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나흘 앞으로 다가온 첫 만남…“문 대통령, 트럼프 냉철하게 상대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문재인 대통령은 25일 청와대에서 한·미 정상회담 준비에 올인했다. 공개 일정을 잡지 않은 채 방미 관련 보고를 받거나 메시지·연설문을 작성하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29~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리는 한ㆍ미 정상회담을 위해 28일 출국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중앙포토]

문 대통령으로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등을 놓고 양국간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강한 캐릭터’의 상대와 일합을 겨뤄야 한다. 지난 1월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외교를 이미 수십 번 치러 외교경험에서도 앞선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을 했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 등 핵심 우방국 정상도 만났다. 반면 문 대통령은 이번이 정상외교 데뷔전이다.

경험에서 앞선, 예측불허의 트럼프 대통령에게 문 대통령이 첫 인상을 어떻게 남기느냐에 따라 극단의 두 가지 호칭을 들을 가능성이 모두 열려 있다는 평가다.

지난 2001년 3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 기자회견 때는 부시 전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을 “디스맨(this man)”이라고 칭한 일이 벌어졌다. ‘이 양반’ 또는 ‘이 인사’ 정도로 해석되는 표현이었다.

2003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시 전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 때도 이동 중 기자들과 만난 부시 전 대통령이 '이지 맨(easy man)'이란 표현을 썼다. 당시 통역은 '이야기하기 쉬운 상대’라고 전했지만, 국내에선 '만만한 상대'라는 말 아니냐는 비판여론이 있었다.

반면 기업인 출신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4월 부시 전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 때 미 대통령의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직접 카트를 운전했다. 이후 회담 때 부시 전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에게 ‘프렌드(friend)’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이번 정상회담 일정에는 백악관 환영만찬이 포함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백악관에서 환영만찬을 하는 외국 정상은 문 대통령이 처음이다. 이 자리에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발전한 한국 경제를 설명하며 미국에 ‘깜짝 선물’을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경제사절단을 통해) 경제적으로 줄 수 있는 게 있다면 먼저 준 뒤 민감한 의제를 논의하는 게 훨씬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 시절부터 8조원의 투자 선물을 미국에 주겠다고 했던 아베 총리는 환대를 받았다. 악수 시간만 19초에 달했다.

지난 21일 문 대통령과 만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스승’ 리처드 하스 미국 외교협회(CFR) 회장은 문 대통령이 회담의 ‘팁’을 구하자 “개인사를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인권 변호사 출신의 원칙론자로 꼽히는 문 대통령과 부동산 재벌 출신의 억만장자인 트럼프 대통령 사이엔 교집합을 찾기 쉽지 않다.

다만 조부가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민온 이민자 3세대라는 점이 문 대통령과 접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하스 회장의 조언 이후 문 대통령은 ‘흥남에서 피란 온 피란민의 아들’(지난 23일 6ㆍ25 참전 유공자 위로연)임을 부각하고 있다.하스 회장은 당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파병, 월남전 참전 등 미군과 함께 세계 도처에서 싸운 혈맹의 역사를 설명하면 굉장히 대화가 잘 풀릴 것”이라고 했다.

‘퍼스트 레이디(first ladyㆍ영부인)’ 코드도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번 순방에는 4년 만에 대통령 부인이 동행한다. 미국 지도층을 관통하는 코드는 ‘가족주의’다. 백악관 만찬 때 김정숙 여사가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와 딸 이방카를 공략하는 것도 이번 정상외교의 변수로 꼽힌다.

청와대가 긴장하는 건 돌출 상황이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선동가형인 트럼프 대통령이 강력하게 밀어붙여 정신을 못차리게 할 수도 있다”며 “신경전이나 기싸움을 함께 벌이는 전략은 옳지 않고, 냉철하게 사전 시나리오에 따라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