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 '투명성 높이기' 초강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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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증권선물위원회가 SK글로벌 분식회계 관계자들에 대해 강도 높은 징계를 결정한 것은 이번 사건에 대한 금융당국의 제재 수위가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앞으로 투명회계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의지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회계분식의 유혹에 휘말리기 쉬운 기업들에는 경종을 울리고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금융감독 당국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자는 의도다.

◇분식회계 내용=금융감독원의 조사 결과 SK글로벌의 분식회계 규모는 2001년 현재 총1조9천9백75억원으로 파악됐다. SK글로벌은 외화매입채무를 누락시키고 해외 현지법인 관련 투자유가증권의 가치를 부풀리는 방법을 주로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부도 난 거래처의 채권과 미수금 등에 대한 대손충당금을 실제보다 적게 쌓고, 예금은 실제보다 많은 것처럼 처리하는 방법도 사용했다.

이 같은 회계분식을 잡아내야 할 감사인인 영화회계법인은 거래 확인을 회사에 맡기는 등 무책임한 감사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나은행 등 국내은행 11곳과 외국은행 국내지점 한곳은 감사인에게 금융거래조회서 등을 발급하면서 거래내역을 허위로 기록하는가 하면 회계법인이 아닌 채권회사로 조회서를 보냈다.

◇사상 최고수위 제재=회계분식에 관여한 기업.감사인은 물론이고 채권 조회에 제대로 응하지 않은 금융기관까지 제재를 받게 됐다. 관계자들은 보기 드문 중징계라는 평이다.

실제로 증권거래법 제정 이후 감사담당 회계사가 처벌받은 경우는 많아도 회계법인이 징계(과징금)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감사를 담당했던 영화회계법인은 3억여원의 과징금 외에도 벌점 2백점을 받아 앞으로 10여개 기업의 감사를 할 수 없게 됐다.

증권선물위원회는 회계분식을 직접 저지른 SK글로벌 외에 분식에 도움을 준 SK해운의 대표이사 및 담당 임원들을 모두 검찰에 고발하고, 대표이사 등을 해임 권고하는 강력한 제재를 가했다.

◇반응=회계업계와 금융계에서는 대체로 증선위의 결정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삼일회계법인의 한 회계자는 "검찰의 사법처리와 별도로 내려진 제재라는 점을 감안할 때 증선위가 내릴 수 있는 최대의 징계 수위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참여연대의 한 관계자는 "감사인에 대한 과징금 및 제재 수위가 충분치 못하다"며 "영업정지 등 더욱 강한 조치가 내려졌어야 한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임봉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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