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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분의 1' 반란…고개 드는 나노기술 재앙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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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실력있는 미국의 과학자 줄리아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자이모스'사에서 나노로봇을 개발 중이다. 자동으로 어디든지 돌아다닐 수 있고 병정개미들처럼 서로 협력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된 첨단 로봇이다.

그런데 이 작은 로봇들이 자기 복제를 하며 인간을 공격하기 시작하면서 줄리아를 포함한 인류는 절대 절명의 위기를 맞는다.

'쥬라기 공원'의 저자인 베스트셀러 작가 마이클 크라이튼이 지난해 펴낸 '먹이(Prey)'라는 소설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나노기술은 나노미터(nm) 단위의 물질을 다루는 초극미세 기술. 1 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로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정도다.

이를 이용하면 분자를 쌓아서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고, 반도체 칩의 집적도 한계도 극복할 수 있다. 인체 내부를 돌아다니며 질병에 걸린 세포를 치료하는 나노로봇도 만들 수 있는 등 응용분야가 무궁무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나노기술의 역기능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3월 미국 과학자들은 0.1~0.5mg의 탄소나노튜브를 용액 형태로 쥐의 폐 조직에 주입하고 90일 동안 관찰한 결과 높은 독성을 보였다고 밝혔다.

탄소나노튜브는 탄소가 육각형의 긴 빨대 모양으로 연결된 것으로 지름이 나노미터 크기로 작고 단단한 데다 반도체 성질을 갖고 있어 차세대 반도체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실험 결과 나노튜브는 시간이 흐를수록 폐 속에서 서로 뭉쳐지면서 폐 조직을 손상시켰다.

미 로체스터대 의대의 귄터 오베르되스터 교수는 실제로 나노입자를 들이마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실험했다. 오베르되스터 교수는 폴리테트라플루 오로에틸렌(PTFF)이란 물질로 만든 지름 20nm의 나노입자를 쥐에게 15분 동안 호흡하게 한 결과 대부분 4시간 이내에 죽었다고 밝혔다. 반면 1백30nm 크기로 입자를 만들어 흡입시켰을 때에는 쥐가 죽지 않았다.

덩어리일 땐 문제가 없던 물질들이 나노 크기의 입자가 되면 높은 독성을 지닐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나노기술의 위험성 문제를 가장 먼저 제기하고 나선 곳은 캐나다 토론토대학의 생명윤리연구소(JCB)다.

JCB의 피터 싱어 박사는 영국 학술지 '나노테크놀로지'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초소형 카메라 등 초소형 장치의 출현에 따른 사생활 침해 문제 ▶나노 물질의 등장에 따른 신종 환경오염 발생 가능성 등 역기능에 대한 검토가 함께 이뤄지지 않을 경우 나노기술에 대한 장밋빛 환상이 재앙으로 뒤바뀔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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