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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 배우며 '같음' 깨닫는 전북중 이중언어 동아리 '다드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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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몽골 가고 싶어요. 거기 소고기 맛있더라고요. 초원도 넓어요."
지난 4일 오후 전북 전주시 동산동 전북중학교 한 교실. 이 학교 1~3학년 남녀 학생 11명이 지구본에서 저마다 가고 싶은 나라를 가리켰다. 화이트보드에는 한자로 된 문장 아래 한글로 '우리 함께 여행을 떠나요'라고 적혀 있다.

2014년 다꿈준비학교 지정…4년째 운영 #중국·베트남 어머니 둔 학생 11명 대상 #교육부, 중도입국 학생 학교 적응 도와 #2개 반서 일주일 14시간씩 한국어 수업 #매주 화요일엔 한국 문화 배우는 시간

학생들은 유창한 중국어와 서툰 한국말을 섞어 가며 서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왕징(17·3학년)양이 몽골을 여행지로 고른 이유에 대해 재치 있게 설명하자 학생들은 박장대소했다.

지난 4일 전북중학교에 재학 중인 중도입학 학생 11명으로 구성된 이중언어 동아리 '다드림'이 활동하는 모습. 전주=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4일 전북중학교에 재학 중인 중도입학 학생 11명으로구성된 이중언어 동아리 '다드림'이 활동하는 모습.전주=프리랜서 장정필

왕징 등은 외국에서 살다 한국에 온 이른바 '중도입국' 학생들이다. 중국인 어머니를 둔 학생이 10명, 베트남 출신이 1명이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다문화가정 자녀와 달리 한국말을 거의 모르고 입국했다.

이날은 이들이 가입한 이중언어 동아리 '다드림'이 활동하는 날이다. 매주 화요일마다 1시간씩 안지숙(34·여) 한국어 강사로부터 한국 문화를 배우며 꿈을 키우는 시간이다.

전북중은 2014년 '다꿈준비학교'로 지정됐다. '다양한 언어로 학생 모두 다 꿈을 이루도록 준비하는 학교'라는 의미다. 교육부가 중도입국·다문화가정·난민가정 자녀의 학교 생활 적응을 돕기 위해 한국어 및 한국 문화 교육을 지원하는 '다문화 예비학교'다. 전북교육청에선 '다꿈준비학교'라 부른다.

지난 4일 전북중학교에 재학 중인 중도입학 학생 11명으로 구성된 이중언어 동아리 '다드림'이 활동하는 모습. 전주=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4일 전북중학교에 재학 중인 중도입학 학생 11명으로구성된 이중언어 동아리 '다드림'이 활동하는 모습.전주=프리랜서 장정필

전북중에서는 안지숙씨 등 한국어 강사 2명이 중도입국 학생들의 한국어 실력에 따라 두 개 반으로 나눠 일주일에 14시간씩 수업을 진행한다. 안 강사는 "중국어에는 용언 활용이 없어 가령 '앉다'와 '앉고', '앉아서'를 같은 단어로 인식하지 못한다"며 "초급반의 경우 가나다도 못 뗀 아이들이 많아 문법보다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단어와 회화 위주로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하얼빈에서 지난해 3월 전북중으로 전학을 온 왕징은 중도입국 학생들 사이에서 '엄마'로 통한다. 나이가 제일 많은 데다 한국어 실력이 뛰어나 중국 학생들의 통역 등 '입과 귀'가 돼주기 때문이다. 왕징은 "중국과 한국 사이에서 무역을 하는 최고경영자(CEO)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전북중에 다니는 중도입국 학생들 사이에서 '엄마'로 통하는 왕징(17·여)양이 한국어로 쓴 글을 들어 보이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전북중에 다니는 중도입국 학생들 사이에서 '엄마'로 통하는 왕징(17·여)양이 한국어로 쓴 글을 들어 보이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손규지(17·중 2)군은 한국말을 잘 알아듣지만 쓰기와 읽기 실력은 초등학교 1, 2학년 수준이다. 한국에 온 지 3년이 넘었지만 지난해 3월에야 이 학교 1학년에 입학해서다. "잠깐만" "몰라요" 등이 그가 자주 쓰는 한국말이다.

그래도 손군의 표정엔 그늘이 없다. 한국 학생들과도 곧잘 어울린다. 손군은 토막 한국어로 "군인이 되고 싶다"며 웃었다.

중도입국 학생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마음의 문을 연 것은 아니다. 전·입학 초기에는 한국 학생들과 말이 안 통해 시비가 잦고 예전에는 패싸움까지 있었다고 한다.

중도입국 학생들을 담당해 온 이인규(35·중국어) 교사는 "처음엔 외국인 학생에 대해 잘 몰라 수업을 빠지거나 잘못을 하면 한국 학생과 똑같이 혼을 냈다"며 "하지만 얘네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작은 일에도 박수 쳐주니 의기소침하던 아이들이 밝아졌다"고 말했다.

전북중학교에 재학 중인 중도입학 학생들로 구성된 이중언어 동아리 '다드림'. 전주=프리랜서 장정필

전북중학교에 재학 중인 중도입학 학생들로 구성된 이중언어 동아리 '다드림'. 전주=프리랜서 장정필

한국 학생들도 반마다 1~2명씩 있는 중도입국 학생들을 더 이상 '이방인'으로 대하지 않는 분위기다. 요즘은 "'사랑해'가 중국어로 뭐냐"고 묻는 등 서로 다른 문화를 알아가고 익숙해졌다는 게 학교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중도입국 학생 대부분이 부모가 재혼했거나 형편이 넉넉지 않은 것은 변수다. 가정마다 말 못할 사연과 아픔이 있다는 것이다. 한상재(57) 전북중 교감은 "본인이 왜 한국에 왔고 한국어를 왜 배워야 하는지 모르는 학생들이 많다"며 "한국어 수업뿐 아니라 이들을 전담하는 심리 상담을 병행하려면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편 전북중은 전북 지역 9개 다꿈준비학교 가운데 유일한 중학교다. 나머지 8개는 초등학교다. 고등학교에는 다꿈준비학교가 없다. 이 때문에 다른 시·군에 사는 중도입국 학생들은 전북중에 가고 싶어도 전·입학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교육부는 지난해 기준 전국 124개 학교에서 운영하던 다문화 예비학교를 올해 160개로 늘릴 방침이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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