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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담보대출, 한·중·대만 7000억 소송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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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국내 사모투자 전문회사인 보고펀드와 유안타증권(옛 동양증권)이 육류담보대출 사기 사건의 후폭풍에 휩싸였다. 두 곳은 최근 중국 안방(安邦)그룹으로부터 7000억원에 육박하는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 동양생명 지분 매각 과정에서 육류담보대출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안방그룹에 동양생명 매각 할 때 #‘미트론’ 위험성 제대로 통보 안 해 #지분 넘겼던 유안타증권·보고펀드 #안방 측에 손해배상 청구소송 당해

유안타증권은 27일 “안방그룹 지주사가 유안타증권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고 공시했다. 손해배상청구 금액은 6890억원에 이른다. 당시 동양생명 지분을 같이 넘겨준 보고펀드와 이민주 에이티넘파트너스 회장도 함께 피소됐다.

2015년 2월 중국 안방보험은 보고펀드로부터 동양생명 경영권과 함께 지분 57.6%를 사들이기로 계약을 했다. 동양생명 지분 2.5%, 3%를 각각 보유하고 있던 이민주 에이티넘파트너스 회장과 유안타증권도 동반 매도권을 행사했다. 매매 대금만 1조1319억원에 이르는 대형 인수·합병(M&A)이었다.

그해 6월 금융위원회가 안방보험의 동양생명 대주주 지위를 최종 승인했다. 국내 최초 중국계 보험사의 탄생이었다. 지난해 안방보험은 알리안츠생명까지 인수하며 국내 업계 5위 보험사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안방보험이 동양생명을 인수한 지 1년6개월 만에 육류담보대출 사태가 터졌다. 지난해 12월 금융감독원이 육류담보대출 부실 사건과 관련해 동양생명을 현장 조사했다. 동양생명을 비롯해 저축은행·캐피탈 등 제2금융권 업체 20여 개가 5000억~6000억원 규모 손실에 노출된 사실이 드러났다. 사고 발생 당시 동양생명은 육류담보대출 규모를 3804억원이라고 공시했다. 이 가운데 74.6%인 2837억원이 연체됐다고도 밝혔다.

동양생명은 육류담보대출 사기로 입은 손실을 대손충당금으로 막았다. 재무제표에 고스란히 손실로 반명됐다. 동양생명은 육류담보대출 사태가 불거지고 석 달만인 지난 3월 안방보험으로부터 5238억원을 유상증자 받아 자본을 확충해야 했다. 동양생명이 현재까지 고기 유통업자들로부터 회수한 금액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동양생명 관계자는 “창고에 남아있는 고기들을 유통기한 순서대로 처분해 자금을 회수 중”이라면서 “중복담보로 확인된 물건들은 처분 후 공동계좌에 돈을 보관해 추후 나눠가질 계획”이라고 전했다. 사고가 발생한 지 반 년 가량이 지났지만 피해 회복 속도가 더뎌 상황 정리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안방보험이 제기한 소송의 핵심은 육류담보대출로 동양생명이 대규모 손실을 보게 될 사실을 보고펀드·유안타증권 등이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는 부분이다. 손해배상청구 이유를 ‘진술 및 보증 위반’으로 특정한 까닭이다. 보고펀드와 유안타증권은 동양생명 매각 당시 육류담보대출 손실 가능성을 알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보고펀드를 운용하는 VIG파트너스 관계자는 “육류담보대출 건은 동양생명 임직원조차도 추후 알게 된 사기 사건으로 당시 대주주로서 사전에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며 “소송 제기의 근거가 없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계약 내용에 따라 법원 소송이 아닌 홍콩국제중재센터(HKIAC)에서 중재 절차를 통해 사실 판단이 내려질 것”이라고 밝혔다. 유안타증권 관계자는 “소송 대상 가운데 유일한 상장기업이라 공시를 한 것”이라며 “유안타증권의 매도 지분은 3%에 불과하며 사실상 안방보험과 보고펀드와의 소송전”이라고 밝혔다.

이번 공방은 한국과 중국은 물론 대만까지 얽힌 대형 국제 소송전으로 비화할 조짐이다. 소송 타깃으로 지목된 유안타증권은 대만계 증권사다. 동양그룹 계열사였던 동양증권이 2014년 대만 증권업계 1위 유안타금융그룹에 인수되면서 이름을 바꿨다.

7000억원 규모의 국제 소송전이 쉽게 풀리지 않을 것으로 업계에서 전망하는 이유는 또 있다. 우샤오후이(吳小暉) 전 안방보험 회장이 정치권과 연루된 비리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지난 14일 중국 안방보험은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우 전 회장의 사임을 알리기도 했다. 그의 손으로 이뤄진 M&A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중국 현지에서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육류담보대출

영어로는 미트론(meat loan). 말 그대로 냉동창고에 보관된 고기를 담보로 잡는 대출이다. 냉동창고 업자가 발행한 담보확인증(이체증)을 받고 금융사가 대출을 해주는데 연 6~8%에 달하는 고금리를 적용한다. 부동산·동산(기계 등) 담보대출처럼 등기부등본을 통해 담보물의 안전성을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다. 동양생명 사례처럼 사고가 발생해도 선순위 채권 자격을 따질 수가 없다. 제도권 밖 대출이다보니 전문 브로커 회사가 거래를 중개할 뿐 대출 과정 전반에 체계적 시스템이 없다.

조현숙·심새롬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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