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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1신....중국과의 일체화 가속에 반중감정은 역대 최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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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도심 빌딩에 주권 이양 20주년을 기념하는 LED 문구가 걸렸다. 예영준 기자

홍콩 도심 빌딩에 주권 이양 20주년을 기념하는 LED 문구가 걸렸다. 예영준 기자

 홍콩 중심부인 코즈웨이베이의 낡고 비좁은 건물 2층에 한 때 국제적으로 유명세를 탄 서점이 있다. 이 곳의 퉁뤄완(銅鑼灣)서점은 중국 공산당 내부 비사와 지도자들의 권력 암투 등이 담긴 서적을 출판·판매해 왔다. 26일 이 곳을 찾았더니 자물쇠가 채워진 채 문이 닫혀 있었다. 누군가가 입구에 "람(林)선생 빨리 돌아오세요, 당신의 책을 사랑합니다. 당신과 다시 담소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란 쪽지를 붙여놨다. 간체(簡體)한자로 쓴 걸로 볼 때 홍콩인이 아닌 중국 본토인이 써붙여 놓은 게 틀림없었다.
2015년 10월 람윙키(林榮基)를 비롯한 서점 주주·경영자 등 5명이 차례로 실종됐다. 이들은 모두 중국 본토의 공안당국에 연행돼 조사를 받았다. 반중(反中) 내용의 서적을 펴내 중국 대륙에까지 유통시켰다는 이유에서였다. 중국 당국이 홍콩의 출판업자에까지 사법의 손길을 뻗친 이 사건을 두고 해외 언론은 중국이 ‘일국양제(一國兩制)’ 원칙을 깨뜨렸다고 비판했다. 중국은 1997년 홍콩 반환에 앞서 외교, 국방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홍콩의 기존 자본주의 시스템과 법·제도를 50년간 유지한다고 약속했다. 퉁뤄완 사건은 중국의 홍콩 장악과 통제 강화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중국 공산당에 대한 부정적인 서적을 발간해 '반체제 서점'으로 낙인 찍힌 홍콩 퉁뤄완 서점의 문이 홍콩 당국에 의해 폐쇄돼 있다. 예영준 기자 

중국 공산당에 대한 부정적인 서적을 발간해 '반체제 서점'으로 낙인 찍힌 홍콩 퉁뤄완 서점의 문이 홍콩 당국에 의해 폐쇄돼 있다. 예영준 기자

최근에는 홍콩 최대의 방송사인 TVB의 소유구조가 도마위에 올랐다. 최대 주주인 영라이언의 지분 79%를 중국 전직 관료인 리루이강(黎瑞剛)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홍콩 언론들은 “리의 배후를 밝히지 않는 이상 누가 실질 소유주인지 알 수 없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중국의 보이지 않는 손이 알게 모르게 홍콩 민간언론의 영역에까지 침투해 왔다는 의미다.

7월 1일로 홍콩의 주권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간 지 20주년을 맞는다. 그 사이 홍콩의 역내 총생산(GDP)은 82% 늘어났고 국제금융과 해상물류 허브로서의 위상도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홍콩 정부 1인자인 행정장관 당선자인 캐리람(林鄭月娥)은 “지난 20년간 홍콩의 경제성장은 쉽게 이뤄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며 중국 대륙과 홍콩의 긴밀한 협력의 성과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홍콩인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지난달 25일 발표된 홍콩대학의 여론 조사 결과가 이를 설명해준다. 16개 국가ㆍ지역을 예시하며 홍콩인들이 느끼는 호감도를 조사한 결과 대만, 싱가포르, 캐나다, 일본의 순서로 나타났다. 한국은 호감도 45%로 독일과 공동 7위였다. 반면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26%로 꼴찌였고 중국 정부에 비호감은 31%로 가장 높았다.
근본적 원인은 주권 이양 이후 가속화되고 있는 양극화 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과 연계해 사업을 하는 기업인 등 부유층만 혜택을 누리고 차이나머니 유입의 부작용으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등 서민들의 삶은 더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소득분배의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11일 통계청 발표에서 0.539를 기록, 1945년 이래 최대치가 됐다.

젊은 층의 좌절감은 더 심하다. 30대 회사원인 재클린 창(여)은 “홍콩 대졸자가 은행ㆍ부동산ㆍ보험 회사 등 고연봉 직장을 잡기는 하늘의 별따기"라며 "중국 기업은 물론 홍콩 기업마저 중국과의 네트워크나 표준중국어 능력을 감안해 중국 본토 출신을 선호해 뽑기 때문에 홍콩 젊은이들은 저임금 직종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실감이 2014년 100만명의 홍콩 대학생·고교생들이 거리로 나와 민주화를 요구한 ' 우산혁명'운동의 근본 원인이었고 홍콩 독립파탄생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홍콩인의 반중 감정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홍콩의 일체화는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대표적인 게 대만구(大灣區ㆍBig Bay Area)구상이다. 홍콩만을 감싸고 있는 세 지역, 즉 홍콩ㆍ광둥ㆍ마카오의 연계 개발을 강화해 단일 경제체로 묶는다는 구상이다. 이대로 가면 홍콩의 독자성이 사라지고 중국의 수많은 대도시 중 하나로 위상이 추락하고 말 것이라는 게 홍콩인들의 우려다.

이런 예상은 중국인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평가가 반대일 뿐이다. 경제학 전공의 한 중국 경제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홍콩은 이제 더 이상 과거의 홍콩이 아니다. 홍콩이 변해서가 아니라 중국이 그만큼 빨리 홍콩을 추월했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상하이도 있고 선전(深 土변에川)도 있다. 이런 사실을 빨리 홍콩인들이 받아들여야 한다. "

홍콩=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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