들이 새가 된다는 내용이에요. 슬프게 불렀더니 대뜸 기쁘게 부르라는 거에요. 그래서 슬픈 노래를 웃으면서 불렀어요. 이번엔 달리면서 소리를 하라는 거예요. 속으로 ‘뭐하자는 거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했어요. 그랬더니 옹녀가 됐어요.”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에서 열연 중인 이소연. 그는 뒤돌아서서도 연기를 했다. 그의 등에는 한이 서려 있기도, 흥이 배어 있기도 했다. [사진 국립극장]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에서 열연 중인 이소연. 그는 뒤돌아서서도 연기를 했다. 그의 등에는 한이 서려 있기도, 흥이 배어 있기도 했다. [사진 국립극장]

 ‘옹녀’의 인연으로 그는 뮤지컬에도 진출했다. ‘아리랑’도 고선웅의 작품이다. 고선웅은 배우 이소연을 이렇게 설명했다.
 “소연이는 빨라요. 지시를 내리면 금세 무슨 얘기인지 알아요. 새로운 걸 배우고 캐릭터를 소화하는 속도가 그냥 배우예요.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아요.”
 뮤지컬 첫 주연 작품인 ‘서편제’에서 이소연은 이자람ㆍ차지연과 송화 역을 나눠 맡는다. 막강한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두 스타와 경쟁하는 것이다. 더욱이 이자람은 지난 4월 공연한 창극 ‘흥보씨’에서 음악감독으로 이소연을 지켜봤다. 이자람은 이소연을 “도화지처럼 깨끗해서 유연한 배우”라고 기억했다.
 그러나 이소연을 뮤지컬 무대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국립창극단원이어서 외부 공연 출연에 제한이 있다. 지난해 생긴 규정이다. ‘아리랑’은 초반 10회만 출연하고 ‘서편제’는 우선 5회까지만 출연이 확정됐다.
 이소연에게 판소리와 뮤지컬의 차이를 물었다. 뻔한 질문이었으나 답변은 뻔하지 않았다.
 “많은 분이 물어오세요. 뭐가 다르냐고. 그런데 저는 차이를 못 느껴요. 연기하고 소리 하고 노래 부르고 춤추고, 표현하는 방식만 다를 뿐 그냥 같은 무대예요. 서양 원작 뮤지컬을 하면 다를까요? 아직은 모르겠어요.”

국립창극단 소리꾼 이소연, 뮤지컬 2편에서 잇따라 비중 있는 역할 # ‘아리랑’에서 서양음악에 우리 소리, ‘서편제’에서 이자람ㆍ차지연과 주연 # 소리꾼 김성녀 “명창 될 재목”, 연출가 고선웅 “본능적으로 연기 알아” #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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