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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등친 기발한 '아이디어'...조직에 위장취업해 경찰 행세로 돈 뜯은 사기꾼

중앙일보

입력

"배송 담당 일자리 찾습니다"
"고수익 단기 알바 구합니다"

요즘 조선족 커뮤니티 구인·구직 게시판에는 이런 글이 종종 올라온다. 대부분 보이스피싱 일자리를 찾는 글이다. 보이스피싱에 이용된 대포통장을 배달하거나, 돈을 뽑아 전달하면 건당 10~20만원을 받는다.
보이스피싱에 가담했다 집행유예를 받은 전력이 있는 권모(27)씨에게 보이스피싱 일자리를 구별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보이스피싱 조직에 '위장 취업'

권씨는 지난달 이 게시판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에게 접근했다. 그는 기발한 '다른 일'을 제안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에 위장 취업해 중간에 돈을 갖고 도망칠 심산이었다. 권씨 일당은 지난달 15일 행동에 나섰다.

권씨는 대포통장 현금카드를 약속장소까지 운반하는 '배송책'으로 채용돼 약속장소인 빌딩 화장실에 카드를 가져다 뒀다. 이후 '인출책'을 기다렸다. 얼마 뒤, 인출책이 현금카드를 가지러 나타났다. 그런데 권씨는 오히려 그를 뒤쫓기 시작했다.

#인출책 돈 뺏으면 미란다원칙까지 읊어

놀라 달아나던 인출책을 한참 뒤 붙잡은 권씨는 "와 이 XX 드디어 잡았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경찰에서 나온 수사관을 사칭한 것이다. 피의자 권리까지 읊어주는 '미란다 원칙'까지 지켰다. 당황한 인출책에게 권씨는 "돈을 주지 않으면 체포하겠다"고 협박해 보이스피싱 피해금 400만원을 받아냈다.

한편, 같은 보이스피싱 조직에 고용된 또다른 인출책 김모(20)씨도 대포통장에 입금된 피해금을 빼돌리고 있었다. 김씨 등 인출책 3명은 대포통장에서 총 1900만원을 뽑아 총책에게 송금하지 않고 자신들이 사용했다.

경찰에 따르면 최근 보이스피싱에 가담한 인출책이나 배송책이 조직을 배신하고 피해금을 갖고 달아나는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보이스피싱 자체가 범죄 행위라 사기를 당해도 신고하지 못하는 약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사기 혐의에 공갈 혐의 더해져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이 사건으로 드러난 보이스 피싱 가담자 6명을 사기·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피해금을 갈취당한 인출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을 사칭해 피해금을 갈취한 권(27)씨 일당 3명에게는 공동공갈 혐의가 더해졌다. 경찰은 위챗으로 배송 및 인출을 지시한 보이스피싱 총책은 중국에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중국 공안과 공조 추적에 나섰다.

이현 기자 lee.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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