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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 속 위안부 나오는 70년 전 동영상 찾았다...유네스코 등재 추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앳된 얼굴의 여성 7명이 벽에 나란히 기대 서 있다. 이 여성들의 표정엔 초조함과 두려움이 역력하다. 고개를 아래로 떨어트린 채 시선을 피하는 여성도 있다. 한 여성만이 한 남성 군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뿐이다.

서울시·서울대, 1944년 위안부 영상 발굴 #송산 위안소의 위안부 7명의 모습 담겨 #2000년 공개된 사진과 등장인물 일치 #미국에서 필름 수백통 뒤져 찾아내

18초 남짓한 이 영상 속 7명의 여성은 중국 송산에 있던 일본군 위안소의 한국인 위안부들이다. 서울시와 서울대 인권센터는 ‘한국인 위안부’의 존재를 입증할 영상 자료를 발굴했다며 5일 언론에 공개했다. 한국인 위안부에 대한 증언·문서·사진 등이 공개된 적은 있지만 실제 촬영된 영상이 세상에 나온 것은 처음이다.

엄규숙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은 “서울시와 서울대 연구팀이 2년 여 간의 끈질긴 발굴 조사 끝에 70년 넘게 묻혀있던 영상을 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찾아냈다”고 말했다.

엄 실장은 “관리청이 소장한 필름 수백 통을 일일이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시는 지난해부터 시민단체들과 함께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다. 엄 실장은 “지난해 5월 유네스코에 기록물을 신청해 올 9월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는데, 이번 발굴이 등재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영상은 아시아·태평양전쟁이 일본군의 패전으로 치닫던 1944년 9월 8일 미·중 연합군이 촬영했다. 당시 미·중 연합군은 일본군이 점령했던 중국 송산을 44년 9월 7일 점령한 뒤 위안부 여성들을 포로로 잡았다. 이 영상은 9월 8일 즈음 연합군 제8군 사령부가 임시로 사용한 송산의 한 민가 건물에서 촬영됐다.

2000년 사실로 입증된 위안부 여성들의 사진. 중국 송산 위안소에서 촬영됐다. 

2000년 사실로 입증된 위안부 여성들의 사진. 중국 송산 위안소에서 촬영됐다.

연구팀은 이 영상 속 등장인물을 한국인 위안부로 입증할 수 있는 근거로 2000년 사실로 증명된 사진을 제시한다. 이 사진 속 등장인물들과 얼굴·옷차림이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 사진은 연합군이 송산을 점령한 직후인 44년 9월 7일에 촬영됐다.

위안부 피해자인 고 박영심 할머니는 2000년 사진 속 만삭의 여성이 자신이라고 밝히며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박 할머니는 동영상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당시 만삭이었던 박 할머니가 사산해 중국군의 치료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강성현 서울대 인권센터 자료조사팀장(성공회대 교수)은 “사진과 영상의 정황이 딱 맞아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 사진은 중학교 역사교과서,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도 수록돼 있다.

사진 속 왼쪽에서 두 번째 여성과 영상 오른쪽에서 여섯 번째 여성이 일치한다. 

사진 속 왼쪽에서 두 번째 여성과 영상 오른쪽에서 여섯 번째 여성이 일치한다.

사진 속 오른쪽에서 두 번째 여성과 영상 속 오른쪽에서 네 번째 여성이 일치한다. 

사진 속 오른쪽에서 두 번째 여성과 영상 속 오른쪽에서 네 번째 여성이 일치한다.

연구팀은 영상 속에 등장한 여성들이 당시 연합군이 작성한 ‘쿤밍 포로 심문 보고서’에도 등장한다고 설명했다. 송산에서 포로로 잡힌 위안부들은 이후 중국군이 쿤밍 포로수용소로 데려갔다. 같은 해 10월 말쯤으로 추정된다.

이 보고서에는 ‘조선인 25명(여성 23명, 남성 2명)이 구속됐는데, 이 중 10명은 송산 위안소에서 포로로 잡혀 온 위안부들이다. 나머지 여성 13명은 등충 위안소에 있던 위안부들이다’고 기재돼 있다. 보고서에 포함된 명부에는 이들의 한국 이름과 당시 나이·고향 등이 기술돼 있다.

이 영상은 미군 164통신대 사진대 소속 에드워드 페이 병장이 촬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시와 서울대 연구팀은 페이 병장이 일본군 위안소로 활용했던 건물을 촬영한 영상(53초)도 공개했다. 이 건물은 중국 용릉에 있던 곳으로 연합군이 용릉을 점령한 직후인 44년 11월 4일 촬영됐다.

이번 발굴 조사는 서울시의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관리사업’의 일환이다. 엄 실장은 “2015년 10월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위안부 연구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원이 끊겼는데, 시는 예산을 책정해 국내외에서 기록물을 발굴해 왔다”고 설명했다. 시와 서울대 연구팀은 지난해 말 위안부 피해자 10인의 증언 등이 담긴 사례집을 발표하기도 했다.

엄 실장은 “생존한 위안부 피해자가 38명으로 줄어든 상황에서 조사·발굴 매우 중요해졌다. 위안부 사료를 수집하기 위해 미국·태국 등지에서 조사 발굴도 활발히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임선영·홍지유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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