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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때와 달라진 김정은의 북한 … 접근법도 달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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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 발사에 성공한 뒤 군 지휘부와 기뻐하고 있다. [노동신문=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 발사에 성공한 뒤 군 지휘부와 기뻐하고 있다. [노동신문=연합뉴스]

조선중앙통신이 5일 현지 지도에 나선 김정은 위원장의 생생한 육성 발언을 공개했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을 시험발사해 성공했다고 발표한 다음날이다.

김정일 땐 지원 받으려 아쉬운 소리 #지금은 힘 과시해 한·미 상대 의도 #김정은, 트럼프 보란 듯 말폭탄 #장웅‘천진난만’발언도 같은 맥락

통신에 따르면 김정은은 “우리의 전략적 선택을 눈여겨보았을 미국놈들이 매우 불쾌해 하였을 것”이라며 “독립절(미국 독립기념일)에 우리에게서 받은 선물보따리를 썩 마음에 들지 않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심심치 않게 크고 작은 선물보따리들을 자주 보내 주자”며 호탕하게 웃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 육성 발언 공개도 흔치 않은 일이지만 발언 내용이 이례적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독립절’을 구체적으로 거론한 것이나 ‘작은 선물보따리들’ ‘미국놈들이 매우 불쾌했을 것’ 등은 매우 생생하고 생소한 표현”이라며 “미국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를 북한식이 아닌 나름 서구식으로 내놓았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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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김정은의 발언은 ICBM 발사 직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에 대한 대답인 듯한 인상을 풍긴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밤 트윗에서 “북한이 방금 또 다른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 사람(김정은을 지칭)은 그의 인생에서 더 좋은 일을 할 게 없나? 한국과 일본이 이런 행태를 더 오래 견뎌야 한다니 믿기지 않는다. 아마 중국이 북한을 더 압박해 난센스 같은 상황을 끝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이 각각 트윗과 통신을 통해 ‘말폭탄’을 주고받은 셈이다.

앞서 김정은은 북한 태권도시범단을 인솔하고 방한한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돌직구’를 날렸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전북 무주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막식에서 평창 겨울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을 제안하면서 “스포츠는 모든 장벽과 단절을 허무는 가장 강력한 평화의 도구로, 저는 스포츠의 힘을 믿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장 위원은 지난 1일 미국의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좋게 말하면 천진난만하고, 나쁘게 말하면 절망적”이라며 “정치·군사적인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 스포츠나 태권도가 어떻게 북남 교류를 주도하느냐”고 반문했다. 문 대통령의 제안을 ‘천진난만한 제안’이라고 무안까지 주면서 거절한 것이다.

남북관계 전문가들은 이 같은 북한발 메시지에서 김정일 시대와 다른 김정은 시대의 대미·대남 접근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핵·미사일과 남북대화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달라졌다는 분석이다. 통일부 정책보좌관 출신인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김정일 시대엔 핵·미사일 기술을 개발 완료하지 않은 채 그 자체를 협상카드로 활용한 반면 김정은 시대엔 핵·미사일을 보유한 상태에서 한국과 미국, 특히 미국과 대화에 나서겠다는 차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의 대북 인도적 지원 재개를 북한이 거절한 것처럼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북한의 태도는 확연히 달라졌다. 김천식 통일공감포럼 대표(전 통일부 차관)는 “김정일 시대엔 핵·미사일 개발 과정에서 국제사회의 제재를 피하고 체제 유지를 위해 남한의 지원을 받을 목적으로 때로는 ‘아쉬운 소리’를 했지만 개발 완료를 눈앞에 둔 김정은은 다르다”며 “확실한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미국과 남한을 대하겠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김 대표는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 당시 실무 책임자였다. 김 대표는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의 방식으론 남북관계를 풀어 가기가 힘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차세현 기자 cha.se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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