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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소리'에 러시아가 반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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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말여, 이번에 페테르부르크에 왔는디, 이 줄로서 대한민국허고 페테르부르크허고 연결시켜 우정을 과시하자 이 말이여, 얼쑤!"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네프스키 대로 변 젊음의 거리에 한국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울림 전통 연희단은 11일부터 일주일간 매일 오후 이곳에서 사물놀이.줄타기.봉산탈춤.남사당 놀이 등을 선보였다. 흥겨운 사물놀이에 하나둘 모여든 5백여명의 시민들은 특히 인간문화재 김대균(38)씨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놀이에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1703년 표트르 대제가 건설한 러시아 제2의 도시, 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인 에르미타슈 박물관과 러시아 발레의 본산인 마린스키 극장이 들어선 예술의 도시, 거대한 네바강이 흐르는 백야(白夜)의 도시…. 상트 페테르부르크(옛 레닌그라드)에선 도시 창건 3백주년을 맞아 연중 축제 분위기다. 올 초 음악축제를 시작으로 백야 축제, 재즈 페스티벌, 각종 학술대회와 전시회를 마련해 시민과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지난 11일부터 일주일 동안은 한국주간으로 선포돼 다양한 한국 관련 행사가 열렸다. 한울림 전통 연희단의 거리 공연과 함께 창무 예술원의 무용 '심청' 공연, '8월의 크리스마스''접속' '엽기적인 그녀' 등을 상영한 한국 영화 페스티벌, 한복 패션쇼, 한국 수묵화 전시회 등이 시내 곳곳에서 선을 보였다.

특히 15일 마린스키 극장 무대에 오른 창무예술원의 '심청'은 판소리와 춤의 결합이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눈길을 끌었다. 판소리꾼인 서정금과 이자람은 공연 시간 두시간 동안 바통을 이어 완창에 가까운 소리를 선보여 관객의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 이날 공연을 관람한 대학생 알렉 예피모프(22)는 "한국의 전통 공연을 비디오로 본 적이 있는데 오늘 직접 보니 더 좋은 것 같다. 판소리는 특유의 꺾이는 소리가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이번 3백주년 기념 축제는 이곳 출신이기도 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추진했다. 도시 창건 기념일인 5월 27일을 전후로 오페라 등 축하 공연과 세계 각국 정상들의 연쇄 회담이 열려 세계의 시선이 쏠렸다.

연방정부와 페테르부르크주 정부는 이 행사를 위해 지난 4년간 15억달러의 예산을 들여 박물관.궁전.거리 등 도시를 새로 정비하고 각종 행사를 기획했다. 특히 제정 러시아 시대의 호화로움을 상징하는 호박방은 60년 만에 완벽하게 재현돼 다시 문을 열었는데, 이 호박방을 구경하기 위해 관람객들이 한시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일련의 행사 덕에 관광객은 하루 4만여명으로 전년에 비해 두배나 증가했지만, 정작 이곳 시민들은 행사에서 소외되고 있다며 불만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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