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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가 만난 사람] 디터 넥텔 CEO “미래차 패러다임은 전기차지만, 우린 관심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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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페라리의 극동·중동 총괄 최고경영자인 디터 넥텔이 페라리 역사상 가장 빨리 달리는 차인 812슈패스트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사진 페라리]

페라리의 극동·중동 총괄 최고경영자인디터 넥텔이페라리 역사상 가장 빨리 달리는 차인 812슈패스트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사진 페라리]

페라리는 성능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스포츠카 브랜드다. 고성능카가 수두룩한 페라리 중에서도 가장 빠른 차가 등장했다. 812슈퍼패스트(superfast)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최고속도 시속 340km까지 질주할 수 있는 페라리 역사상 가장 빨리 달리는 차다. 812슈퍼패스트 출시를 기념해 방한한 디터 넥텔 페라리 극동·중동 총괄 최고경영자(CEO)를 지난 9일 페라리 청담전시장에서 만났다.

전기차는 게임체인저…우린 트렌드에 순응하지 않는다 #“스팅어 제로백(4.9초) 나쁘지 않다…페라리는 가장 느린 게 3초대” #“3년 후 차량 잔존가치 75% 이상 자랑스러워” #한국 모터스포츠 대중화 선도 포부 #

사사(社史)에 남을 차량을 출시한 건 올해가 페라리에게 특별한 해라서다. 엔초 페라리 창업자가 처음으로 페라리125S를 타고 이탈리아 마라넬로 거리를 시범 주행한 지 정확히 70년이 됐다.

9일 본지와 단독 인터뷰에 응한 디터 넥텔 페라리 극동·중동 총괄 최고경영자. [페라리]

9일 본지와 단독 인터뷰에 응한 디터 넥텔 페라리 극동·중동 총괄 최고경영자. [페라리]

70년 동안 자동차 기술과 환경은 크게 달라졌다. 과거엔 양산차 중에서 페라리 성능을 따라올 차가 드물었다. 페라리는 태생부터 포뮬러원(F1) 경주팀(스쿠데리아 페라리·Scuderia Ferrari)에서 출발해서 F1 역사상 가장 많은 우승을 차지한 브랜드다.

하지만 기술 발전은 대량 양산차의 성능을 빠르게 끌어올렸다. 당장 인터뷰 전날(8일) 시승한 기아차 스팅어가 대표적이다. 4460만원부터 시작하는 3.3 가솔린 모델의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에 도달하는 시간)이 4.9초에 불과하다. 스팅어 제원을 보고 디터 넥텔 CEO는 “(제로백이) 나쁘지 않다”고 인정하면서도 “한국 시판 페라리 전 차종의 제로백은 3초대 이하”라고 덧붙였다.

"격차가 줄어드는 지금 상황에 위협을 느끼지는 않느냐"고 묻자 디터는 싱긋 웃더니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페라리 고객은 도로에서 본인의 차와 같은 차종을 마주칠 일이 없는 페라리의 ‘배타성(exclusive)’을 좋아하기 때문에, 대량 양산차와는 경쟁 관계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9일 본지와 단독 인터뷰에 응한 디터 넥텔 페라리 극동·중동 총괄 최고경영자. [페라리]

9일 본지와 단독 인터뷰에 응한 디터 넥텔 페라리 극동·중동 총괄 최고경영자. [페라리]

미래 자동차 시장을 두고 전기차와 수소차, 연료전지차 등 다양한 유형의 차량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 CEO로서 그는 “전기차가 자동차 시장의 판을 뒤흔들 게임체인저(game changer)”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페라리가 순수 전기차를 출시하진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페라리는 자동차 트렌드가 바뀐다고 순응하는 브랜드가 아니라, 우리만의 방식으로 트렌드를 만드는 브랜드”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다만 전기모터를 장착한 하이브리드카는 선보일 가능성이 있다. 그는 “우리가 추구하는 퍼포먼스를 갖춘 차를 개발하다 보면 성능 개선 방안 중 하나로 전기모터 탑재를 고려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전기차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가 테슬라 모델S나 제너럴모터스(GM)의 볼트 등의 인기에도 역시 “전혀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고 언급한 이유다.

페라리의 브랜드 가치는 차량 잔존가치에서 잘 드러난다. 잔존가치는 자동차 계약이 종료됐을 때 남아있는 차량의 가치를 가격으로 환산한 것이다. 독일 잔존가치 전문 조사 업체 베어&페스에 따르면 지난해 가장 잔존가치가 높은 양산차는 BMW 미니 클럽맨(잔존가치 58%)이었다. 예컨대 차량 출고 가격이 4880만원이라면 3년 후 이 차량의 가치는 2830만4000원 정도로 떨어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페라리는 모든 차종이 3년 후 75% 이상의 잔존가치를 유지한다는 것이 디터 CEO의 주장이다. 그는 “신차를 구입한 뒤 3년 후 반납하는 리스 계약을 체결할 때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통상 잔존가치를 40% 이하로 인정하지만, 유일하게 페라리만 75% 이상 인정한다”고 말했다.

다만 차량 가격이 너무 비싸서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실제로 국내 시판 차량 중 최저가인 캘리포니아T 모델은 출시가가 2억7800만원이다. 수천가지 옵션을 고르다 보면 3억원은 금새 뛰어넘는다.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가격이라는 비판에 대해 디터 CEO는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행사를 열어 친근한 브랜드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8일 서울 양재동 스페셜 스테이지에서 공개됐다. 812 슈퍼패스트는 12기통 최고출력 800마력의 엔진을 장착했다. FMK 김광철 대표이사와 디터 넥텔 페라리 극동 중동 지역 CEO가 취재진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8일 서울 양재동 스페셜 스테이지에서 공개됐다. 812 슈퍼패스트는 12기통 최고출력 800마력의 엔진을 장착했다. FMK 김광철 대표이사와 디터 넥텔 페라리 극동 중동 지역 CEO가 취재진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페라리는 그룹 총괄 산하에 4명의 CEO가 전 세계를 4분해서 관리한다. 이중 디터 넥텔 CEO는 중국·홍콩·대만을 제외한 아시아태평양지역 전체를 담당한다. 광범위한 국가를 담당하는 디터 CEO 입장에서 한국은 이른바 ‘빅마켓’은 아니다.

그런데도 굳이 방한한 건 한국 시장 성장세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페라리는 생산하기 수 년 전부터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 때문에 올해 판매대수를 정확히 알 수 있는데, 올해 한국 시장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25% 증가한다.

그가 담당하는 일본 시장과 한국을 비교해달라는 요청에 디터 CEO는 “일본은 이미 레이싱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성숙한 국가라면, 한국은 레이싱 문화에 대한 관심이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라며 “페라리가 한국 모터스포츠 대중화를 선도하겠다”고 말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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