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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 넘어선 마녀사냥식 폭력, 법으로 막아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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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7호 03면

특별 대담 문자폭탄 무엇이 문제인가

윤평중 교수(오른쪽)는 “정의와 진리를 독점한다는 자기 확신으로 충만한 집단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택광 교수는 “문자폭탄은 민주주의의 보루인 공론의 장을 닫으려는 시도”라고 했다. 신인섭 기자

윤평중 교수(오른쪽)는 “정의와 진리를 독점한다는 자기 확신으로 충만한 집단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택광 교수는 “문자폭탄은 민주주의의 보루인 공론의 장을 닫으려는 시도”라고 했다. 신인섭 기자

문자폭탄은 정치권뿐 아니라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10일 열린 ‘미 2사단 창설 100주년 기념 슈퍼콘서트’에 참가하려던 가수들은 협박성 문자를 받고 출연을 취소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과도한 표현의 자유로 인한 마녀사냥식 폭력은 법으로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위협하는 행동은 단호하게 거부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 지키자’ 맹목적 ‘빠’현상 #표현의 자유는 약자에게 보장돼야 #정치이념 아닌 정권유지가 목적 #민주주의 기둥 공론장 폐쇄 시도 #이택광 경희대 교수 #정의·진리 독점 자기확신 위험 #여론은 감정적, 독재 출현 가능성 #국정운영 여론조사로 할 수 없어 #피해주고 위협하는 행동 거부돼야 #윤평중 한신대 교수

▶이택광 교수=“탁현민 청와대 행정관 문제는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중요하다. 더불어민주당 여성 국회의원들도 반대하는데 대통령 극렬 지지자들은 ‘이 중차대한 시기에, 쉽게 말하면 해일이 밀려오는 데 조개나 줍고 있느냐’고 문자를 보내고 댓글을 단다. 마치 권력을 잡고 유지하는 것을 민주주의로 생각한다. 또한 문자를 보내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직접민주주의는 제도적으로 불가능하다. 민주주의의는 모두가 통치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럼 피통치자는 누구인가라는 역설이 발생한다. 여론 맹신도 문제다. 역사적으로 절대적 지지를 받는 의제가 반드시 훌륭한 정치적 결과물로 이어진 건 아니다. 중요한 정치적 결과들은 대부분 소수로부터 시작해 큰 보편성을 획득했다. 프랑스혁명은 소수 부르주아의 구체제에 대한 저항이었다. 당시 아주 불온한 사상이었는데 결국 세상을 바꿨다. 정치는 여론조사로 환원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민의가 여론조사 같은 제도를 통해 재연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스탈린이나 북한이 저지른 우를 범하는 것이다. 그게 전체주의다.”

▶윤평중 교수=“개인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대부분 지지하고 성공을 기원한다. 그러나 정의와 진리를 대변한다는 자기확신으로 충만한 집단은 위험하다고 본다. 나는 이를 진리정치라고 명명했다. 역사의 소명을 받았고 대의를 확보했으니, 진리와 자격을 독점했으니 어떤 정책이든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 진보는 민주화에 기여했고 어려움도 겪었기 때문에 이런 경향이 내재화됐다. 그러나 2017년 한국 상황에서 특정한 정치사회적·경제적·국제정치적 노선이 진리를 독점할 수 있다는 생각보다 위험한 게 없다. 자신들의 노선이 바로 대한민국의 일반의지라고 자임하게 되는 상황은 치명적이다. 일반의지는 항상 옳고 그걸 자신이 구현하고 있다면 반대자를 일반의지의 이름으로 침묵하게 강압할 수 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가 추경예산과 관련해 국회에서 연설하면서 울먹거렸다. 무릎을 꿇고 반성해도 부족한 국정 농단 부역세력이 문 대통령의 역사적 소명을 뒷다리 잡는다고 생각하니 억울한 것이다. 그러나 자유한국당만 추경예산에 반대하는 게 아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도 반대한다. 야당 주장도 일리가 있다. 여당이 일반의지를 자임하는 정도까지 치달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전조 증상이다. 여기서 막고, 절제하고, 비판하고 성찰해야 하는 시점이다.”

중요한 사건은 소수 여론에서 출발

▶이=“민주주의는 이념이자 국가적 형식이다. 우리는 국가적 형식에서 민주주의를 거의 달성했다. 비서구권에서 유일하게 국가 형태를 민주주의로 안착시켰다. 이념은 다른 얘기다. 히틀러는 쿠데타가 아니라 민주주의적 제도를 통해 집권했다. 한국에서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민주적 과정을 통해서였다. 제도 이상으로 민주주의 이념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민주주의 이념은 소수의 의견도 다 포괄하는, 다수의 전제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들을 두는 것이다. 그래서 공론의 장은 항상 열려 있어야 하는데 문자폭탄은 그걸 닫으려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제도를 지키기 위해 이념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자꾸 제거하고 배제하고 억압하려는 것이다.”

▶윤=“내가 쓴 칼럼을 보고 고교 친구가 항의 카카오톡을 보냈더라. ‘수구언론과 수구세력이 합작해 촛불혁명에 저항, 단말마적인 발악을 하는 이런 중차대한 형국에 회색분자 같은 글을 쓰는 게 말이 되느냐. 문 대통령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청문회 현장의 야당 의원들에게 문자테러에 가까운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지지도가 80%를 상회하니 대통령에게 ‘당신 하고 싶은 거 다 해라’고 한다. 그러나 다수의 지배는 중대 오류를 만들 수 있다. 경계심을 가져야 될 상황이다.”

▶이=“문자를 보내는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를 주장한다. 표현의 자유의 전제는 불균형성이다. 약자·소수자의 표현의 자유는 무한으로 보장하고 강자의 표현의 자유는 일정 부분 제한한다. 권력을 가진 독재 권위주의 정권을 향해 얘기할 때는 표현의 자유가 허락된다. 그러나 상황이 변했다. 사회는 다원화됐다. 권력은 문재인 정부가 쥐고 있다. 사이버 불링을 하는 본인들은 약자라 생각하니까 우리 맘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아니다. 표현의 자유를 얼마만큼 허락해 줄 것이냐 하는 공론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민주주의는 다수 견제할 장치 두는 것

▶윤=“표현의 자유가 완벽한 건 아니다.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폭력적으로 인격을 훼손하거나 자살에 이르게 하는 표현의 자유가 어떻게 보편타당한 권리로 인정될 수 있나. 서양에서는 표현의 자유에 관해 판례 형태로 많은 공론들이 축적돼 있다.”

▶이=“지나친 표현의 자유가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막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문 대통령이 ‘가야 역사가 소외됐으니 좀 하자’고 얘기하면 지지집단이 일어나 밀고 사이버 불링으로 반대자의 입을 봉해 버린다. 그러면 반대의견이 사라지고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 여론조사까지 수치화해 보여 주면 반대자들은 고립되고 숨어 버리게 된다. 그러나 여론조사는 참고는 할 수 있지만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전폭적으로 신뢰하기는 어렵다. 이런 식으로 비판자의 입을 막고 전체 여론을 주도했을 때는 착오가 생길 수 있다.”

▶윤=“다수의 전제를 중단해야 한다.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다. 그중 민주주의는 과잉이고, 함께 잘살아야 한다는 공화적 요소는 부족하다. 특정 계층이나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은 자유를 행사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방지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지지율이 높은 우리가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피상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러나 공화적인 생각은 그게 아니다. 모두의 자유가 중요하다.”

▶이=“어떤 민주정도 결함이 있다. 직접민주주의의 표상이라는 아테네 민주정을 두고도 플라톤은 ‘실제로는 과두정’이라고 비판했다. 완벽하지 않은 민주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화주의가 필요하다. 공화제는 훌륭한 사상인데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법치가 필요하다. 공화제를 내건 많은 공산주의 국가엔 이게 빠져 있다. 이번 탄핵이 중요했던 이유는 법의 이름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청와대 앞 200m까지 법이 시위를 허락했고, 거기까지 진출했고, 법에 의해 탄핵했다. 진전된 공화주의적 합의를 보여 줬다. 문자폭탄은 어렵게 쟁취한 공화주의를 깨는 행태다.”

▶윤=“문재인 정부가 순항하기 위해서라도 과도한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 마이너스가 되면 됐지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또 하나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다. 진영 논리에 함몰돼 문재인 홍위병 비슷하게 보이는 측면이 있다. 정확히는 민주공화국으로서의 대한민국에 대한 도전이 될 수 있다. 제도 언론이나 지식인 사회에서 성찰적 발언이 나와야 된다. 진영논리는 이중잣대로 어떤 현상에 대해 사실보다 입맛에 맞게 달리 해석해 버린다. 사실보다 우월한 진실, 감성적 진실을 더 중요하게 본다. 이렇게 되면 정치공동체의 한 일원인 시민으로서 반드시 준수해야만 하는 게임의 룰이 파괴되는 거다. 이건 어마어마한 사태다. 독일 정부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테러를 부추기거나 명명백백하게 인격살인적 보도를 한 경우 최고벌금 5000만 유로를 내게 하는 법안을 내놨다. 우리 사회로 치면 네이버나 다음 같은 거대 포털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

문자폭탄, 문재인 정부에 도움 안 돼

▶이=“수백 년간 유럽에서 마녀사냥이 행해졌다. 지금의 인터넷 사이버 불링과 비슷하게 한 사람을 찍어 아무 근거 없이 죽이는 것이다. 문자폭탄·가짜뉴스와 같은 구조다. 수많은 사람을 죽인 마녀사냥이 멈추게 된 계기는 영국의 콜리 사건 판결이다. 마녀사냥을 한 콜리를 검사가 기소한다. 콜리는 ‘마녀니까 죽여도 된다’고 했고 검사는 ‘마녀란 것을 입증하라’고 했다. 결국 마녀라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한 콜리가 사형당했다. 그게 입증주의다. 요즘 입증주의 때문에 법의 한계가 대두되지만 바로 이 때문에 마녀사냥이 근절된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법으로 제재한다는 것에 부정적 인식이 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 과잉으로 생기는 폭력을 막을 수 있는 것은 결국 법뿐이다. 과학이 완전하지 않지만 거기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결국 법적 제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법은 기득권이나 소수 엘리트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치적인 투쟁을 통해 점점 좋아지고 앞으로도 바뀌어야 한다. 법치와 시민윤리의 결합이 필요하다.”

▶윤=“지금 일부 시민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우리들이 행동을 안 하고 표현을 안 해 비극적 사태까지 갔고 9년간 반동의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숙한 시민은 이를 소화해 균형 잡힌 태도를 가져야 한다. 법이 본격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조금 성급하다. 상황이 복잡할수록 고전적인 출발선으로 돌아가 보는 자세도 필요하다. 인간은 신성불가침한 자연권을 갖고 태어났지만 대전제는 남에게 부당한 피해를 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의견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폭력적으로 위협하거나 하는 행동들은 단호하게 거부돼야 한다.”

진행·정리=성호준 기자, 김도연 인턴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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