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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출퇴근 사고 산재보상 해준다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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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다 사고가 났을 경우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지금은 안 된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가능할 전망이다.

산재법 개정안 환노소위 통과 #도보·자전거 등도 폭넓게 인정 #내년 보험료 6500억 추가 부담 #경영계 “전면 시행은 성급” 반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안심사 소위원회는 19일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통근버스가 아닌 도보나 자가용, 대중교통 등으로 출퇴근하다 사고가 나도 산재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법안 통과 과정에서 가장 어렵다는 법안소위에서 여야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에 상임위원회와 본회의 통과는 어렵지 않을 전망이다.

18대 국회 이후 여야 모두 업무상 재해 범위를 통상적인 출퇴근으로 확대하자는 내용엔 공감해왔다. 그러나 출퇴근 경로 이탈이나 중단 때 보호 여부를 놓고 이견이 있어 번번이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출퇴근 경로와 방법이 일정하지 않은 직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출퇴근 재해를 적용하지 않는 것으로 정리됐다. 그동안 공무원·군인·사립학교 교직원은 출퇴근 재해를 폭넓게 인정받았지만 일반 근로자는 달랐다. 산재보험법 제37조가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이나 그에 준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을 포함해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서 출퇴근을 한 경우’로 산재 인정 범위를 제한하고 있어서다. 통근버스와 같은 회사 소유의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만 사고 시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김삼화 국민의당 의원에 따르면 2012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근로복지공단에 접수된 출퇴근 재해 신청은 3458건이었다. 이 중 공단 심사와 재심사, 행정소송 등을 통해 산재승인을 받은 사건은 1646건(47.6%)이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9월 자전거로 퇴근하다 넘어져 다친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 A씨가 “자전거가 회사에서 제공한 교통수단이 아니라는 이유로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며 재판관 6대3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불합치는 당장 법률 효력을 없애면 혼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법 개정 때까지 기존 법률을 적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헌재는 2017년 말까지 산재법 37조의 효력을 유지하도록 했다. 따라서 산재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이찬열 국민의당 의원은 “사업장 규모가 작아 출퇴근용 차량을 제공받지 못하는 근로자가 출퇴근 중 발생한 재해에 대해 보상받지 못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출퇴근 교통사고 피해자라면 자동차 보험과 산재 보험 중 하나를 택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 경우 자동차 보험 회사와 산재 보험을 처리하는 근로복지공단이 구상금을 조정하게 된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출퇴근 재해 인정 범위가 넓어질 경우 내년에 당장 6493억원의 비용이 추가로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산업재해 보상에 필요한 재원은 대부분은 기업이 내는 보험료로 충당한다. 기업의 부담이 커진다는 의미다.

경영계는 우려를 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20일 성명을 내고 “산재보험과 자동차보험 간 구상권 문제 해결을 위한 준비에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다”며 “전면 시행은 성급한 입법조치”라고 주장했다.

김동욱 경총 기획홍보본부장은 “출퇴근 재해에 대한 근로자 보호의 필요성엔 경영계도 공감한다”면서도 “이번 조치는 많은 행정력 낭비와 불필요한 다툼을 야기하고, 산재보험의 재정적 부담을 키울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근로자 중과실에 대한 재해까지 일정한 급여제한 없이 보상하는 것은 과도하다”며 “출퇴근 재해는 대부분 사업장 밖에서 일어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무분별한 산재신청, 부정수급을 방지하기 위한 철저한 재해조사 및 관리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공무원연금법은 음주운전이나 무면허 운전, 기타 중대한 교통수칙 위반 등의 경우에는 보험급여를 제한한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아무런 제한 없이 보상을 하기 때문에 다른 법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원한 한 기업 관계자는 “직원이 출퇴근 중 다쳤다고 하면 묻고, 따질 것도 없이 대부분 보상을 해줘야 하는 구조”라며 “근로자의 도덕적 해이를 막을 방법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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