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여사가 '패션 외교'를 펼치고 있다. 김 여사는 29일(현지시각) 하얀 한복 저고리에 쪽빛 치마, 비취색 장옷을 입고 백악관 만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한복은 김 여사가 1981년 문 대통령과 결혼할 당시 친정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옷감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김 여사의 모친은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서 수십 년간 포목점을 운영했다. 이번 김 여사의 한복은 쪽물로 염색하고 홍두깨를 사용하는 등 전통 기법으로 한국 고유의 색을 살렸다고 한다. 김 여사는 백악관 만찬에 전통 칠공예 기법인 나전(螺鈿)으로 만든 손가방도 함께 들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정숙 여사의 전체 의상 콘셉트는 ‘전통, 패션을 만나다(tradition meets fashion)’”라고 전했다. 김 여사의 중·고교 동창인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은 30일 오전 페이스북에 "그냥 한복이 아니라 1500년 전부터 지금까지 전승된 세계 최고의 여름 천, 한산모시로 지은 한복"이라며 "(김 여사가) 평생 한복을 입어왔기 때문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이 잘 어울린다”고 전했다.
김 여사의 한복 외교가 화제가 되면서 과거 퍼스트레이디의 한복도 새삼 주목받고 있다. 우리의 전통 의상을 영부인이 어떻게 소화하는지를 두고 호사가들은 입방아에 오르곤 했지만 대체로 퍼스트레이디들은 검소하고 절제된 의상을 고수해왔다. 보수적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또한 영부인의 한복엔 시대상도 담겨 있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 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오스트리아 출신이었지만 한복 사랑이 유난했다. 특히 개량 한복을 즐겼다. 옷고름 대신 브로치를 달거나 짧은 통치마를 즐겨 입던 1950년대 유행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보라색과 와인색 계열을 아주 좋아했고, 고인이 돼 입관 때도 한복 차림이었다고 한다. 목숨 수(壽) 자가 수놓여진 한복이었는데, 생전에 여사가 가장 즐겨 입었다고 한다.
육영수 여사는 '영부인 의상 교과서'였다. 우아하고 단정한 한복 스타일을 선보이면서도, 목선과 얼굴선이 자연스레 드러나는 자연미를 추구했다. 육 여사는 양장을 입을 때도 시폰 블라우스와 플레어스커트·원피스 등 여성스러운 아이템으로 따뜻한 어머니상을 부각했다는 평가다. 유명 디자이너의 의상보다 직접 옷감을 가져다 개인적으로 주문해 입는 쪽이었다고 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 여사는 화려한 패션을 선호했다. 한복에 금박·은박 수를 놓기도 했으며 치마도 풍성한 스타일을 즐겨 입었다. 또 공식석상에서 궁중의상인 화려한 당의(여성들이 저고리 위에 덧입는 한복)를 입고 등장하는가 하면, 헤어 스타일도 짧은 웨이브 펌으로 톡톡 튀는 감각을 보여주곤 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는 큰 키 덕인지 전문가들로부터 “한복 맵시가 가장 좋았던 퍼스트레이디”로 평가받곤 했다. 당시‘보통 사람’ 이미지에 맞춰 주로 흰색·옥색·미색 등 수수한 한복을 입었다고 한다. 헤어스타일도 얌전한 단발 웨이브를 고수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부인 손명순 여사도 재임 시절 유난히 양장보다는 한복을 많이 입었다. 한복을 입을 때는 밝은 컬러를 입었고, 화려한 장식도 즐겨 사용했다. 집권 후반부에는 한복 대신 차분한 톤의 수수한 정장을 자주 입었는데, 주로 차이나칼라 스타일의 짧은 재킷과 발목까지 오는 긴 플레어스커트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는 진취적인 성향의 신여성 이미지가 강했다. 의상도 여성스럽고 우아한 룩보다는 실용적인 스타일을 표방한다는 평가였다. 디자이너의 맞춤 의상보다는 일반인이 주로 입는 기성복을 입었다고 한다. 한복보다는 양장을 즐겨 입었고, 한복을 입을 때도 전통 한복보다는 개량 한복을 선호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장을 입을 때는 긴 치마와 하이 네크라인 재킷 정장을 자주 입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는 이전 퍼스트레이디들이 잘 이용하지 않던 빨강·파랑·보라·분홍 등의 원색 한복이나 정장을 공식석상에서 자주 입었다. 또 한복과 양장이 두루 어울려 특별히 한 가지 스타일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경쾌하고 화사한 스타일을 과감히 연출했다는 점도 권 여사의 특징이다.
한식 세계화에 나섰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도 ‘스타일 외교’에 적극적이었다. 지금 김정숙 여사와 미국 트럼프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의 의상을 비교하는 게 세간의 관심을 끄는 것처럼, 당시엔 김윤옥 여사와 미셀 오바마의 상반된 스타일이 화제였다. 특히 2012년 서울에서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렸을 때는 특별만찬에 크리스털이 달린 흰색 저고리가 눈길을 끌었다. 한복 디자이너 김영석씨의 작품이었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