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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셀프 위선 까발리기

중앙일보

입력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인사청문회가 대국민 오락 프로그램으로 전락한 건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욕하면서 보는 막장드라마가 그러하듯 등장인물만 바뀌고 매번 똑같은 천편일률적 스토리인데도 어김없이 흥행불패 신화를 이어간다. 이런저런 도덕적 잣대에 못미치는 후보자를 보고 정말 분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칭 타칭 한국사회 최고 엘리트라는 잘난 사람들을 망신 주면서 잠시나마 도덕적 우월감을 맛보는 묘한 쾌감을 즐기는 사람이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러니 공수가 뒤바뀌고 인물이 달라져도 늘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을 수밖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6·10항쟁 기념식에서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 후보자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6·10항쟁 기념식에서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 후보자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특히 이번 문재인 정부의 인사청문회는 과거 정권에서는 볼 수 없던 관전 포인트가 하나 더 생겼다. 바로 식자층의 '셀프 위선 까발리기'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대표적이다.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시절 신문 칼럼과 트위터 등을 통해 장관급 후보자들을 '비리 종합세트'로 몰아세웠지만 정작 그가 검증한 후보자들은 어째 하나같이 위장전입이나 음주운전 등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드물다. 그런가하면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2014년 광주일보 칼럼에서 "행위 당시 기준과 현재의 기준이 다를 수도 있으나 (청문회 강도를 약화시키려는 움직임은) 절대로 옳지 않은 일"이라며 "다음 인사청문회에는 보다 자격을 갖춘 후보자가 보다 성숙한 검증절차를 거쳐 공직에 취임하기를 국민은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바로 그 칼럼에서 자기 표절과 탈세, 음주운전 전력까지 스스로 밝힌 바 있는데 이번 국회 청문회에서 뭐라고 답할 지 궁금하다.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6월 12일 자택 앞에서 내정 소감을 말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6월 12일 자택 앞에서 내정 소감을 말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두 사람 모두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교수 신분에서 공직자로 자리가 바뀌며 스스로 내뱉은 말을 어떤 방식으로든 되돌려야 할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 조 수석은 2010년 '위장과 스폰서의 달인들'이라는 제목의 경향신문 칼럼에서 "위장전입을 처벌하는 것은 과잉범죄화의 예로 법개정이 필요하다고 본다"면서도 위정전입 후보자를 맹비난하고 지명을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안 후보자 역시 위 칼럼에서 "비리로 지적되는 행위에 대한 당시의 기준과 현재의 기준이 다를 수도 있기에 선의의 후보자에게 억울한 측면도 있을 수 있다"면서도 "공직은 이권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아마 칼럼을 쓸 때 두 사람은 모두 과잉입법이나 관행의 문제에 어느 정도 공감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짐짓 모른체하며 상대 진영 후보자들을 깎아내리던 위선의 대가를 지금 톡톡히 치르는 셈이다.

지난 3월 국회 의원회관 토론회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과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중앙포토]

지난 3월 국회 의원회관 토론회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과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중앙포토]

상황이 이렇게 흐르다보니 이제서야 공직자의 도덕적 잣대를 완화하자는 얘기가 나온다. 공감한다. 다만 이런 기준으로 봐도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바로 음주로 면허취소가 된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다. 그가 문제를 일으킨 게 2007년말이다. 국회가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하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 개정안을 처리하고, 서울시교육청은 음주운전 적발 교사 중징계 방침을 내놓는 등 전 사회적으로 음주운전 뿌리뽑기에 나선 바로 그때였다. "(음주운전이) 사고로 이어지진 않았다"는 청와대의 눈가림을 국민들은 어떻게 봐줄지 모르겠다. 장관 하나 구하자고 또 위선 떠는 걸로 보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