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 조작 사건에 등장한 ‘바이버 대화’...'사이버 망명' 실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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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버로 다시 주목받는 '사이버 망명' 

문준용씨의 특혜 입사 의혹 제보 조작 사건 진상조사단은 3일 이준서 전 최고위원이 인터넷 메신저 ‘바이버(Viber)’로 박지원 전 대표 측에 메시지를 보냈다고 3일 밝혔다. 진상조사단장인 김관영 의원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에서 “이 전 최고위원이 (의혹 발표 전인) 5월 1일 이유미의 카톡 제보를 박지원 전 대표에게 바이버 문자로 보냈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진상조사단에 따르면 이 메시지는 박 전 대표가 아닌 김모 비서관이 확인했으며 박 전 대표는 이 내용을 전달받지 못했다고 한다.

바이버·텔레그램, 서버 외국에 있어 압수 불가 #감청도 어려워 정보·보안 업무 종사자 즐겨 써 #2014·2016년에도 대규모 '사이버 망명' 전례

박 전 대표와 이 전 최고위원이 사용한 ‘바이버’는 전 세계 2억 명 이상이 가입한 모바일 메신저 앱이다. 이스라엘에서 개발돼 2010년 12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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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에서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다. 일본의 인터넷기업 라쿠텐(楽天)은 바이버가 무료 통화와 비밀 채팅 등 강력한 기능을 갖춘데다 사용자 수도 많아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지난 2014년 9억 달러(약 1조원)에 사들였다.

한국에서 바이버는 카카오톡과 네이버 라인 등에 밀려 인기가 높은 편은 아니다. 보안에 민감한 사람들이 주로 이용한다. 보안을 이유로 메신저 서비스를 바꾼다는 의미로 쓰이는 ‘사이버 망명(Cyber Asylum)’의 거점 중 하나다. 비밀 채팅 등의 기능을 제공하고 해외 기업이라는 점에서 '망명' 활동을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는 것이다. 국내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이나 대화 내용 열람 가능성 등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도 지난해 4월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바이버로 망명했습니다.경제를 살린다면서 토종 카카오를 도청 운운하니 망명을 하자는 요구를 받아들였습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2014·2016년 망명 사태 땐 '텔레그램'이 주목

국정 농단 사건 당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텔레그램에 가입했다는 알림 메시지의 캡처 화면이 인터넷에 확산되기도 했다. [중앙포토]

국정 농단 사건 당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텔레그램에 가입했다는 알림 메시지의 캡처 화면이 인터넷에 확산되기도 했다. [중앙포토]

러시아에서 개발된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도 바이버처럼 ‘사이버 망명객’들이 선호하는 앱이다. 특히 정부 기관에서 보안이나 정보 업무를 맡은 사람들 사이에선 ‘텔레그렘’으로 갈아타는 게 일종의 상식으로 여겨질 정도다.

정보 업무를 맡고 있는 경찰관 A씨는 “카카오톡은 아무래도 불안해서 3년째 텔레그램을 쓰고 있다. 상대방이 메신저 대화를 캡처해도 나에게 알림이 오고, 자동으로 대화 내용을 삭제하는 기능도 있어서 제일 마음이 편하다. 수사기관이 서버 압수수색을 하기 어려운 점도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사이버 망명이 국내에서 주목 받은 건 지난 2014년 10월이다. 당시 검찰과 경찰 등이 ‘수사 편의를 위해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본다’고 논란이 일면서 이용자들이 떼지어 텔레그램으로 옮겨갔다. 텔레그램 이용자 수가 일주일 만에 138만 명에서 262만 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 정도로 사회적 파장이 컸다. 카카오는 당시 ‘사이버 검열’ 논란과 관련해 공식 사과문을 내고 카카오톡의 ‘프라이버시 모드’ 도입 계획까지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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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테러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에도 ‘2차 사이버 망명’ 소동이 벌어졌다. 카카오톡 등 국산 메신저의 서버가 국내에 있어 대화 내용이 정부의 감청(통신제한조치) 대상이 되기 쉽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지난해 10월에는 최순실 국정농단 논란이 한창인 가운데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텔레그램에 가입한 것으로 보인다는 텔레그램 캡처 화면이 인터넷에 확산되기도 했다.

한영익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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