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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훌쩍 떠나자! 자유·낭만 싣고 방방곡곡 자연 속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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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여행 길잡이 캠핑카 도심을 벗어나 자연에서 즐기는 여행은 그 자체로 힐링이다. 하지만 어디론가 떠나기로 마음먹은 순간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캠핑을 간다고 해도 챙겨야 할 물건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여행길의 시작이 고생길이 되는 이유다. 이런 불편을 한 방에 덜어주는 것이 바로 캠핑카다. 숙식을 위한 장비와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고, 시간·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서다. 캠핑카에서의 하룻밤은 펜션이나 호텔에서는 느낄 수 없는 낭만을 선사한다. 자유여행을 만끽하려는 캠핑족이 늘어나면서 캠핑카는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17일 캐러밴(견인형RV)을 끌고 제부도를 찾은 엄종율(36)씨 부부가 금계국이 만발한 황금 들녘에서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17일 캐러밴(견인형RV)을 끌고 제부도를 찾은 엄종율(36)씨 부부가 금계국이만발한 황금 들녘에서 아이들과 즐거운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 17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의 제부도. 육지와 섬을 잇는 도로에 자동차가 줄지어 섰다. 주말을 맞아 섬으로 들어가려는 나들이 차량 사이로 전인수(40·화성시 병점동)씨의 캐러밴이 보였다. 해 질 무렵 캐러밴이 섬 안의 한 주차장에 들어서자 지인들이 나와 전씨를 반갑게 맞았다. 캐러밴으로 인연을 맺은 동호회 회원들이다. 주차장엔 이미 캐러밴 10여 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회원들은 노을을 보며 바닷가를 산책하거나 가족과 캐러밴에서 TV를 시청하는 등 한가로이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이들의 얼굴엔 하나같이 여유로움이 묻어 있었다. 서둘러 집으로 가야 할 이유도, 힘들여 텐트를 치거나 숙박시설을 알아볼 필요가 없어서다. 저녁식사 준비 걱정도 없다. 캐러밴에 주방시설이 완비돼 있기 때문이다. 캐러밴에는 주방뿐 아니라 화장실·샤워실·침대·탁자·소파까지 일상생활에 필요한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크기만 작을 뿐 냉장고·전자레인지·텔레비전·컴퓨터 등 가전제품과 냉난방 시스템도 완벽했다. 마치 집을 축소해 옮겨놓은 듯했다.

생활 편의시설 구비해 편리 #아늑한 공간서 오붓한 대화 #가족·동호회 휴가 때 제격

7년째 전국 방방곡곡으로 캠핑을 다니고 있는 전씨는 거의 모든 캠핑 방법을 경험한 마니아다. 처음엔 차량에 텐트를 싣고 다녔다. 여행을 떠나는 건 좋았지만 불편함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집에서 차로 짐을 실어 나르고 다시 차에서 캠핑장까지 짐을 옮긴 뒤 텐트까지 치다 보면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고민 끝에 아예 차에 루프톱 텐트(차량 지붕 위에 설치하는 텐트)를 쳤다. 얼마 뒤 별도 공간에 텐트도 치고 짐도 실을 수 있는 캠핑용 트레일러를 장만했다. 이마저도 불편해 아예 모든 시설이 갖춰진 캐러밴으로 바꿨다. 전씨는 “캐러밴이 있으면 숙박 문제도 해결되고, 많은 밥값을 주면서 현지 음식점을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며 “가격이 비싼 편이지만 자주 여행을 다니는 것을 감안하면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숙식·주차 문제 걱정 덜어

캠핑 마니아들이 캠핑카를 선호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편리해진 만큼 캠핑을 통해 얻는 여유와 힐링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노태근(46)·방경희(47)씨 부부가 그렇다. 이들은 이 캐러밴 동호회에서 금실 좋기로 유명하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수시로 근무지를 옮겨야 하는 남편의 직업 특성상 오랜 기간 주말부부 생활을 하면서 사이가 멀어졌다. 하지만 3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캠핑을 시작하면서 소원했던 부부 관계가 회복됐다. 지난해엔 중고 소형 캐러밴을 처분하고 꿈에 그리던 신형 캐러밴을 구입했다. 이들은 여행을 떠날 생각에 매주 금요일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노씨는 “주말이 되면 설렘과 기대감을 안고 가족과 여행 계획을 세우는 일이 가장 행복하다”며 “온 가족이 자연 속에서 대화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 좋다”고 설명했다.

캠핑카형·견인형 차종 다양

차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일명 ‘차박(車泊)’이 새로운 캠핑 트렌드로 떠올랐다. 캠핑카가 있으면 차에서 간단한 요리를 할 수 있고, 잠을 잘 수 있으며, 바리바리 짐을 싸지 않아도 된다. 숲속에서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잠자고, 바닷가에서 일출을 보며 눈을 뜰 수 있다. 산·바다·강변 등 차가 갈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이동이 가능하다는 점도 매력이다. 이 때문에 캠핑카 수요는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캠핑카로 등록한 차량은 2012년 519대에서 지난해 2580대로 5년 사이 5배 가까이 증가했다. 올 들어서도 지난 4월 말까지 1282대가 등록해 지난해 등록 대수의 절반에 육박했다. 해외 유명 캐러밴을 국내에 공급하고 있는 카라반테일 김장수 부장은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캐러밴을 구입하려는 방문객이 평소보다 서너 배 이상 늘었다”며 “인기 차종은 전시용까지 팔렸고, 지금 주문하면 3개월 이상 기다려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 업체는 내년엔 주문 물량을 올해보다 100대 이상 늘려 300여 대를 판매할 계획이다.

캠핑카의 정확한 표현은 여가용 자동차를 의미하는 RV(레저차량·Recreational Vehicle)를 말한다. RV는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캠핑카형과 자체 동력이 없어 차로 끌고 가야 하는 견인형으로 나뉜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캐러밴이 견인형RV에 해당한다. 공간을 확장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트레일러, 텐트와 캐러밴 중간 형태의 폴딩 트레일러, 트럭 짐칸에 숙식 공간을 싣는 트럭캠퍼, 텐트와 짐을 실을 수 있는 카고 트레일러 등 다양하다. 캠핑카형RV는 버스 형태의 클래스A, 밴 차량 안에 숙식시설을 갖춘 클래스B, 승합차에 캠핑시설을 꾸민 클래스C로 나뉜다. 견인형RV는 야외에서도 집처럼 안락하고 편안한 생활이 가능하다. 하지만 차체가 크고 무거워 이동과 주차가 쉽지 않다. 소형견인면허증이 필요하고, 수천만원에 이르는 구입비도 만만찮다.

이에 비해 캠핑카형RV는 차 안에 시설을 갖춰 캐러밴이나 트레일러처럼 끌고 다닐 필요가 없어 편리하지만 실내 공간이 좁다는 단점이 있다. RV는 대부분 영국·폴란드·독일·미국 등 캠핑문화가 발달한 선진국에서 들여온다. 차값을 제외하고 크기와 내부 옵션에 따라 2000만~7000만원이 든다. 국내 자동차업계는 캠핑에 적합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나 승합차를 개조한 캠핑카형RV를 출시하고 있지만 종류가 많지 않고 판매량이 적다. 이 때문에 소비자가 직접 차량을 구입해 내부를 개조하는 경우가 많다. 2014년부터 차량 구조 변경이 가능해지면서 1000만~2000만원대면 실내를 꾸밀 수 있다. 아직까지 1t 트럭은 법적으로 개조가 불가능하다. 정부가 11인승 이상 승합차만 캠핑카로 구조 변경을 허용해서다. 1t 트럭을 캠핑카로 사용하려면 구조 변경 후 ‘이동사무실’로 승인을 받아야 한다.

RV 전문가이자 ‘매거진 더 카라반’ 발행인 권민재 대표는 “정부가 캠핑카 활성화를 위해 나서고 있지만 국내 자동차업계의 비협조, 신차만 개조 가능한 제도적 한계 등으로 전반적인 인프라와 지원은 여전히 미흡하다”며 “이런 문제로 캠핑카 구입과 개조 시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소비자는 캠핑카 선택에 앞서 여행 패턴과 차량 구조 등을 철저히 따져야 구입 후 낭패를 보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캐러밴 몰려면 소형견인차 운전면허 필요

캐러밴 같은 견인형RV를 운전하려면 소형견인차 운전면허가 필요하다. 도로교통공단은 지난해 7월 캠핑·레저 차량에 맞는 중량 750㎏ 이상 3000㎏ 이하의 소형견인면허를 신설했다. 서울 강남, 대전, 부산 남부, 제주, 전남 광양(올해 신설) 등 5개 면허시험장에서 응시할 수 있다. 30t이 넘는 대형 차량으로 시험을 보는 대형견인면허시험과 달리 소형견인면허시험은 1t 화물차량에 피견인차(평판)를 연결한 차량으로 보기 때문에 어렵지 않은 편이다. 올 들어 지난 5월 말까지 2772명이 응시해 68%가 면허를 땄다.

글=강태우 기자 kang.taewoo@joongang.co.kr,
사진=프리랜서 송경빈, 매거진 더 카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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