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슬픔이 있잖아요", '재꽃' 장해금

[매거진M] 살기 위해 거리를 헤매던 소녀는 어느새 단단하게 여물어 어린 소녀를 보듬는다. 그것도 어린 날의 자신과 똑 닮은 아이를.햇살이 따사로운 초여름, 한 시골 마을에서 이루어진 따뜻하고 마음 찡한 연대. 박석영 감독의 ‘꽃’ 3부작의 마지막 영화 ‘재꽃’(7월 6일 개봉)의 이야기다. ‘들꽃’(2015) ‘스틸 플라워’(2016)보다 한결 밝아진 이 영화는 하담(정하담)과 열한 살 소녀 해별(장해금)이 만든 맑은 기운으로 가득하다.

스튜디오에 들어선 배우 정하담(23)과 장해금(11)은 지금 막 영화에서 튀어나온 듯했다. 제일 친한 친구처럼, 아주 가까운 자매처럼 서로를 바라보는눈길엔 애정이 담뿍 묻어 있었다. 둘은 지난해 여름, 하담과 해별이 됐던 특별한 시간을 풀어놨다.

장해금은 밝은 에너지와 인간에 대한기본적인 관심과 배려를 지녔다.해금이 없었다면, 해별은 슬프고 우울한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박석영 감독

 “박명호(박명훈)가 우리 아빠예요.” 조용한 시골 마을에 짐 가방을 들고 난데없이 나타난 열한 살 소녀, 해별. 그는 처음부터 자신의 아빠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는 듯 당당하다. 쌍꺼풀 없는 까만 눈동자에 깃든 고요. 그 단단한 믿음을 할퀴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인터뷰를 위해 마주한 열한 살 소녀 장해별은 좀 달랐다. “엄마가, 내 안에 남자애 열 명이 들어 있대요” 하며 웃는데, 그 큰 눈이 순식간에 반달이 됐다. 사진을 찍는 게 쑥스러워 엄마는 보지 못하게 하고, 분신 같은 킥보드를 어디든 가지고 다니고, 친구들과 한바탕 놀고 나면 무릎에 여기저기 멍이 들고, 반려견 ‘콩’을 언니처럼 여기는 개구쟁이.

그런 그가 ‘재꽃’의 오디션을 볼 때는 ‘해별처럼 짐 가방을 들고 걸어가 보라’는 주문에, 그대로 걷다 멈춰 서서 길가의 꽃을 들여다봤다. “꽃이 너무 예뻐서요.” 박 감독의 마음을 훔친 순간이었다.

“다른 데서 연기할 때는 ‘이렇게 저렇게 연기해라’란 말을 많이 들었는데, 박 감독님은 ‘해별이 돼라’고 했어요. 슬픈 감정을 연기해야 하는 장면에서도 충분히 기다려 줬고요.” 그 새로운 연기의 경험이 그에게 얼마나 값진 경험이었는지, 이 말을 통해 가늠할 수 있다.

“두 번 보니까, ‘재꽃’은 모두의 슬픔에 대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등장인물 모두가 슬픔을 지니고 있잖아요.”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두 소녀의 행복을 빌게 되듯, ‘재꽃’은 장해금이란 배우, 그 미지의 길을 기다리게 하는 아름다운 시작이다.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사진=정경애(STUDIO 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